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방한 이어, 중국에 맞선 배터리․반도체 ‘블록’ 구축 독려
한국 기업들 미국 내 생산공장 유치하는 ‘프렌드 쇼어링’ 추진
중국에 반도체 수출, 배터리 소재 절대의존 한국으로선 ‘진퇴양난’
[애플경제 김홍기 기자]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지난 18일 급거 방한한 것은 결국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그리고 러시아산 석유 공급을 둘러싼 이른바 ‘가치동맹’을 서둘러 결성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특히 방한 직후 맨 먼저 LG화학과 LG에너지솔루션 등 한국 기업들을 찾은 것에서도 이같은 그의 방한 목적을 읽을 수 있다는 얘기다.
LG엔솔을 방문한 자리에서 그는 “탄력성 있는 배터리 공급망”을 시사하는 발언을 이어가기도 했다. 또 방한 이튿날 서울 마곡지구에 있는 LG사이언스파크를 방한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는 결국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 대한 한국과의 협력 강화”라는 명분을 내건 공급망 ‘동맹’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으로 읽힌다.
사실 국내 배터리 제조업계는 시장을 낙관하지 않고 있다. SK하이닉스도 애초 계획했던 청주공장 신설 계획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으로 인해 사실상 백지화 결정을 내린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른바 리쇼어링, 즉 미국 내에 한국 등의 배터리, 반도체 기업들이 공장을 짓도록 유도하는 전략을 강력히 구사하고 있다. 옐린 재무장관은 그 스스로 이를 ‘프렌드 쇼어링’으로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미국과 한국, 일본, 대만, 호주 등 이른바 미국의 ‘친구’들이 미국 내에 배터리와 반도체 공장을 짓도록 한다는 의미다.
이는 결국 중국을 견제하면서 미국 내에 자립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와 중국의 관계다. 현재 LG엔솔은 베터리 생산 부가가치의 40%를 점하는 양극재에 주력해왔다. 그런데 배터리 소재는 전세계적으로 중국산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ESG의 경영이념이 강조되면서, 이에 반하는 배터리 소재 관련 제련공장이 중국에 밀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특히 그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이번 옐렌의 방한은 그러나 미국에 한국 기업들이 배터리와 반도체 공장을 많이 짓고, ‘동맹’끼리 자급자족 체제를 갖추자는 뜻이다. 그러나 문제는 소재 조달이다. “미국이 한국에게 배터리 소재를 공급할 수는 없어서, 결국은 중국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한국으로선 진퇴양난의 기로에 서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물론 일각에선 “미국 현지에 공장을 지으면 기업 지명도를 높이고, 세제 혜택을 받는 등 이점도 없지 않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 보다는 중국을 염두에 둘 수 밖에 없는 우리로선 잃는 것이 많을 것이란 우려가 더 크다.
이와 함께 이번 옐런의 방한으로 다시 관심을 끄는 것이 지난 5월 바이든 미 대통령 방한 당시 암묵적으로 거론되었던 ‘반도체 가치동맹’이다. 이른바 ‘칩(chip)4 동맹’, 즉 반도체 강국인 미국과 한국, 대만, 일본이 반도체 수급을 둘러싼 일종의 블록을 형성한다는 의미다. 이는 실상 중국을 배제하고, 나아가선 국제 반도체 수급 생태계에서 아예 중국을 고립 내지 축출한다는 의미가 더 크다.
미국은 한국에 대해 ‘칩4 동맹’ 가입 여부를 8월까지 밝힐 것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바이든에 이어 이번 옐런의 방한은 그런 숨은 뜻을 지닌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로선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미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삼성전자의 대중국 수출은 전체 수출량의 48%에 달한다.
생산 측면에서도 삼성전자는 중국 산시성 시안에 삼성 메모리 반도체 공장을 두고 있고, SK하이닉스도 중국 우시에 있는 현지 공장에서 자사의 전체 생산량의 절반을 생산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것은 치명적이다. 우리로선 미국의 압박에 그저 난감하기 짝이 없는 처지”라는게 전문가들의 걱정이다.
더욱이 미국이 내건 리쇼어링, 혹은 프렌드 쇼어링 역시 자의적이다. 부가가치가 높거나, 기술집약적인 산업만을 리쇼어링하되, 그렇지 않은 경우는 중국 공급망에 연결되어 있어도 무방하다는게 암묵적인 태도다. 한국으로선 더욱 선택의 폭이 좁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우리로선 반도체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미국의 요구를 뿌리칠 수도 없는 형편이다.
미국이 이처럼 일종의 가치동맹을 내세운 ‘칩4동맹’과 배터리 공급망 블록을 만들려는 또 다른 의도가 있다는게 일부 전문가의 지적이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 라디오 방송을 통해 “블록을 만들어 중국을 배제했을 경우, 있을 수 있는 중국의 보복으로 인한 피해를 ‘동맹국’들에게 전가해 자국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의도”라며, “그 대표적인 것이 모든 전자제품의 필수 소재인 희토류 등의 광물”이라고 지목했다.
즉 미국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친구들’의 라인업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물론 중국도 저작권 침해와 패권주의적 시장 공략 등 문제가 많다. 이를 빌미로 중국의 ‘기’를 꺾고 일등국으로서 지위를 빼앗기지 않으려는게 미국의 ‘가치동맹’ 전략”이라면서 “이럴 때일수록 중국과의 관계를 일정 수준에서 완급을 조절하며, 국익에 적합한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