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소스나, 개방된 데이터 플랫폼인 오픈API는 이 시대의 ‘착한 테크놀로지’의 상징이라고 하겠다. 전자는 누구나 코드를 자유롭게 수정하여 사용할 수 있는 SW이며, 후자는 열린 플랫폼을 활용해 인간에게 이로운 온갖 것들을 만들어내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그처럼 ‘물고기 잡는 법’을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건조한 IT세상에서 모처럼 더불어 살고자 하는 인간 본성이 돋보이는 ‘젖은(Wet) 기술’이다. 디지털 시대가 본받을 만한, 인간 협업의 도구라고 할 만하다.

오픈된 기술 생태계는 일단 기술의 질과 양을 무한증식, 발전시킨다. 누구나 부담없이 기술개발의 공식을 공유하고, 응용함으로써 온갖 다양한 맞춤형 SW와 기술이 만발하게 한다.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 블록체인, 클라우드, 사물인터넷 등 제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들이 오픈소스를 자양분 삼아 성장하고 진화하게 하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요즘 들어 주로 공적 연구기관들을 중심으로 오픈소스 플랫폼 구축에 발벗고 나서는 분위기여서 반가울 따름이다.

이들은 오픈소스와 API를 공개하며, 다양한 연구과제에 접목하곤 한다. 안팎의 협업을 도모하며, 오픈소스 R&D 플랫폼을 구축하거나, 상호 협력을 바탕으로 오픈 소스코드 개발에 힘을 쏟는 모습도 드물지 않다. 때론 깃(Git) 기반의 저장소와 오픈소스 컴플라이언스를 자동화하는 시스템도 제공한다. 아예 오픈소스 커뮤니티 기능과 비즈니스 모델을 공유하기도 한다. 가히 개방되고 진보된 연구개발 문화가 국내에도 뿌리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그 때문에 오픈소스와 오픈API 풍토는 국가경쟁력의 촉매가 된다는 찬사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오픈’된 기술 풍토는 그 보다 더 큰 사회적, 경제적 함의를 담고 있다고 하겠다. 그 의미를 좀 부풀린다면, 제로섬의 ‘승자독식’이라는, 브레이크 없는 욕망에 대한 엔진 브레이크라고 할 만하다. 돈과 재능, 기회와 경험 등 디지털 시대의 치명적 자산을 갖지 못한, ICT문명의 소유로부터 배제된 기술 취약층의 생존 공간을 허락하는 것이다. 투우장의 ‘케렌시아’와 같다고 할까. 피흘리며, 마지막 가쁜 숨을 내쉬는 소를 위한 피난처를 연상케 하는 것이다.

하긴 필자의 이런 관찰은 한국 사회 특유의 치열한 ‘성공’ 담론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다. ‘경쟁’이라는 이름하에 나와 내 가족에 반하는 그 어떤 ‘공평’한 사회적 가치도, 지금 우리에겐 ‘불공정’한 것이다. 오로지 ‘능력주의’를 숭배하며, 이에 맞지 않는 모든 것은 공정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된다. 혹자가 표현했듯이, ‘실패’가 아닌 ‘성공의 덫’에 걸려 절망만이 가득한게 오늘의 ‘선진국’ 한국이다. 하긴 세계에서 ‘한국’을 가장 폄하, 비관하는 사람들이 ‘한국인’이라고 했던가. 인정사정 볼것없는 살풍경한 성공지상주의, 드라마 ‘오징어게임’보다 더 치열한 오징어게임이 낳은 결과다.

그래서다. 지금 ‘한국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작은 여백과 잠깐의 ‘멍’때리는 시간이다. ‘실패와 성공’이 아닌, 연대와 융합의 문법으로 삶을 조직하려는 느린 호흡이다. 오픈소스처럼 신기술을 타인에게 공여할 수 있는 사회적 증여의식과 연대의식 또한 절실하며, 수평적 네트워크로 세상을 재구성하려는 공유체계와 관용도 필요하다. 제러미 리프킨 역시 ‘물재(物材)의 소유보다 정신적 소속의식’과 같은 융합적 포용력을 강조했다. 박탈과 획득이 아닌, 공유된 관계, 그리고 상호 신뢰와 의존이 디지털 시대의 이데올로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당장의 기술발전보다 더욱 중요한 문명의 기술이라고 하겠다. 오픈소스와 API를 접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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