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디지털 공간은 온갖 기만과 탐욕, 범죄로 물들어 있다. 러-우크라이나 전쟁에선 또 다른 전투 현장이자, 가짜뉴스와 선전․선동이 난무하는 곳이 되어버렸다. 한켠에선 러시아에 그 소굴이 있음직한 멀웨어와 해커들이 어지럽게 설쳐대는 난장판이 되었다. 그 뿐이랴. 지구촌 또 다른 곳에선 인스타그램이 국제 마약 카르텔과 갱단의 게시판이 된지 오래다. 페이스북이 ‘메타’로 상호를 바꾼 것도 맥락은 비슷하다. 본인들은 ‘메타버스’를 지향하는 의미라고 했지만, 어린이․청소년 유해 콘텐츠로 질타를 받으며, 혼쭐이 난 기억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하긴 구글이나 애플, 메타, MS, 아마존, 오라클, 에픽게임즈 같은 디지털 기술의 지배자들은 요즘 그 처지가 편치만은 않다. 이들은 그 동안 유럽에서 유해 콘텐츠나 정보 독점, 유출을 일삼으며 따가운 눈총을 받아왔다. 그러다가 결국 EU로부터 연달아 제재 폭탄을 맞고 있다. EU는 개인정보 활용과 관리를 엄격히 규제하는 GDPR에 이어, 최근엔 콘텐츠 유포와 관리, 검색엔진, 광고 등에까지 통제하는 ‘디지털서비스법’(DSA)을 만들었다. 쉽게 말해 “사용자들의 개인정보나, 온갖 해로운 콘텐츠를 남발하며 돈벌이에만 혈안이 되지 말라”는 것이다.
이 즈음 사용자들의 각성도 중요하다. 지금이야말로 디지털 시민으로서 사용자들에게 중요한 것이 건강한 소비다. 병든 소비가 아닌,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소비 말이다. 건강한 소비는 그 제품과 서비스가 정녕 인간의 선한 욕망의 결과물로서, 바람직한 공동체적 경제행위의 표현이다. 거창하게는 능동적인 인간 존재양식에 가까운 의지와 그 실현 수단으로서의 소비다. 반면에 지금처럼 글로벌 빅테크에 의해 대중에게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방식의 소비는 병든 것이다. 그런 병든 소비는 언제든 디지털 경제의 틀에서 삭제되어야 마땅하다.
다행이라고 할까. 최근엔 건강한 소비와 바람직한 공동체적 양식에 좀더 가까운 듯한 조짐이 고개를 들고 있긴 하다. ‘웹 3.0’의 작동 방식이 그것이다. 이는 그 동안 일방적 정보 전달에 그치며, 애플리케이션 공급자와 소유자가 정보 시장을 독점했던 ‘웹 1.0’과 다르다. 사용자들의 정보를 마사지한 소비자 맞춤형 알고리즘으로 구글이나 애플같은 인터넷 거대 기업이 떼돈을 벌게 한 ‘웹 2.0’의 생태계와도 다르다. 좀더 보편의 가치에 맞는 버전의 웹 세상으로 디지털 민주주의의 실현에 좀더 다가선 것이라고 해야겠다.
‘웹 3.0’은 한 마디로 블록체인 세상이다. 분산과 자율, 투명성, 신뢰, 그리고 불신의 대상을 식별해주는 상호 인증이 그 바탕을 이룬다. 데이터는 더 이상 웹 애플리케이션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저 인터넷 자체의 패브릭에 저장될 뿐이다. 다시 말해 MS나 구글, 메타, 혹은 공룡 게임회사나 기술기업의 애플리케이션에 점유되거나 웹 플랫폼에 매여있지 않다. 대신에 정보를 생산해낸 사용자가 정보의 소유자이자 관리자이며, 빅테크와 같은 웹 애플리케이션 소유자가 감히 정보나 콘텐츠를 마사지하거나 간섭할 수 없다.
한때 사변가들은 웹 세상을 지배하는 고도의 알고리즘과 강력한 인공지능으로, 도덕과 철학이 결여된 공학적 이성만 지배하는 로봇 디스토피아가 출현할 것이라고 했다. 지금 빅테크를 두고 하는 말같다. 그대로 뒀다간 이들 빅테크는 디지털 시대의 빅 브라더로 군림하며, 디스토피아의 망령을 온 세상에 퍼뜨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절실한 것이 각성된 디지털 시민 정신이다. 지금처럼 디지털 공간이 기만과 탐욕, 범죄로 물들어있을 때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면 소비대중은 능동적 주체임을 성찰하고 ‘시민’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디지털 기술의 지배자들에 대한 분별을 통해 건강한 소비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수틀리면 일정 기간 동안 유해한 거래가 작동하지 않게 웹 세상의 질서를 보이콧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디지털 시민에게 주어진 블록체인의 분산된 권력으로 ‘웹 2.0’을 청산하고, 그 휘하의 SNS를 더럽히는 오염원을 말끔히 청소할 수도 있다. 소비자 스트라이크도 좋은 방법이다. 탐욕스런 웹 애플리케이션의 상혼을 제압하며, 건강한 소비를 촉진하고 실현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답은 분명하다. 쾌적하고 건강한 디지털 공간, 그것은 오로지 깨어있는 디지털 시민의 몫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