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은행 자금중개 기능 약화, 자산건전성 악화 또는 다원적 금리 구조
인수합병으로 은행 대형화 가속, “어디까지 익명성 보장해야 하나” 논란
금융불안 시기 CBDC로 대거 자금이동, 그로 인한 ‘뱅크런’ 우려도 제기
“그러나 유동성 직접공급 경기부양, 은행 자금중개기능 활성화” 낙관론도

[애플경제 이보영 기자]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 즉 ‘CBDC’는 세계 각국이 이미 도입했거나, 도입을 적극 검토 내지 시험하는 단계에 와있다. 그러나 예상보다는 그 진척 속도가 느린 편이다. 이는 CBDC가 발행, 통용될 경우 발생할 통화 질서의 훼손이나 익명성 수준 논란, 은행의 자금중개 기능 약화 우려 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통화당국과 통화 전문가들 사이엔 대략 10가지 안팎의 예상되는 문제점들을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국 통화 신뢰도가 낮은 중남미 에콰도르, 바하마, 베네수엘라, 동카리브 국가들, 그리고 캄보디아 등은 이미 CBDC를 도입한 바 있다. 또 우리나라를 비롯한, 스웨덴, 중국, 싱가포르, 우크라이나 등은 이미 시범적으로 운영하거나,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이 밖에 미국, 일본, 러시아, 영국, EU, 태국, 프랑스 등도 현재 도입 가능성을 두고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이미 정부의 적극적인 주도하에 총 11개의 디지털 위안화 시범사용지역을 운영하고 있어 주요국 중에서 가장 앞서 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은 CBDC 도입이 소수에 그치고 있다. 이는 CBDC가 분명 법정화폐인 만큼 금융산업에 미치는 영향이나, 통화정책, 운영구조, 원장관리, 익명성 수준 등 다양한 논점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논쟁 이슈가 되고 있는 이들은 각각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을까. 이에 대해 국제통상무역연구원은 “기존 금융기관의 자금중개 기능이 약화되거나, 은행 자산건전성 악화 또는 다원적 금리 구조 등이 문제로 꼽힌다”고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우선 CBDC는 기존의 직불형카드나, 신용카드, 인터넷뱅킹, 간편송금 서비스 등 은행예금 시장을 대체함으로써, 대출이나 투자를 위한 시중은행의 자금원이나 재원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우려다. 이에 은행은 대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장기채권 등을 발행함으로써 시장을 통한 수신 비중이 증가할 경우 대출금리가 높아지고,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논리다.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의 안병선 수석연구원은 “또한 시장성 수신 비중이 늘어날 경우 금융시장 접근성이 낮은 소형은행들이 대형은행으로 인수합병 되어 은행 산업의 대형화가 가속화 될 수 있다”면서 “이에 따라 은행의 자금중개 기능이 약화될 우려가 크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현재의 은행산업은 독과점적인 특성이 있으므로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의 예금 대체는 오히려 은행산업 간의 경쟁을 가속화시켜, 은행의 자금중개 기능이 활성화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즉, 세부 운영방식에 따라 은행 산업에 미치는 영향도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은행 자산건전성 악화나 시스템 리스크가 커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에 따르면 CBDC가 도입될 경우 은행의 예금이 감소되고, 자금조달 비용이 상승함에 따라 고위험 대출이 많아진다는 우려다. 또 그런 고금리 투자를 확대할 경우 은행의 자산건전성이 악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시장성 수신 의존도가 증가함에 따라 금융기관 간 상호 연계가 강화되어 시스템 리스크가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특히 ‘뱅크런’을 걱정하는 시각도 있다. 즉, 지난 2008년과 같은 금융 불안전사태가 발생할 경우 CBDC로 대규모 자금이동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고, 그럴 경우 뱅크런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반대로 “CBDC는 실물화폐와 은행 예금만 있을 때보다 훨씬 ‘지급 활동’을 원활히 뒷받침 할 수 있고, 금융시스템에 대한 모니터링 강화를 통해 효율적으로 위기를 관리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금리가 결정되는 경로가 복잡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일단 전문가들은 CBDC에 대한 금리는 기준금리에서 CBDC의 편의성을 차감한 수준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는 곧 단기금융시장의 금리 하한선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는 은행 예금금리에도 영향을 끼침으로써 통화정책의 금리파급 경로가 보다 복잡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경제침체나 위기가 오면 기존 법정통화와는 달리 유동성을 직접공급(helicopter money)할 수 있다는 점이 CBDC의 장점으로 꼽힌다. 그래서 긴 경로의 양적완화 정책에 비해 즉각적인 경제 부양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결과적으로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를 확대함으로써 ‘내재적 변동성’이 커져 통화정책의 독립성이 저해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거래정보를 활용하여 선별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할 경우, 통화정책과 재정정책 간 경계가 모호해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CBDC가 또한 지금의 현금 수준의 익명성을 가질 것인가도 문제다. 만약 익명성을 보장할 경우 이는 불법 자금세탁이나, 조세 회피 등의 수단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익명성을 보장하지 않을 경우엔, 그 대체수단으로 민간 암호화폐 사용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개인정보가 국가에 집중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우려다.

이 밖에 국내외에 걸쳐 다양한 법률적 토대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나, 혼합형 원장관리 방식이냐, 중계형 방식이냐 등의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국제결제은행(BIS)이 65개국 중앙은행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6%의 중앙은행이 CBDC발행을 위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 가운데 한국은행도 2020년 2월 디지털화폐연구팀을 신설하고 3월부터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도입을 위한 연구업무에 착수했다.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1단계 모의실험을 통해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의 제조, 발행, 유통, 환수 등 기본 기능을 테스트했다. 금년 들어 지난 6월까지는 2단계 모의실험을 통해 결제, 디지털 자산 거래, 국가 간 송금 등 기능을 테스트했다. 한국은행은 하반기에는 금융기관과 협력, 실제 통용을 위한 실험을 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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