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면 남녀노소 할 것없이 스마트폰에 빠져든다. 그야말로 스마트폰 삼매지경(三昧之境)이다. 누구든 예외가 없다. 최소한의 자존감이랄까, 아니면 오기라고 할까. 필자만큼은 공공장소에서 되도록 스마트폰을 외면하려고 애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스마트폰이란 ‘신(神)적 존재’에게 굴복하며, 고독을 즐길 자유마저 빼앗긴 것 같아서였다.

대신에 바쁘게 해야 할 일이 없거나, 잠시 여백이 생길 때면 필자가 주로 하는 일이 ‘멍때리기’다. 아무 생각없이 정신을 무장 해제시키는 것이다. 그럴 때면 순간 뇌의 시냅스(신경회로)가 단순해지고 뉴런이 한결 쾌청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느낀다. 하긴 서울시가 오죽하면 한강에서 ‘멍때리기 대회’를 했겠는가. 모든 국민이 온갖 미디어와 ICT 매체에 노출되고, 중독된 현실에 대한 작은 각성일 것이다. 네트워크에 범람하는 온갖 전자 텍스트와 영상으로 눈과 뇌, 신경세포가 혹사당하는 것에 대한 되새김질일 수도 있다.

사실 디지털 미디어를 과소비하지 않으려는 필자의 다짐 또한 늘 위태롭다. 그 화려하고 편리하며 신비롭기까지 한 디지털 매체의 유혹을 견디기란 쉽지 않다. 하물며 우리 아이들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아직 뇌의 발달이 완전하지 않은 청소년에게는 스마트폰이나 VR게임의 현란하고 환상적인 콘텐츠는 그 자체가 치명적 유혹, 그 이상의 것이다. 장차 펼쳐질 인생의 모양새를 결정짓는 ‘절대자’라고 할 수도 있다. 그 중에서도 늘 손에 들고다니는 스마트폰은 자신과 동일시되며, 심지어는 정체성을 투영하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태어난지 얼마 안되어 아이들은 디지털 매체와 스마트폰에 노출된다.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의 메시지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며 아예 체화시켜버린다. 그렇게 얻어진 스마트폰의 모든 것은 영구히 뇌에 각인되어 웬만큼 작정하며 각성하지 않고는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래서 갓 태어난 유아들부터가 스마트폰 마니아들이다. 식당을 가거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면 열심히 수다를 떠는 엄마들 옆에서 아주 얌전히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는 아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엄마들도 너무 어린 나이에 스마트폰을 손에 쥐어주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잠깐씩 주어지는 자신만의 여유를 방해받고 싶지 않다. 그래서 재갈을 물리듯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쥐어주곤 한다. 그렇게 우리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IT기술과 디지털 디바이스의 노예가 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요즘은 집에서 가족 간의 대화도 스마트폰으로 한다. 이젠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수 많은 인간관계들이 ‘먹통’이 되어버리는 시대가 되었다. 내 손 안의 스마트폰을 통해 온 세상 정보를 다 볼 수 있게 되었다. 어디서든 함께 하는 스마트폰은 이제 없어서는 안 될 나의 분신이자, 보물 1호다. 잠깐이라도 보이지 않으면 순간 정신이 나가고, 마치 세상을 다 잃은 듯 절망스럽다. 그러다 잃어버린 스마트폰을 다시 찿게될 때 느끼는 안도감은 그 어떤 희열보다 농도가 크다. 그래서 스마트폰은 이제 보물의 경지를 넘어 현대인의 ‘신’(神)이자 우상이 되었다.

‘달나라에 토끼는 없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모든 아이들의 동심과 상상력은 파괴된다고 했던가. 스마트폰은 일찌감치 ‘탈(脫)동심’의 온갖 ‘현실’을 리얼하게 전달한다. 그럴수록 아이들의 눈과 뇌는 갈수록 더 자극적인 것을 찿는다. 마땅히 아이들로서 상상하고 느껴야 할 것들이 채 자라기도 전에 싹이 잘려버리는 것이다.

특히 청소년의 뇌는 전두엽이 아직 성숙되지 않은 상태여서, 흔히 파충류의 뇌에 가깝다고 할 정도다. 감정의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기능이 부족하고, 미성숙하면서 예민하다. 그럴수록 청소년기의 뇌는 여러 부위가 균형적으로 발달하며, 건강한 인격체로 성장해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온갖 선정적이고 도발적인 스마트 미디어에 노출된 청소년기는 그래서 문제다. 전두엽이 갖춰야 할 공감능력이 부족해지고, 나와 타인에 대한 존재론적 인식이 결여될 수도 있다. 사실상 정신적 발달 장애라고 할 만하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을까. 당연히 스마트폰을 자제하는 것이 급선무다. 가정에서부터 다른 어떤 디지털 매체에 앞서, 스마트폰을 최소한으로 자제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자면 부모부터 스마트폰을 덜 들여다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스마트폰이나 TV, 각종 디지털 매체들에 대한 스케줄링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가족 간 합의를 통해 규칙을 만들고 이를 실천한다면, 아이들의 성장과 가족 간의 화평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대화도 좋고, 부모가 책을 보는 모습은 더없이 좋다. 할 수만 있다면, 엄마가 들려주는 ‘구연 동화’ 한 토막은 가장 이상적이다. 그야말로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좋은 추억이며, 최고의 ‘학습 교재’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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