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앞두고 가트너가 2022년의 ‘미래 기술’ 5가지를 꼽았다. ‘스마트 스페이스’, ‘동형 암호화’, ‘생성 AI’, ‘그래프 기술’, ‘메타버스’가 그것이다. 가트너는 이 기술들이 내년부터 본격화되어, 향후 수 년 내에 디지털시대의 주류기술로 정착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가트너라 하면 세계 산업 지형 분석의 독보적 기관인 만큼 일단은 존중해야 할 것이다.
하긴 ‘스마트 스페이스’는 지금의 ‘코로나19’ 시국에 적절한 스마트화된 공간 기술이다. 그 과정에서 AI를 필두로 한 다양한 IT기술이 동원될 것이다. 이른바 ‘생성 AI’도 획기적이다. 데이터로부터 인공물의 표현을 학습한 후 원본 데이터와 흡사하되 새로운 인공물을 생성해내는 AI 기술이다. ‘유비쿼터스’하면서도 투명한 보안을 지향하는 ‘동형 암호화’나, 비즈니스 관행, 프로세스, 모델, 기능을 재구성하는 ‘그래프 기술’, 그리고 시대의 관행어가 되다시피한 ‘메타버스’ 모두가 획기적인 것들이다.
그런데 뭔가 아쉽다. 가트너의 ‘5가지’ 기술이 간과한 그 무엇이 있는 것 같아서다. 다름 아닌 ‘경험’이다. 정확히는 ‘경험을 새로운 경험으로 만드는 기술’이다. 물론 가트너의 ‘5가지’마다 그 행간에 ‘경험 기술’이 스며있긴 하나,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별도의 기술 아젠다로 괄호를 둘러치는 것이 그에 대한 온당한 인식이 아닌가 싶다. 사는 방식이나 체험이 모조리 돈이 되고, 돈으로 사야만 하며, 개인의 삶과 실존적 경험이 현실과 가상 공간에서 수많은 대본으로 번역되어 공유되는 지금 세상이기에 더욱 그렇다.
지금 디지털시대의 인간은 개인적 관심도 체험도 ‘돈’으로 치환되는 공유의 판옵티콘을 맴돌고 있다. 그런 세계에선 너와 나의 삶의 모습이나 희로애락의 조건이 모두 하나의 시장이다. 상품이며, 공유재이며 경제적 객체라고 하겠다. 그래서다. 연결된 모든 것들의 체험을 새로운 경험으로 치환하고 상품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디지털시대 최고의 기술이다. 그런 기술의 소유자는 또한 ‘체험경제’의 기획자이며 지배자나 다름없다.
공간과 물자의 상품화가, 이젠 인간 경험과 시간의 상품화로 바뀌어 가는 시대다. 인간의 삶의 공간과 시간 자체가 가장 희귀한 상품이자 자원이며, 하루 24시간의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어 유통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경험을 어떻게 잘 조직하고 구성할 것인가. 그에 관해선 빅데이터와 사용자 경험을 수집하고 재생산하는 앱 제조자, 그리고 애그리게이터들이 선두에 설 것이다. 그 과정에서 또 한번 인간사회의 우열과 분화가 이뤄질 수 밖에 없다. 이들 시장 조성자들은 다수의 평범한 네트워크 참여자들을 압도하며, 부를 축적하고, 불평등의 수혜자가 될게 뻔하다.
일단 그런 불평등과 인간소외에 관한 해법은 별개로 치자. ‘체험경제’로 인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어떤 모습의 유기적 피드백을 구사할 것인가 하는 유려한 사변도 일단 논외로 접어두자. 분명한 것은 아이디어, 개념, 경험을 지배함으로써 갖게 되는 힘과 능력은 공간이나 물리적 자본을 지배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사실이다. 많은 체험을 소유하며, 세상의 존재 방식을 자신만의 기호로 치환할 줄 아는 능력이야말로 세상을 복속시키는 힘이다. 지금같은 초연결 세상일수록 더욱 그렇다.
한편으로 이는 ‘자유’의 조건이기도 하다. 체험과의 거리두기나 ‘경험기술’에 대한 무지는 곧 비접속에 의한 부자유로 이어질 것이다. 디지털화된 시대 정신의 부재 아니면, 아날로그 관성의 굴레에 익숙한 것이라 하겠다. 그런 점에서 ‘경험’의 소유냐, 그로부터의 배제냐 하는 문제는 근대적 이성이나 합리성과도 별개의 것이다. 혹여 탈근대의 빛과 그늘을 함께 지닌 수구적 메타포라는 비판도 가능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감히 가트너의 ‘5가지 기술’이 가능하기 위한 최고의 기술로 '경험'을 꼽고 싶다. 그야말로 미래를 선점하는 가장 확실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