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이면 기차표 예매가 끝나는 세상, 그것조차 할 수 없는 어르신은 매번 자식들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자식이 모바일 티켓을 보내주고 싶어도 받는 방법을 모른다. 종이 통장도 점점 사라지는 요즘, 은행 업무도 기계화되다 보니 “집 어느 구석에 돈을 보관해야 할까보다” 푸념하는 어르신들도 많다.

영화관은 물론 대형마트에서도 ‘셀프(self)’를 권하고 있다. 무인시스템 ‘키오스크(Kiosk)’는 10년 전과 비교해서 4배 이상 늘었다. 어르신들로선 자칫 ‘컴맹’을 넘어 ‘디지털 문맹’이 되기 십상이다. 칠순이나 팔순을 넘은 분들에게 ‘컴퓨터’라는 아리송한 기계들은 다가가기에 너무나 먼 물건이다. 젊은 세대들도 그 속도를 따라가기 벅찰 정도인데, 하물며 아날로그에 뼈를 묻어온 어르신들은 말할 나위조차 없다.

디지털 기기의 편리함이 어르신들에게는 거대한 벽이 될 수 있다. 70대 이상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42.4%로 60대 69.6%보다 급격히 떨어진다. 그들도 한 때는 신세대였다. 그러나 스마트폰을 뭘 잘못 건드렸는지 중요한 것들이 지워질 때가 많다. 간혹 ‘앱’이란 걸 한번 깔아보려 해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물어보기도 하지만 그것도 한 두 번이다. 자꾸 물어보면 돌아오는 건 ‘짜증’이다. 그러면 기분이 안 좋다 못해 서럽기도 하다.

지금 정보화시대는 지식은 ‘공짜’이고, 접속만 하면 뭐든 다 얻을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럴수록 지식과 정보의 격차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지식과 정보는 곧 ‘권력’이다. 그 권력을 가질 수 있느냐 없느냐는 결국 경제, 사회적인 불평등과 차별로 이어진다. 그래서 고령층의 ‘디지털 소외’는 청년층의 저출산에 이어, 또 하나의 국가․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그들은 이제 영화 한편 보기도 힘들다. 세련되게 말해 ‘오프라인’이지만, 걷거나 몸을 움직이는 것 밖에 모르는 어르신들은 영화관에 갈 때마다 허탕을 친다. 보고픈 영화는 매진되었거나, 시간대가 맞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앉아서 살고, 노인들은 서서 지낸다’고 할까. 편리하고 유익한 정보는 모조리 젊은이들 차지일 뿐, 노인들은 그저 외롭고 서럽기만 하다.

열차도 디지털 소외현상의 대표적인 공간이다. 노인들에겐 주말이면 줄을 길게 서던 ‘그때 그 시절’과 크게 달라진게 없다. 역에 직접 가서 표를 끊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 지긋한 분들이다. 좋은 좌석은 온라인 예매자의 몫, 어르신들은 그저 불편한 자리에 만족해야 한다. 명절이면 온라인 예매율이 90% 이상인데, 앱이나 무인 발권이 서툰 어르신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그야말로 이등시민이 따로 없다. 편히 앉아서 갈 좌석 중에 노인의 몫은 별로 없는게 지금의 디지털 시대, 초고속 열차 풍경이다.

디지털 약자에 대한 무관심은 결국 세대 간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노인 인구 700만 시대! 우리 예비노인들은 자신에게도 다가올 노년기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 걸까? 좁아진 시야와 약해진 근력, 난청과 짧아진 보폭, 그것은 인간이 노쇠함에 따라 감수해야 할 자연스런 이치다.

어느 방송에서 본 적이 있다. 부산에 사는 60대 후반의 어르신은 일주일에 세 번 6시간씩 근무하는 ‘환경감시단’ 이라는 일을 하고 있다. 상공에 ‘드론’을 띄어서 ‘녹조’같은 생태환경을 조사하는 일이다. 스스로 자부심도 대단하다. 그에게 ‘드론’은 차갑거나 낮선 기계가 아니라, 활기찬 삶을 위한 도구이자, 훨훨 날아 행복을 배달해주는 존재다. 한 때는 그도 컴맹이었지만, 더 나이들기 전에 ‘컴퓨터를 배우자’고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폴더니, 컨트롤X니, 파일이니 하는게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살면서 그리 필요치 않았던 단어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지금은 개인 홈페이지까지 운영한다. 디지털 문명이 그에게 새로운 세상을 선사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극히 예외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온통 가상세계와 디지털 기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이제 ‘디지털 소외’ 현상은 현실세계의 계층 양극화와 다를 바 없다. 물론 어르신들 스스로도 아날로그만을 고집하기보단, 조금이라도 디지털 문화에 접속해보려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긴 하다. 그러나 당장 급한 것은 그 분들에 대한 관심과 관용이다. 디지털 양극화의 그늘에서 고통받는 분들에 대한 공동체적 애정이라고 할까. 어르신이나 장애인들의 답답함과 불편함을 덜어드릴 ‘디지털 도우미’도 좋은 방법이다. 온라인상의 도우미도 좋고, 실제 오프라인 공간에서 도와드릴 ‘인간 봉사자’도 좋다. 기차표 예매에 ‘노인 할당제’를 도입하는 것도 생각해볼만 하다. 이런 것이야말로 국가의 몫이면서, IT강국의 필요조건 아닐까.

(고양생명의전화 상담 매니저, 상담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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