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급 정부합동대표단, 차관급 통상교섭본부장 방미에 냉소적 시각
“실무자급으론 엄두도 낼 수 없고, 이미 끝난 마당에 소용없는 일” 지적
산자부 장관 면담, 방한 미의원들 대부분 ‘산업과 무관, 외교․군사위 소속’
국회도 ‘결의안’ 말곤 대책없어, 일부 전문가 “유례없는 국가경제의 재앙”
[애플경제 이보영 기자]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이하 ‘인플레 감축법’)에 대한 한국 정부의 실효성없어 보이는 ‘뒷북’ 대응이 2주째 이어지고 있다. 주무 부서인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이 이를 위해 6일 미국으로 갔고, 이창양 산자부 장관이 방한한 미 하원의원들을 만나 ‘시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미 바이든 미 대통령의 서명까지 끝난 마당에 이는 실효성이 거의 없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국회도 ‘인플레 감축법 우려 결의안’을 내는 것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산자부는 연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같은 뒤늦은 대응책을 부각시키고 있다. 산자부는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이) 최근 미국 의회를 통과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포함된 전기차 구매 세액공제와 관련하여 美 정부 및 의회 주요 인사를 직접 만나 협의하기 위해 9.5일~7일 일정으로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한다”고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에 “일개 차관(동상교섭본부장)이 과연 이미 ‘끝난 일’을 두고, 미국 조야를 움직일 수 있겠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더욱이 “입법이 이미 끝나고, 시행을 앞두고 있는 마당에 그 어떤 노력도 허사”라는 비관적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래서 한국 정부와 관료들의 뒤늦은 움직임에 대해선 “뒤늦게 법석을 떤다”며, 회의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심지어는 “한국 외교 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외교 참사’”라는 지적도 뒤따른다.
앞서 안 본부장의 방미를 앞두고 산자부는 “최근 통과된 美인플레이션감축법이 미국산과 수입 전기차를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전기차 구매 세제혜택 조항을 담고 있어 우리 기업들의 우려가 큰 상황”이라며 “지난주 정부 합동 대표단(산업, 기재, 외교부)의 방미에 이어 이번에는 안 본부장이 직접 미국을 방문하여 고위급에서 대미 협의를 이어 나간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산자부가 말한 ‘정부 합동 대표단’에 대해서도 “기껏 국장급 공무원들이 가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미 의회와 백악관을 움직일 수 있다는 얘기냐”는 지적이다. 또 차관급인 통상교섭본부장이 상대할 ‘협의’ 파트너가 누구든간에 이미 만들어진 법을 어떻게 바꿀 것이냐는 회의적 시각이 팽배하다.
5일에는 이창양 산업부 장관이 방한 미 의원단에 인플레이션감축법 ‘우려’를 제기했다는 소식이 보도자료를 통해 대부분의 국내 언론에 소개되었다. 이에 따르면 미 하원 외교위원회 소속 의원 3인 등 미 하원의원단과 만난 자리에서 이 장관은 “최근 통과된 ‘인플레 감축법’은 전기차 세제혜택 조항이 미국산과 수입산 전기차를 차별하고 있어, 한국 정부와 업계의 우려가 매우 큰 상황으로, 양국간 협의를 통한 조속한 해결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산자부가 전하는 소식에 의하면 이 장관은 이 자리에서 “동 조항은 WTO나 한미FTA 등 국제통상규범 위배소지가 있고, 한국산 전기차에 대한 차별적 조치가 도입되어 향후 한미 경제협력에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거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미 양국의 심도 있는 대화가 필요하므로, 한미 양자간 협의 채널을 신설하여 논의를 지속하자”고 제의한 것으로 소개되었다.
이에 대한 미 의원단의 구체적 반응이나 언급은 전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방한한 의원들로부터 특별한 해결책을 기대한다는 것은 ‘과녁이 빗나간’ 처사라는 지적이다. 방한 의원 9명들은 외교위원회 4명, 군사위원회 4명, 국토안보위 1명이다. 경제․산업이나 무역과 직접 관련있는 의원들은 없다. 이들의 방한 목적은 중국․대만 사태와 대북 전략 등 군사․외교와 관련된 현안일 것이란 추측이 유력하다.
이들이 같은 날 박진 외교장관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박 장관 역시 “최근 발표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상 전기차 세액공제 개편 내용의 차별적 요소는 한미 FTA와 WTO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로 인해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을 위해 투자하고 있는 우리 관련 기업들이 피해를 받지 않도록 미국 의회 차원에서 각별한 관심과 협조를 요청했다.”는게 외교부 보도자료의 내용이다.
이에 대해 미 의원들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대한 한국 측의 우려에 대해 잘 알게 됐다”며 “소관 위원회에 잘 전달하는 한편 동료 의원들과도 논의해 보겠다”고 말했다는 소식이다. “잘 알게 됐다”거나, “동료 의원들과 논의해보겠다”는 등의 언급 역시 막연하면서 ‘하나마나한’ 의례적 대답이라는 지적이다.
방심하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은 정부는 이처럼 2주 넘게 허둥지둥하는 모습이다. 산자부는 앞서 안 본부장 방미에 대해 “캐서린 타이 USTR 대표를 포함하여 美정부 고위급 인사와 의회 상하원 주요의원들을 만나 동 법안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우리 기업에 대한 비차별적 대우를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모 투자증권의 애널리스트는 냉소적 코멘트를 가했다. “미 의회를 통과하고, 대통령 서명까지 마친 법안을 뒤집거나, 내용을 수정한 경우는 미 역사상 찾아볼 수 없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