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를 방화 용액에 담가 화재 원천 차단
ESS나 전기차 등 분야 화재 방지에 기대감
[애플경제 진석원 기자] 배터리가 물 속에서도 작동할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 같지만, 최근 이러한 상식을 뒤집는 기술이 등장했다. 이른바 '워터 인 배터리(Water-in-Battery, WIB)’ 시스템이다. 이는 특수 방화 용액으로 만들어진 물속에서 구동하기 때문에 화재 위험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에너지화학공학과 연구진은 한국동서발전, 교원창업기업 ㈜포투원,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KTC)과 합동으로 WIB 시스템 개발에 나섰다고 17일 밝혔다. 합동 연구팀은 WIB 시스템이 적용된 100kWh급 에너지저장시스템(ESS)을 만들어 실증할 예정이다. 신재생에너지와 연계해 폭발 위험이 없는 ESS 기반 전기차 충전소 운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WIB 시스템은 방화물질을 녹인 용액 안에 배터리를 넣어 작동시키는 개념이다. 정상적으로 작동되면 배터리의 열 효율이 높아져 수명이 늘어나고, 과한 발열 시에도 겉을 둘러싼 방화물질이 산소와 열을 차단하면 화재를 미연에 방지하는 원리다.
연구팀이 자체 제작한 ESS 모듈을 활용해 열폭주 시험으로 WIB 시스템의 성능을 테스트한 결과 화재 예방 효과가 검증됐다.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에서 실험을 진행한 결과 WIB를 적용한 ESS는 기존 ESS와 달리 폭발과 추가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 해당 결과와 WIB 시스템의 개념은 국제학술지에 출판했으며 관련 기술도 특허로 출원했다.
ESS는 생산한 전력을 저장 장치에 저장해두었다가 필요할 때 전력을 전달해 전력 사용 효율을 높이는 시스템이다. 특히 재생에너지 등 발전량이 일정치 못한 상황에서 매우 유용하여 한 때 미래산업의 필수적인 요소로 여겨졌다. 하지만 반도체와 같은 신성장동력으로 촉망받던 ESS는 잇따른 화재로 안전 문제가 불거지며 발전에 제동이 걸렸다. 이후 아직까지 제대로 된 활성화를 이루지 못한 실정이다. 때문에 정부를 비롯해 배터리업체 등 다양한 업계 기업들은 화재를 방지하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WIB는 아직 상용화가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ESS 화재를 막는데 큰 기대를 자아내는 기술임은 분명하다는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지난 1월에는 SK에너지 울산공장에서 ESS 화재가 일어나 약 100억원 이상의 피해가 발생한 바 있다. 정부에서 ESS 안전 강화를 위해 수 차례 대책을 준비하던 상황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2017년 전북 고창의 ESS 화재 이후 국내에서만 총 34번의 ESS 화재가 일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ESS화재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결국 대부분의 화재에 배터리가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 유력하다. 배터리 자체에 결함이 없을지라도 배터리 충전과 방전시, 배터리 보호 조치가 미흡할 경우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처럼 기존 ESS 시스템은 화재의 원인이 다양하고 화재가 발생할 경우 대부분 설비가 불에 타버리기 때문에 정확한 원인을 규정하기도 어렵다.
이에 연구팀은 WIB 기술로 ESS화재를 넘어 전기차 화재도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UNIST의 김영식 교수는 “최근 5년간 국내에서만 약 30건의 ESS 화재가 보고되는 등 배터리 화재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왔다”며 “바닷물 속에서 작동하는 해수전지가 화재에서 안전하다는 점과, 전기차 화재 진압을 위한 침수 소화 사례에서 착안해 방화물질 속에서 작동되는 배터리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WIB 기술은 내년 하반기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먼저 시제품을 제작한 후 이를 1년간 실증할 예정이다. 한편 UNIST 김영식 교수는 “WIB 시스템은 기존 ESS 시스템의 개념을 뒤엎는 독창적인 아이디어의 결과물”이라며 “향후 세계 ESS 시장의 활력을 불어넣을 신기술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