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행정부에게 '가점'?, 텍사스 주지사․상원의원 ‘재선’ 도구로
유력 외신들 ‘산업적 측면’ 보단, ‘정치적 의미’에 주목하며 보도
삼성, 뉴욕․아리조나 검토 후 텍사스 선택, “2천개 첨단 일자리 창출”

[애플경제 이보영 기자] 삼성이 미 텍사스 테일러 시 인근에 미화 170억 달러 규모의 칩 공장을 새로 짓기로 한 것을 두고 각종 외신과 워싱턴 조야가 떠들썩하다. 삼성이 이런 결정을 하기까지의 과정과 배경을 둔 해석도 다양하다. ‘뉴욕타임즈’나 ‘로이터’, ‘블룸버그’ 등 유력한 외신들은 이를 두고 “독자적인 미국 내 공급망 확충을 위해 바이든 미 행정부가 가해온 ‘압박’을 염두에 둔 타협책”으로 분석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나아가선 다가올 중간선거와 멀리는 대선을 앞둔 양당 정치인들의 복잡한 이해관계까지 거론되고 있다.

물론 IT나 테크 전문 매체들은 대체로 팩트 위주의 사실을 전달하는 경향이다. 이에 비해 특히 ‘뉴욕타임즈’는 그 배경으로 바이든 행정부와 워싱턴 정가의 움직임에 주목하는 한편, 국제 반도체 대전의 향후 지형 변화도 가늠하고 있다. 이 신문은 “국회의원들과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에서 만들어진 중요한 부품들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에 대해 우려를 키워왔다.”며 이를 가장 큰 배경으로 꼽았다.

신문은 “중국은 국경 내에서 컴퓨터 칩 생산을 장려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했고, 대만과 한국은 반도체의 주요 부분을 생산한다. (백안관과 의회의) 정책 입안자들은 이것이 미국을 경제적, 국가 안보에 불리하게 만들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면서 삼성에 대한 미국측의 집요한 압박을 에둘러 시사했다. 그러면서 “테일러 시에 지을 삼성의 새로운 칩 공장은 최근 몇 년간 미국에서 건설된 것중 가장 큰 규모”라며 “다만 이에 맞서 인텔도 올해 아리조나에 있는 기존 캠퍼스에 있는 두 개의 새로운 공장에 기공식을 가졌고, 대만의 TSMC도 역시 아리조나 새로운 공장을 짓고 있다.”고 비교했다.

‘로이터’ 통신 역시 ‘텍사스 삼성 칩공장’의 복잡한 셈법을 언급했다. ‘로이터’는 우선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자급을 위한 그간의 노력을 돌이켰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첨단 기술에서 중국에 우위를 점하고, 자동차와 같은 중요 산업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반도체 제조와 연구를 활성화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의 연방 자금 지원을 약속했다.”면서 삼성전자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에 대한 압박과 회유 전술을 환기시켰다.

‘로이터’는 또 브라이언 디즈 미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국장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삼성의 투자를 환영하는 성명을 통해 “미국의 공급망을 확보하는 것이 바이든 대통령과 그의 행정부의 최우선 과제”라고 밝힌 점도 언급했다. 특히 “제조 및 기술과 같은 우리의 힘의 원천에 투자하기 위해 ‘모든 도구’를 사용하고 ‘모든 방법’을 추구할 것”이라고 다짐한 대목도 주목했다. 그 ‘모든 도구’와 ‘모든 방법’의 결과 중 하나가 이번 삼성의 텍사스 공장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삼성의 이번 발표는 미국 내 반도체 제조업체들을 설득하기 위한 바이든 행정부의 초당적 노력에 큰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요약했다. 실제로 현지에서 열린 발표 기자회견에는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외에 존 코닌 텍사스주 상원의원, 그리고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 등 정계 인사들이 두루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다가오는 중간선거나 대선 국면을 염두에 둔 이들로선 이번 삼성의 결정이 큰 우군을 만난 것이나 다름없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이날 애벗 주지사는 삼성의 김 부회장에세 “고맙다(Thank You)”는 인사를 10여 차례나 반복하기도 했다. 그리곤 “(삼성의) 이번 결정은 (텍사스주의) 낮은 세금, 합리적인 규제, 강력한 인프라를 기반으로 한 텍사스의 경제 환경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자화자찬격의 인사말을 남겼다.

