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인재 양성을 얘기하며, ‘교육은 산업’이라고 했던가. 아무리 급해도 결코 해선 안 될 말이다. 당대 최고 권력자가 뭐라고 하든, 교육은 산업의 틀에 꿰어맞추는 인력소개소는 절대 아니다. 교육의 본질은 산업 아닌, 삶의 틀을 새롭게 짜는 상상소(素)를 배양하는 곳이다. 기술 문명부터가 그렇다. 말마따나 반도체가 되었든, 그 전자적 이해를 위한 양자역학이 되었든 간에 그 모든 것은 상상력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 어떠한 첨단의 기술도 그 태생은 존재에 대한 질문과, 인문적 각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당장의 직업훈련소 수준의 손재주나 공학적 재능으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상상력은 미래를 선점하는 최고의 비법이다. 오지 않은 것들을 미리 공상해보고, 지금의 당연한 것들을 의심해보는 불온함이야말로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재능이며, 인류 문명을 만든 엔진이다. 지금의 ICT 문명 또한 그렇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어선 확장기술과 메타버스, 인간의 ‘뇌’를 훔쳐온 인공지능, ‘축지술’을 현실화한 사물인터넷, 조물주의 경계를 넘나드는 합성생물학 따위가 모두 그러하다. 창조주가 인간에게만 하사한,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는 능력 덕분이다. 그 위대한 능력을 더욱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교육’이다. 그래서 ‘교육은 산업’이라는 말은 크게 과녁을 비껴간 것이다.
굳이 반박하자면, 교육은 눈앞의 산업적 성과와 기술을 ‘부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기존에 획득한 성취에 종사하게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일찍이 현학자들은 ‘정상’(normal)을 부정했다. 토마스 쿤은 그래서 ‘정상과학’(normal science)의 파괴를 정상적인 과학의 경로로 보았다. 과학자들은 통상적으로 수행하는 안정된 과학적 패러다임을 ‘정상과학’으로 보며 안도하곤 했다. 그러나 기성의 패러다임을 칼로 무 자르듯한데서, 또 다른 ‘정상’이 태어난 것이다. 그렇게 보면, 과학의 진보는 결코 다위니즘의 인과론이나 귀납주의적 연착륙의 결과가 아니다.
하기사 쿤은 지금도 과학계와 문명사가들 사이에서 논증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 판단이야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지만, 그는 분명 과학은 ‘혁명’임을 처음 깨우친 사람이다. 그 말대로라면 과학은 기성의 지식 묶음을 해체하는데서부터 시작된다. 어디 과학뿐이겠는가. 모든 문화와 문명 발달사에선, 절대 다수가 합의한 정상의 지배적 문명 담론은 늘 부정당하고, 변증되면서 진취적 발전을 거듭해왔다. 그 작동 원리가 되는 것이 바로 무한한 상상소들의 조합과 사유이며, 그것들이 새로운 ‘정상’의 것들을 발상하며 기획하는 것이다. 오늘의 디지털 문명 역시 이진법적 상상소들이 빚은 ‘정상’치의 최대값’이라고 하겠다.
디지털 시대에 특히 절실한 것은 끊임없이 ‘정상’을 전복하는 것이다. ‘아직 안 가본 그 세상’에서의 법칙을 공상하며 미리 발굴해보는 것이다. 디지털 시티즌으로서 인간의 본질에 주목하는 인문적 사유가 그래서 필요하다. 디지털 문명의 일탈된 플롯의 실체를 짐작하고, 인간과 디지털 문명이 엮어낸 메타 스토리를 읽어내기 위해서도 그런 사유와 성찰과 상상력은 필수적이다. 협애한 ‘봄’(seeing)에 사로잡혀, ‘동굴’ 밖에 대한 상상력을 잃어버린다면, 보되 보지 못하며, 때론 보이는 것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꼴이 된다.
전기가 통하는 도체도 아니요, 안 통하는 부도체도 아니다. 필요할 때만 전기를 통하게 하는 것이 반도체다. 마치 물과 불을 섞어 그 무언가를 만들 듯이, 애시당초 건널 수 없었던 원자가띠와 전도띠의 경계를 헐어버린 것이 반도체다. 진공관 시대 이래 끊임없이 꿈꾸었던 것이 현실이 된 것이다. 미래학자 중에선 이런 융합적 상상력을 ‘발산사고’로 의미짓기도 한다. 그래설까. 요즘엔 사실(Fact) 검증이나 탐색에 그치지 않고, 그 너머의 의미와 행간을 살피는 고도의 ‘AI 맥락기술’이 뜨고 있다. AI나 알고리즘의 기계 학습 과정에 얼마만큼 인간 사회의 ‘맥락’을 주입시킬 수 있느냐에 따라 정확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총체적 인간성과 그에 대한 사유가 결여된 공학적 태도는 ‘인간’의 원천적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기존의 것을 뛰어넘는 산업 혁명을 이루지도 못한다. 하다못해 1․2․3차 산업혁명까지도 ‘산업을 뛰어넘는 교육'이라는 암묵적 각성의 실현이다. 하물며 4차산업혁명은 말할 나위가 없다. 대립되는 콘텐츠 간에 다층적인 연결 과정의 틈을 허용하는 융합적 의미 생성의 결과이며, 그건 곧 인본적 상상력의 영역이다. 그런 건 단기간의 반도체 계약학과에서 안 가르쳐준다. 그럼에도 여전히 ‘교육은 산업’임을 믿는다면, 그야말로 철학의 빈곤이다. 눈앞의 실물경제에 대한 걱정에서 나온 것이라면 모를까. 진심에서 나온 말이라면, 참으로 걱정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