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경제 박경만 주필]페이스북이 ‘메타플랫폼’으로 이름 바꾼지 얼마 안되어 창사 이래 최대의 수모를 겪었다. 이달 초 주가가 26% 급락하면서, 전체 시총의 20% 이상이 사라졌고, 미국 증시 사상 최대의 단일 기업 주가 낙폭을 기록한 것이다.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굳이 하나를 꼽으라면 ‘메타버스 신기루’ 탓이라고 할까. 수 일 전 J.P모건이 ‘메타노믹스’라는 구체적 비전을 제시한데 비해, 메타플랫폼의 ‘메타버스 플랫폼’은 처음부터 그 실체가 아리송했다. “메타버스가 갖는 미래가치”라는 저커버그의 선언은 그저 알쏭달쏭한 말장난으로만 들렸다.
‘메타버스’란 용어는 최근 장삼이사의 시쳇말처럼 값싸게 소비되고 있는게 사실이다. 그렇다보니 일각에선 단어 자체에 좀은 식상하며, 약간의 멀미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그 행간에는 “과연 메타버스란게 있기나 한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도 배어있고, 심지어는 “마케팅을 위한 실체가 없는 사기 수법”이란 혹평도 등장한다. 하긴 MMO RPG나 FPS 타입의 게임에선 이미 메타버스와 유사한 룰이 작동되어왔다. 이에 “전혀 새로울 것 없는, 가상자산과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자산 거래 수단에 불과한 것”이라고 폄하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우선 메타버스가 급부상하게 된 산업적, 혹은 문명적 모티프를 한번 돌아볼 일이다. 단편적으로 보면, 디지털 문명과 기술의 발전이 DNA(Data, Network, AI)를 촉진시켰으며, 이것이 메타버스라는 핵심 인프라를 일깨우는 동기가 되었다. 또한 ‘코로나19’도 빠뜨릴 수 없다. 이로 인해 비대면 사회가 일상화되었으며, 가상세계가 새로운 사회적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메타버스 기술’에 대한 ‘익숙함’도 무시할 수 없다. 이미 게임 시장을 중심으로 AR/VR 기술은 높은 상용화 수준에 도달한 바 있다. AI는 일반이 잘 몰라도, AR이나 VR은 이미 다양한 상품으로 소비 대중에게 익숙하게 스며든지 오래다.
그 함의를 한꺼풀 더 벗겨보면, 여기엔 경험경제 혹은 행동경제라는 기표에서 채굴되는 실천적 방법론도 담겨있다. 비물질적 생산물, 즉 아이디어, 이미지, 코드, 지식, 사회적 관계 등이 경제와 생산행위의 중심에 설 수도 있다는 점에 우선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자원과 가공, 유통, 소비로 이어지던 전통적인 생산체제의 외부에 존재했던 ‘외부경제’ 혹은 ‘불경제’(不經濟 ․ diseconomy)이자, 안토니오 네그리의 ‘삶정치적 생산물’이라고 하겠다. 그런 것들이 실재와 가상현실을 넘나들며 무한한 상상계(界)에서 노닐면서, 생산과 경제의 핵심 테마로 부상한 것이다. 메타버스는 바로 그 노니는 판을 깔아주는 것이다.
메타버스는 또 VR이나 AR보다 그 반경이 한층 넓다. 후자들은 메타버스의 부분집합이라고 할까. VR은 어느 누군가가 가상의 영상이나 풍경, 공간 등을 체험하기 위한 도구로 아주 적합하다. 이에 비해 메타버스는 인터넷상에서 다른 사용자와 아바타를 통해 교류하는 ‘공간’에 주력하며, 일종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는게 본연의 취지다. 그래서 VR이 개별적이며 일방적이라면, 메타버스는 복수의 관계성을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한 가상현실을 뛰어넘어, 새로운 또 하나의 인간사회 내지는 소우주를 기획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메타버스는 가상의 기승전결을 통해 현실의 욕망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실용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최고의 도구로 부상하고 있다. 현실에서는 실현할 수 없는 환경이나 상황을 만들고, 그것을 많은 사람과 함께 체험하며 또 하나의 현실을 구현할 수 있다. 신기술 개발이나 연구 등에서 메타버스는 더욱 요긴하게 쓰인다. 실재하는 공간에선 불가능한 상황을 메타버스로 시뮬레이션하고, 이를 토대로 이노베이션을 촉진시킬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앞서 메타플랫폼의 패착은 어쩌면 ‘페이스북’ 버전에 머무른 시각으로 메타버스를 바라본 탓이 아닐까 싶다.
분명 메타버스는 ‘반짝’하다 사라지는 트렌드가 아니다. 인류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꿀 거대한 흐름(Big-Wave)이 될 것이다. 물론 웹1.0이나 웹2.0시대처럼 선명하고 직관적인 부가가치를 선사하진 못하고 있지만, 사용자의 의향에 따라 무한한 문명적 시너지를 자유롭게 창출하는 플랫폼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메타버스 시대’엔 그 초월적 기술의 본딧말과 쓰임새부터 다시금 해부하고 깨쳐야되지 않을까 싶다. 하물며 상호 자체를 ‘메타’로 바꾼 ‘메타플랫폼’ 같은 기업은 더욱 그래야 할 것이다. 이 회사의 주가가 언제 회복될지는 알 수 없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