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양대 암호화폐 시장 중 한 곳인 한국도 눈여겨 볼 현상” 해석
‘증권거래소 vs 상품선물거래소’, 규제 주체 놓고 법안마다 엇갈려
현지 업계 “기왕이면 증권거래소보단 상품선물거래소 규제가 편해”

[애플경제 박문석 기자] 테라․루나 사태를 비롯해 국내외 가상자산 시장이 폭락과 투자자 파산 등의 혼돈을 겪으면서 강력한 규제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해외에서도 높다. 특히 암호화폐 시장은 출범 이후 수십 건의 사기나 폰지 사기, 수천억 달러의 채굴과 증발 사태가 끊이지 않았다. 이에 마침내 미 의회 안팎에서 이에 대한 더욱 강력한 규제 장치를 입법화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어 주목된다. 이는 미국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암호화폐 시장이 발달한 한국으로서도 예의주시할 만한 현상이기도 하다.

앞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금융시장 실무그룹은 지난해 11월 의회에 스테이블코인을 규제하는 법안을 통과시킬 것을 촉구하는 보고서를 낸 바 있다. 바이든은 올해 초에도 여러 기관에 디지털 자산 규제 방안을 검토하라고 요구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특히 미 의회에선 암호화폐를 규제하는 방안이나 관련 입법 청원 등이 줄을 잇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수 일 전부터 암호화폐는 마침내 미 의회 다수 의원들의 뜨거운 관심사로 떠올랐고, 의원들은 이를 규제하는 내용의 법안을 연달아 제출하고 있다.

특히 올해 들어 의회에서는 암호화폐 업계의 문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법안들이 늘어나고 있다. 팻 투미 미 상원의원은 지난 4월 ‘스테이블코인 TRUST법’이라고 불리는 법안을 도입했는데, 이 법안은 올해 대규모 손실을 본 스테이블코인을 규제할 수 있는 틀을 만든 것이다.

또 지난 6월에 커스텐 길리브랜드와 신시아 루미스 의원 등은 ‘책임 있는 금융 혁신법’이라고 불리는 광범위한 규제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디지털 자산과 가상화폐에 대한 법적 정의를 제안하였고, 미 국세청이 디지털 자산의 판매와 거래 등에 관한 지침을 채택하도록 요구했다. 또 상품인 디지털 자산과 아직 수행되지 않은 증권인 디지털 자산을 구별하도록 하였다.

그런 가운데 암호화폐 업계는 기왕에 강화된 규제법이 마련되려면 까다로운 SEC보다는 그나마 ‘기업 친화적’인 CFTC의 규제를 받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실제로 미 의회에 현재 발의된 ‘스타베나우-부즈만 법안’은 그런 업계의 의중에 비교적 가까운 내용이다. 이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에 대한 규제 권한을 상품선물거래위원회(CTFC)에 넘기는 것을 골자로 한 법안이다. 이를 주도한 스태이브나우 의원과 부즈맨 의원 등은 CTFC에 대한 권한을 가진 상원의 농업위원회를 이끌고 있어 영향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AP통신은 “그렇게 되면 CFTC를 SEC보다 산업 친화적인 규제기관으로 보는 암호화폐 업계에 승리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CFTC는 직원 666여명에 3억400만달러의 예산에 불과하지만, SEC는 20억달러에 육박하는 예산과 4500명의 정규직 직원이 투입된 거대한 조직이다.

그래서 현지 암호화폐 전문가들은 “(암호화폐 업계는) 어떻게든 SEC가 아닌 다른 기관이 규제하길 원한다”는 시각이다. 실제로 암호화폐로 억만장자가 된 샘 뱅크만-프리드는 트위터를 통해 ‘스타베나우-부즈만 법안’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부즈만 의원 역시 기자들과의 통화에서 “암호화폐를 규제하기 위해 업계가 선호하는 선택은 CFTC”라면서 “이런 목표를 위해 그들은 일치 단결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스타베나우와 부즈만 의원 기자회견에서 “CFTC가 암호화폐를 규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지만 그러기 위해선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CFTC는 이미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계약을 감독하고 있다. ‘스타베나우와 부즈만’ 법안은 사용자 수수료를 부과하고, 그 돈으로 CFTC의 인력을 늘리고,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보다 강력한 감독기능을 할 수 있게 한다는 복안이다. 그러면서도 이 법안은 SEC가 잠재적으로 규제 권한을 주장할 수 있도록 암호화폐와 유사한 NFT 등 가상자산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처럼 규제 주체를 두고 서로 엇갈리다 보니, 앞서 투미 법안과 루미스-길리브랜드 법안 등과 함께 ‘스타베나우-부즈만 법안’은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에 제출되었지만,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이를 두고 맥신 워터스 금융서비스위원장은 지난달 “본인과 공화당 최고위원인 패트릭 맥헨리 의원,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법제화 합의를 위해 상당한 진전을 이뤘지만, 불행히도 아직 뚜렷한 접점을 찾지 못해 8월 휴회를 두고 협상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올해 들어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하루아침에 가격이 폭락하고 부와 일자리를 가진 기업들이 분화구처럼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다. 일부 기업들은 불법적인 암호화폐 거래소를 운영했다는 이유로 연방 규제당국의 경고를 받았다. 최대 디지털 자산인 비트코인은 2021년 11월 6만8000달러 이상에서 지난 주 약 2만3000달러로 폭락했다.

물론 지난 2018년에도 암호화폐가 추락한 적이 있지만, 이번처럼 광범위하고 연쇄적인 피해를 부를 정도는 아니었다. 지난 달 주요 헤지펀드가 파산을 신청해 다른 암호화폐 브로커들도 파산했다. 그 와중에 일부 암호화폐 브로커들은 “고객의 예금이 은행처럼 예금보험으로 뒷받침(원금 보전)될 것”이라고 거짓 주장을 해왔다.

암호화폐 시장이 파산 직전에 이르면서 거래하는 사용자가 줄어들면서 대형 거래소인 로빈후드(Robinhood)는 직원의 23%를 줄였다. 또 사기 투자와 암호화폐에 의한 사기 사건이 줄을 이었다. AP통신은 “그 때문에 규제가 없는 세상, 은행 없는 자유주의 세상을 살아가려는 암호화폐 업계의 시도에 공감하며 인내했던 의회는 이젠 엄격한 감독을 시행해야 할 처지가 됐다”고 강력한 규제 입법의 가능성을 점쳤다.

그 동안 암호화폐 업계는 의회의 규제 입법을 막기 위한 광범위한 로비를 벌여왔다. 소비자권리단체인 ‘Public Citizen’의 보고서에 따르면, 암호화폐 업계는 2021년에 로비 비용으로 900만 달러를 지출했다. 그러나 의회 의원들이 강력한 규제입법을 발의하고 있는 분위기 속에 업계의 로비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키워드

#암호화폐
저작권자 © 애플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