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세상에선 데이터가 생명이다. 데이터는 곧 경험이며, 경험을 어떻게 수집하고 번역해서 재생산하느냐가 AI경제와 데이터 경제의 성패를 좌우한다. 아이디어나, 개념, 경험을 지배함으로써 갖게 되는 힘과 능력은 막강하다. 공간의 점유나 물리적 자본의 획득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인간의 경험을 어떻게 소유하고 구성할 것인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과연 어떻게 유기적 피드백으로 새로운 경험을 창조할 것인가에 따라 AI시대의 비전도 달라진다. 나아가선 평등과 불평등의 기원도 새롭게 씌어질 수 있다.

그래서 다시 강조되는게 공유의 가치다. 만인을 위한 인공지능이 되기 위해선 데이터와 경험 역시 ‘만명’ 아닌 만인의 것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깃허브로 대표되는 오픈소스 생태계는 그런 정의로운 실천방식일 수도 있다. 다수의 알고리즘과 딥러닝 모델들을 일반에게 공개하면서, AI기술을 대중의 생활도구로 정착시킨 일등공신이라고 할까. 덕분에 AI기술이 필요하면 굳이 애먼글먼 코딩작업을 거쳐 인공지능을 개발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공공도서관에서 필요한 자료를 빌려쓰듯 코드 저장소를 활용하면 된다. 마치 책과 자료가 가득한 도서관 서가처럼, 인공지능 플랫폼인 텐서플로를 이용하면 기계학습 모델이나 딥러닝 코드를 재활용할 수 있다.

요즘은 파이썬이 떠오르다보니, 이에 맞는 파이토치(pytorch)가 새로운 오픈소스 머신러닝 라이브러리로 주목받고 있다. 굳이 텐서플로와 파이토치의 우열을 가리는 것은 호사가들 몫으로 치고, 그 보다 중요한게 있다. 경험을 공유하는 오픈소스와, 그 실행 기술이 날로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구글 콜랩 메모장은 아예 파이썬을 편하게 작성하고, 주변 지인들이 댓글을 달거나, 함께 수정할 수도 있게 한다. 일종의 클라우드 서비스여서 굳이 큰 돈 들여 AI 자동화를 위한 인프라를 구비하지 않아도 된다. 구글이나 깃허브 뿐 아니다. 아파치 머하웃이나, 컴포즈, 코텍스, 파이토치 라이트닝, 스파크 등등 시중의 오픈소스 머신러닝툴은 차고넘친다.

이처럼 AI시대는 경험이 공유되면서 빛을 발하고 있다. 즉, 정신과 물질을 아우른 ‘인간’ 자체를 공유하는 것이 AI기술이 던지는 시대정신이다. 이미 우리가 속한 모든 네트워크나 사이버스페이스에선 서버와 클라이언트가 정한 정보, 지식, 경험, 생각까지도 교환한다. 물리적 재산이나 재화의 소유, 양도를 목적으로 하는 아담 스미스의 세계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차원이 달라지다못해,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지고 있다. 인간 경험과 시간, 공간이 모두 상품이 되고, 자원이 되며, 하루 24시간의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어 공유된다. 그렇게 별천지와도 같은 ‘경험 시장’이 성황을 이루는 세상이다.

이를 자본이 그냥 두고 볼리 없다. 너와 나의 삶의 체험, 사회적으로 공유할 유무형의 기억들이나 결과물, 사회적 삶 전체가 자본의 타깃이 되고 있다. 기계나 상품과 같은 과거의 물질적 부가가치 수단은 물론, 전통이나 가족, 친족 간의 유대, 민족, 종교, 성, 사회적 관행 같은 인간 사회 본딧말의 요소가 모두 데이터로 재가공되며, 공유경제의 광장에서 소비되며 오픈소스 툴로 만들어져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언어 생태나 문화적 특성, 정보, 감성 등도 AI경제에서 파편화된 유료 경험으로 쪼개지고 상품화되고 있다. 그 때문일까. 근래 들어 국내외 할 것없이 모든 기업들이 부쩍 ‘경험’에 욕심내고 있다. 일부 미래학자들이 “생산보단 마케팅을, 판매보단 ‘관계’ 중심으로 궤도를 수정해야 한다”고 외치는 것도 그래서다.

여기서 ‘관계’는 곧 소비의 결과로 얻는 고객의 아이디어 내지 ‘경험’과의 관계다. 즉, 한 인간이 평생 구축해온 경험으로서 ‘라이프 스타일’을 상품화하는 것이다. 일컬어 ‘관계기술’, 혹은 ‘R-기술’이라고도 했다. 영어 ‘Relation’의 두문자를 굳이 따낸 말이다. 기업은 ‘R-기술’을 통해 소비자 관계를 주도하고, 조직해내며, 소비자의 경험과 관념, 생각 영역에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침투시킨다. 그로써 수익을 쟁취하고, 떼돈을 벌고 있는게 요즘 잘 나가는 기업들의 기상도다. 정녕 공유된 경험을 사유화한 결과라고 하겠다. 경험의 공유로 이뤄진 AI시대가 낳은 역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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