‘블룸버그’ 역시 “바이든 행정부가 국내 반도체 생산을 활성화하고 미국 기업들의 공급망을 떠받치려 하고 있어 이번 선정은 바이든 행정부의 승리”라고 표현했다. 특히 ‘블룸버그’는 “이 회사(삼성)의 최근 행보는 오랫동안 텍사스주의 기업친화적 조세정책을 내세워온 공화당 소속 그레그 애벗 주지사에게 ‘작은 쿠데타’이며 내년 재선 출마를 준비하면서 논란을 빚어왔다.”면서 “삼성은 그곳(그런 배경이 있는 주)에 투자하는 다른 거대 기술 기업 목록에 합류한다.”며 자못 정치적인 해석을 가하기도 했다. 실제로 최근 몇 달간 텍사스로 공장을 이전하겠다고 밝힌 기업에는 테슬라, 오라클, 휴렛 패커드 엔터프라이즈 등이 있다.

텍사스는 지난 겨울 며칠 동안 광범위한 정전으로 인해 텍사스 오스틴에 있는 삼성의 기존 반도체 공장에 약 3천억~4억 원의 피해를 입었다. 애벗 주지사는 앞서 발전소를 위한 전력 공급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전력망이 안정적이고 탄력적이며 믿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강변했다. 그처럼 궁지에 몰렸던 그에게 이번 삼성의 결정은 크나큰 도움이 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테일러시 인근의 텍사스 윌리엄슨 카운티의 새 공장 부지는 삼성이 그 동안 몇 군데 고려했던 부지 가운데 최고의 인센티브를 텍사스 주 등 당국으로부터 제공받는 조건이다.

이에 질세라 이날 기자회견장에 참석했던 코닌 상원의원도 20일 바이든 행정부에 “칩 제조업체를 미국으로 유치하기 위해 더 많은 자금을 투자할 것”을 요구하며 “국가 안보상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코닌은 “중국이 계속 무력시위를 한다면 세계 대다수 국가는 중요 반도체 공급에 있어 어려운 처지가 될 수 있다”고까지 말했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 다지기와도 무관치 않은 발언인 셈이다.

이에 삼성 김 부회장도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에서 선도적인 반도체 제조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삼성 같은 기업을 지원하는 환경을 조성해줬다”고 감사해 하고 “우리는 또한 정부와 의회가 국내 칩 생산과 혁신을 위한 연방 인센티브를 신속하게 제정하기 위해 초당적으로 지원해 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한다”고 덕담을 건넸다.

아직 삼성측은 새로운 공장이 모바일 기기와 자율주행차에 동력을 공급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 첨단 논리 칩을 넘어 무엇을 만들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일부 외신은 네덜란드 ASML(ASML)이 만든 기계를 이용해 5나노 이하의 최첨단 칩을 만들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을 전하고 있다. 이 같은 칩은 삼성의 기존 미국 오스틴 공장이 주로 만드는 14나노와 28나노미터 칩보다 단위면적당 더 많은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다.

오스틴에서 40km 떨어진 테일러 부지는 500만 평방미터에 달한다. 이 공장은 내년 상반기 착공, 2024년 하반기 생산과 함께 2,000개의 첨단기술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애벗 텍사스 주지사는 한 술 더 떠서 “이를 통해 최소 6500명의 건설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의 결정은 미국과 한국의 입지 가능성에 대한 수개월간의 숙고 끝에 내려졌다. 애초 삼성전자는 현재의 텍사스 오스틴에 있는 다른 미국 반도체 공장보다 훨씬 더 큰 공장을 애리조나주와 뉴욕에 건설할 것을 고려했다. 그러나 인프라 안정성, 정부 지원, 기존 공장과의 근접성 등을 고려해 텍사스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특히 백악관이 글로벌 반도체 제조사들에게 미국에 더 많이 건설할 것을 촉구하면서, 텍사스나 아리조나, 뉴욕주 등 각 주정부는 이들의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해왔다. 텍사스 테일러시는 특히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테일러시, 교육당국, 인근 카운티 등은 각각 이 회사에 수억 달러의 세금 감면 혜택을 약속했다. 또 반도체 공장은 풍부한 물과, 안정된 전력 공급이 필요하기 때문에 인접한 지역에서 물을 운반해 시설을 갖추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외신들은 이번 발표로 인해 가까운 시일 내에 당장 반도체 공급난이 완화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 ‘로이터’는 해동국제증권그룹의 제프 푸 애널리스트를 인용, “삼성의 새로운 시설은 아마도 2024년 말에야 온라인화될 것”이라고 전했다. 푸 부사장은 “대부분의 완성차 업체들은 성숙한 기술로 만든 반도체 대신, 당장은 첨단 4나노미터와 5나노미터 칩을 활용할 것”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게다가 제조에 필요한 막대한 투자 때문에 칩 제조 공장은 매우 비싸고 착공하는 것 자체가 더디게 진행된다. 이번 삼성의 ‘테일러 프로젝트’는 최근 글로벌 반도체 회사들이 용량을 늘리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대규모 프로젝트에 대항하기 위한 성격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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