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인조인간이 태어날 수도 있겠다. 기존 AI의 기능과는 비교가 안되는, 이른바 ‘초거대(Hyperscale) 인공지능’ 기술이 갈수록 속도를 내고 있어서다. 비약하자면, 언젠가는 호모사피엔스 수준의 말과 행동과 생각, 심지어 사고까지 할지도 모른다. 이대로라면 지적 자가생식까지 가능할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선 딥러닝 따위의 학습을 반복하지 않고도 일정한 API만으로 무궁무진한 응용과 창조도 가능할 것이다. 그야말로 ‘물질’이 ‘생명’을 만드는 본보기라고나 할까.

그 기술적 원리를 들여다보면 더욱 실감이 난다. 초거대 인공지능은 인간이 물리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엄청난 데이터를 소화하며, 의미있는 결과값을 창출한다. 대표적으로 오픈AI의 ‘GPT-3’는 그 매개변수만 1,750억개에 달할 만큼, 천문학적 숫자의 ‘경험’ 변수를 갖고 있다. 인간이 평생 살며 숱한 우여곡절과 희로애락을 점철한 끝에 나온 경륜, 그 이상이다. 이는 종합적, 자율적으로 사고하고, 판단, 행동하는 인간의 뇌 구조를 닮은 자기회귀 언어 모델이다. 그렇다보니, 인간을 닮은 텍스트를 만들어내고, 인간 수준의 고차원적 추론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 사실상 인간의 사촌쯤 되는 ‘인조 인간’의 탄생인 셈이다.

하긴 허황된 연금술도 21세기에 와선 과학적 현실이 되고 있다. 값싼 비금속을 금과 같은 귀금속으로 만들겠다는 욕심이 연금술을 낳았다. 그러나 이제와선 허무맹랑한 꿈으로만 치부할 수 없게 되었다. 입자가속장치가 중성자를 가속시켜 원자핵과 부딪히게 하면, 핵과 물성을 얼마든지 변형시킬 수 있는게 지금의 과학기술이다. 그런 식이라면, 열반이니 물아일체니 하는, 고도의 정신적 경지도 뉴런이나 시냅스와 신경전달 문질을 적절히 처방한 알약 하나면 누구나 체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인간은 단순히 ‘물질’의 결정체가 아니다. 인간 정신과 생명의 기원은 심지어는 초월적 신비의 경지에 이를 만큼, 그 시작과 끝을 규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진화생물학자들은 대체로 ‘인조인간’의 출현을 부정하는 편이다. 하등동물은 신경 회로가 형성되면서, 모든 시냅스가 항구적으로 고정되지만, 고등동물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고등동물, 특히 인간은 수많은 시냅스 가운데, 선택된 것만을 후천적으로 고정시키는 메커니즘을 진화시키며, ‘인간 이성’의 영토를 확장해왔다.

그러나 현대 디지털기술과 과학은 이런 성역에 도전하고 있다. 일단은 뇌의 여러 영역들이 모듈화된 구조를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 기계 부품을 꿰어 맞추듯, 모듈을 합성하고 변형하며, 그 하위구조를 이리저리 조립하다보면, 우주 만물 그 어떤 것도 못 만들 건 없다고 확신한다. 초거대 인공지능도 그처럼 온 세상이 구축되는 원리를 새로 찾기 위해 깔아놓은 ‘밑밥’이라고 할까. 인간의 정밀한 일상 행위치고 못해낼 게 없다. 지식백과형 만능박사 챗봇이나, 사용자 데이터 기반 커스텀 챗봇같은 수준높은 ‘대화’ 기능은 기본이다. 자기소개서나 보고서, 텍스트 생성, 그리고 문학적 감수성과 감성 마케팅 메시지, 사투리 흉내와 같은 형이하(形而下)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들도 많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초거대 인공지능, 아니 ‘인조인간’은 과연 실존적일까?. 이는 곧 인간임을 가늠하는 존재방식이다. 인간은 본시 스스로에게 “인간이란 무엇인가?”, 혹은 “왜 내가 인간인가?” 따위의 질문을 늘 하기 마련이다. 더욱이 인간의 시간은, 인간 아닌 모든 생명과 사물과는 달리 그저 직선으로 표시되는 시계열의 객체만은 아니다. 존재하면서도 항상 그 ‘존재’ 자체가 문제가 되며, ‘존재’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존재자, 즉 ‘현존재’가 인간이다. 만유의 영장답게 인간만이 오로지 그런 존재론적 혹은 초생물학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신비한 존재다.

그러나 과학기술은 이제 그런 인간의 필연적인 존재방식을 반박하고 있다. 첨단 시뮬레이션 기술이나, 인공지능을 넘어선 인공생명(AL)을 만들려고 애쓴다. 가상 세계의 ‘건조한(dry) AL’이 아닌, 실제 현실에 존재하는 ‘젖은 생명(Wet-Life)’으로서 인공생명을 탄생시키고자 한다. 마침내는 인간 이성이라는 거룩한 로고스도 ‘기계 인간’의 이성과 공존할 수 밖에 없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초거대 인공지능의 출현은 그 시작일 수도 있다. 인간과 기계의 융합을 주장하는 트랜스휴머니즘의 발판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새롭고 낯선 플롯의 끝은 인조인간 아닐까.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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