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이제 ‘권력’이다. 기술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자본과 자산을 지배하는 새로운 권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래서 이미 4차산업혁명의 항간에선 AI에 의한 ‘권력’의 차이와 그로 인한 불평등의 해악이 또 다른 질서로 자리잡고 있다. 웹3.0 시대의 건강성도 이젠 누가 먼저 천문학적 매개변수와 고도의 신경망 기술을 선점하고, 더 거대한 분석 파라미터의 사전학습 모델을 구사하느냐가 좌우할 판이다. 그 예측 불가한 소요 자금과 자본을 더 갖는 자가 결국 ‘권력자’가 될 수 밖에 없다.
AI는 그렇게 디지털 시대와 인간 세상의 판을 새로 짜고 있다. 바야흐로 지배와 굴종의 인간학을 새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AI 권력은 지금껏 인류가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지배 이데올로그(Ideologue)로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지금까진 소득을 분모로 한 수익률을 기준으로, 자산과 자본소득이 노동소득을 압도하며, 세상을 지배해왔다. 그런 토마 피케티의 고뇌어린 불평등 공식이 이젠 형태를 달리하며, 디지털 시대의 공인된 스키마로 자리를 잡고 있다. 소수 부유계층에 자산과 자본이 집중돼 불평등이 악화된다는 산업자본주의의 흑역사는 AI 권력이 지배하는 기술자본주의에서도 고스란히 전승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AI기술을 무기로 한 ‘AI 권력자’들은 엄청난 빅데이터를 빠르게 계산할 수 있는 연산 능력이나, 인공신경망 기술에 의한 고성능 컴퓨팅 연산 자원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른바 초거대 인공지능을 개발한 일론 머스크와 오픈AI가 그렇고, 상호(商號) 자체를 메타버스에서 따온 마크 저커버그의 ‘메타’나, 역시 고도의 자연어 처리 기술과 알고리즘에 목을 매는 구글, 최고의 반도체 설계 기술을 뽐내는 앤비디아 따위의 빅테크들이 모두 그런 권력자들이다. 이들은 디지털 문명의 시너지의 출발점인 플랫폼 세계를 좌지우지하며, 영원할 것만 같은 테크노파워를 누리고 있는 중이다.
그 뿐 아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AI와 그 실행수단인 알고리즘으로 재편되면서 세계 각국은 차별화된 ‘AI 거버넌스’에 혈안이 되고 있다. ‘차세대 핵심 AI 기술 선도국’이란 프로파간다를 국정의 전면에 내걸고, 사실상 국가 주도의 ‘AI 전략’을 추진하느라 다들 바쁘다. 정확하게는 국가 권력 또한 ‘AI 권력’으로 재무장함으로써 대․내외적 헤게모니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특히 초강대국끼리의 세계적 AI 권력투쟁은 가히 치열하다.
미국은 ‘AI 이니셔티브’, 즉 세계의 AI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수단으로 ‘AI.gov’를 출범시켰다. 미 행정부와는 별개의 AI권력구도에 기반을 둔 사이버 정부를 하나 만든 셈이다. 영국도 정부 차원에서 앞으로 세계의 AI기술 주도권을 획득하겠다며, 나름의 AI전략을 추진하고 있고, 중국은 국가 주도의 AI 생태계 구축을 내걸고, 아예 ‘차세대 AI 발전계획, 14차 5개년 규획’을 시행하고 있다. 가히 사회주의 국가다운 발상이다.
그런 식이라면 결국 AI권력의 격차에 따라 1등국과 2등국의 판세가 결정될 것 같다. 그 와중에 AI에 대한 영향력과 통제력은 빠르게 ‘중앙’으로 집중될 것이다. 그 집중적 동심원이 수렴하는 곳이 패권국이 되었든, 빅테크가 되었든간에, 보통의 디지털 시민들에게 결코 유쾌하거나 유리하지 않은 일이다. AI권력의 집중화 혹은 특정 주체에 의한 사유화는 결국 자본주의가 그토록 부르짖어온 ‘자유’를 침해하는 꼴이다. 애시당초 ‘자유’란 무엇인가. 권력에 제한을 가하는 것이다. 사실상 자연을 인간 마음대로 왜곡한 것이라고 할 ‘관습’이나,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한 강제를 부정하는 것이다.
AI 기술권력이 슈퍼리치나 빅테크, 강대국에 배타적으로 독점당할 경우, 시민의 기술 주권이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자유는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지금 AI 권력의 구도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그럼에도 국제 SW커뮤니티인 ‘모질라’는 “AI 권력에 대한 규제가 신뢰를 쌓고 경기장을 평준화하는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그렇게만 되면 오죽 좋을까. 허나 막강한 AI권력에 맞서 평등한 자유를 지킨다는게 쉽지는 않아보인다. 피케티는 3세기의 방대한 데이터를 해부하며, 누군들 쉽게 인멸하기 힘든 불평등 역사의 증거를 펼쳐보였다. 그러나 지금 AI권력의 판도를 보고있노라면, 피케티의 고뇌는 더욱 깊어만 갈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