미 증권거래위원회, 암호화폐 인플루언서 소송에서 “모두 미국 관할” 주장
“미국에서 전체 노드의 절반 운영…증권으로 간주, 미국 증권법으로 규제”
심지어 “모든 암호화폐도 관할 가능”, 언론 “용납할 수 없는 오버스텝” 비판
[애플경제 이보영 기자]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20일(현지 시간) 이더리움 거래 전체가 미국법의 관할이라고 주장해 논란을 부르고 있다. SEC는 최근 암호화폐 인플루언서를 상대로 한 민․형사소송에서 “미국 정부가 (세계 각국의) 모든 이더리움 거래를 관할한다고 믿는다”며 이같은 논리를 폈다. 이는 결국 미국에서 가장 많은 노드가 운영되고 있다는 이유로 지구상의 모든 암호화폐가 SEC의 관할이라는 선례를 남기려 한다는 해석도 낳고 있다.
앞서 미 SEC는 암호화폐 인플루언서 이안 발리나가 지난 2018년 암호화폐공개(ICO)를 시작하기 전 유가증권으로 등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 전에도 SEC는 수년 동안 미등록 IC를 배포한 개인과 단체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68차례나 제기해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모든 것이 종전과 같이 관례적인 제스처로 보였다.
그러나 이번에 SEC는 전혀 뜻밖의 논리를 폈다. 암호화폐 전문매체인 ‘디크립트’에 따르면 SEC는 “발리나의 사건이 미국에서 이루어진 거래에 관한 것일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전체 이더리움 네트워크가 미국 정부의 권한에 속하기 때문에 발리나를 고소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규제당국은 고발장에서 발리나가 거래한 ETH(이더리움)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 미국에 밀집해 있는 이더리움 블록체인 상의 노드 네트워크에 의해 검증됐다”면서 “결과적으로, 그 거래는 미국에서 이루어졌다”고 결론지었다. 그런 이유로 미국 증권당국과 관련법의 제재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SEC는 “이더리움의 검증 노드 중 현재 미국에서 운영되는 노드 수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 많기 때문에 전 세계 모든 이더리움 트랜잭션은 미국산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이더스캔’에 따르면 전체 이더리움 노드의 45.85%가 미국에서 운영되고 있다. 노드 밀도가 두 번째로 높은 곳은 독일인데, 미국보다 훨씬 적은 19%에 불과하다.
‘디크립트’는 “SEC가 만약 이더리움에서의 활동을 미국 증권 거래소의 활동과 유사하게 분류한다면, 이는 분산된 이더리움 네트워크의 모든 활동에 대한 관할권을 주장하는 규제 기관을 자처하는 셈”이라며 “NFT와 DeFi 활동의 대부분이 이더리움에서 암호화 등으로 이뤄지는 점을 감안하면, SEC의 그런 해석은 지구상의 모든 분산 거래와 가상자산을 미국법으로 다스릴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고 지적했다.
켄터키 대학의 브라이언 페이어 법학 교수는 “이번 SEC가 고소장에서 그렇게 언급한 내용은 그러나 법적 무게를 갖지 않는다”면서 “SEC가 발리나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특성상, 이 사건 법원은 SEC의 주장에 무게를 둘 것 같지 않다”고 ‘디크립트’에 언급했다. 그러나 “그런 주장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그는 덧붙였다.
즉 “이더리움이 무엇인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등등의 메커니즘과 비전을 사법 생태계로 가져가려는 시도의 출발”이라고 해석한 페이어 교수는 “SEC는 ‘(지구상의) 모든 금융활동은 우리가 규제하는 범위 안에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규제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전체 이더리움 생태계에 대한 관할권에 대한 이러한 놀랄만한 주장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SEC가 이더리움 생태계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왜 SEC가 이더리움을 그들이 규제하는 범위에 속한다고 생각하는지를 표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놀라워했다.
하긴 지난 주에도 이를 암시하는 듯한 조짐이 엿보이긴 했다. 이더리움이 블록체인상에서 지분증명(Po-of-Stake) 합의 메커니즘으로 전환(머지)한지 불과 몇 시간 만에, 게리 겐슬러 SEC 의장은 “머지가 이더리움 네트워크를 정부 규제의 눈높이에 맞는 ‘정의롭고 안전함’에 더 가깝게 만들 수 있다”는 발언을 했다.
그는 또 미 상원 은행위원회에서 이같은 증언을 한데 이어, “블록체인상에서 수동적 보상을 대가로 암호화폐 네트워크에 코인을 예치하는 ‘스테이킹’은 곧 자산이 유가증권의 자격이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할 만한 여지도 있다”고 밝혔다. 페이어 교수는 “겐슬러의 그런 견해가 밝혀진 후 SEC의 이런 주장이 나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SEC는 결국 이더리움의 모든 거래행위를 증권 거래와 같다고 보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전체 이더리움 생태계와 관련하여 규제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겐슬러의 언급과도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이다. SEC는 이번 발리나 사건을 계기로 이더리움은 물론 모든 암호화폐가 SEC의 관할이라는 선례를 남기려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디크립트’는 “이것은 단호하게 물리쳐야 할,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오버스텝”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공화당 정부 하의 SEC는 “이더리움이 충분히 분산되어 있고, 불투명하고 위험한 것도 아니다”고 결론내린 바 있다. 이에 비해 겐슬러의 SEC는 이더리움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유보해왔다. 그러나 페이어 교수는 “만약 SEC가 이더리움이 ‘등록되지 않은 증권’이라는 주장을 끝내 굽히지 않을 경우,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디크립트’에 회의적 시각을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