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 운용 부담, 은행의 자금중개기능 약화 우려”
신흥국 중앙은행 회의, 참가자 다수 “보완책이 먼저”
“기존 결제수단과 상호운용성 보장, 은행과 2단계 체제” 주장
[애플경제 이보영 기자]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CBDC)의 부작용과 단점에 대한 지적도 적지 않다. 특히 신흥국일수록 그런 우려가 크다. 최근 26개 신흥국 중앙은행이 모여 가진 국제회의에서도 이 문제가 논의되며, 공통의 우려를 제기한 바 있다. 이들은 무엇보다 “CBDC 발행 후 그 안정적 운용에 대한 부담과 은행의 자금중개기능의 약화”를 가장 큰 문제점으로 보고 있다.
지난 4월 26개 신흥국 중앙은행이 ‘신흥국과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라는 주제로 개최했던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CBDC를 안정적으로 운용하고, 사이버 리스크 보안을 위한 첨단 디지털 기술력, 이에 소요되는 비용 등이 가장 부담스런 과제”라고 지적했다. 또 CBDC가 발행되면 은행 예금을 대체함으로써 은행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거나, 조달 비용이 높아질 가능성도 지적되었다. 이에 따라 은행의 신용공급 규모가 축소되는 등 자금중개기능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다.
특히 “예금보호 한도를 초과하는 예금이 CBDC로 대체되는가 하면, 금융 불안 등 비상시엔 신용도가 낮은 민간 은행을 중심으로 예금이 CBDC로 인출되는 ‘디지털런(digital run)이 발생하면서 은행의 기능이 위축될 것”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래서 신흥국 중앙은행 관계자들은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중앙은행이 직접 자금을 공급하거나, 그게 여의치 않아 공공부문을 경유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공급)함으로써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가 확대되는 등 통화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았다.
그런 가운데 CBDC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미 널리 대중화된 민간 제공 간편결제나 간편송금 기능에 비해 CBDC가 그다지 큰 폭의 비교우위를 갖지 못할 경우 사용자가 크게 확대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각국 중앙은행들은 나름의 대처 방안을 제시하기도 해 눈길을 끈다. 즉, 자국 내 지급결제수단과의 상호운용성을 중시하되, 은행과 공동으로 2단계 체제를 통해 발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높은 상호운용성을 담보하면서 CBDC가 민간 지급결제수단의 경쟁과 혁신을 촉진하고, 지급결제체제의 안전장치 역할도 해야 한다”는 주문이 많았다. 또 이들은 “민간을 대상으로 CBDC를 직접 발행하기보다는 중앙은행이 은행을 대상으로 발행하고, 회수업무를 수행함으로써 은행과 민간 사이에서 접점 역할을 하는 2단계 체제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도 전해졌다.
그런 과정에서 특히 CBDC에 이자를 지급하는 방안에 대해선 참석 국가 절반이 부정적 견해를 보인 점이 특기할 만한 모습이다. 또 일부 중앙은행의 경우 뱅크런과 자금세탁, 불법자금 거래를 억제하기 위해 CBDC가 ‘가치 저장’ 수단보다는 ‘교환의 매개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을 선호하면서 ‘한도 설정’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CBDC 거래와 관련된 정보나 익명성을 보장하는데 대해선 다수 신흥국들이 유보적 입장을 보인 것도 인상적이다. 그나마 중국의 경우는 소액거래의 경우에 한해서 익명성을 보장함으로써 개인정보를 보호하면서 자금세탁을 최소화한다는 주장을 폈다. 블록체인의 대표적인 기능인 분산원장 혹은 중앙집중원장 기술에 대해선 아직 이렇다할 입장을 정리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CBDC의 국경 간 거래에 대해서도 참석자들은 대체로 유보적이었다. 즉 “효율성을 높인다는 긍정적 효과도 있겠지만, 통화대체 등과 같은 부작용도 있다”면서 “보완책을 마련하고, 국제적 협력을 강화하는게 우선”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특히 높은 인플레이션고 불안정한 경제상황이 지속되는 신흥국들로선 국경 간 자금 이동이 활발해질 경우 자국 통화가 선진국 통화로 대체되는 ‘통화 대체’ 현상과 환율 변동성 확대 등을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다수는 국경 간 거래가 가능한 CBDC 체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CBDC를 설계할 때 일정 규모 이상의 국경 간 거래나 해외송금을 제한하고, 비거주자나 외국 방문객들의 CBDC 보유 상한을 설정하는 등 보완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내걸고 있다.
(자료 : 한국금융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