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소재․장비, SW 자급률 높이는데 주력, 관련기업 투자 유치”
EU, “글로벌 기업 역내 유치, 천문학적 투자 ‘반도체 동맹’ 추진”
일본, ‘외국 파운드리 국내유치 등, “한국, EU․대만과의 협력 등도 필요”
[애플경제 이보영 기자]
세계 반도체 물량이 공급난을 빚는 가운데, 시장 경쟁 또한 치열하다. 과거 반도체 강국이었던 일본의 퇴조에 이어 한국과 대만이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는가 하면, 그 뒤를 중국이 바짝 뒤쫓고 있는 양상이다. 또 미국과 EU 역시 자국 내 생산을 독려하며 반도체 자급 체제를 추구하고 있어 국제적인 경쟁을 더욱 가열시키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 전자설계자동화(EDA) 및 핵심 지재권(Core IP), 설계(로직, DAO), 장비 측면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고, 중국은 조립·포장·시험 부문에 강점을 갖고 있다는 평가다. EU도 전자설계자동화, 핵심 지재권, DAO(개별반도체, 아날로그 등), 반도체 장비 등에서 제한적인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가운데 특히 세계 반도체 시장을 양분하다시피하는 한국과 대만, 그리고 역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EU, 반도체 2등국의 신세를 탈피하려는 일본 등의 움직임이 주목꺼리가 되고 있다.
그러면 한국을 제외한 이들 국가의 반도체 전략은 어떠한가.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우선 대만에 대해선 “대만은 코로나19 및 디지털 경제 전환에 따른 단기적 반사 이익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각국의 반도체 자주화 움직임에 대응하고 산업의 비교우위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에 몰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기관은 자체 ‘세계경제 포커스’를 통해 또 대만 반도체 산업의 △제조기반 강화 △기술 및 핵심 장비·소재 경쟁력 강화 △고급 인재의 안정적 확보를 이 나라의 핵심적인 전략으로 꼽았다.
애초 대만 반도체 산업은 선진 장비·소재, 화학품, 소프트웨어, IP 등의 유럽, 미국, 일본 등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높은게 특징이다. 그런 가운데 미·중 간 무역 마찰이나 기술 경쟁이 치열해지고, 일본의 대한 수출규제 등 통상마찰로 공급망이 불안정해짐에 따라 자급력을 높일 필요가 커졌다. 실제로 “대만전자장비협회에 따르면 2020년 대만 반도체 전·후 공정 장비의 자급률은 각각 1%, 15%에 불과하다”고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전했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대만은 고급 인재 육성과 확보, 과학기술 연구개발 등의 소프트 파워를 강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장비, 소재, 소프트웨어의 수입 의존도를 낮추는 한편, 글로벌 장비·소재 기업의 대만 투자유치를 적극 주선하고 있다. 특히 자주적 산업 생태계 및 안정적 공급망을 역내에 구축하기 위해 반도체 클러스터를 확장, 신설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첨단 기업 리쇼어링이나, R&D 보조 지원, 세제 혜택, 산학연 협력 플랫폼, 국내외 고급 인재 육성 등의 구체적 방안도 집중 추진키로 했다.
EU는 글로벌 기업들을 적극 역내에 유치하고, 반도체에 천문학적 투자를 하는 내용의 ‘반도체 동맹’을 결성키로 해 주목을 끈다. 우선 2030년까지 글로벌 생산량 중 EU의 점유율을 지금의 2배인 20%로 늘린다는 목표로 1,450억 유로를 투자하는 등 전력을 쏟고 있다. 유럽의 공동이익에 관한 프로젝트, 즉 ‘IPCEI’에서 반도체는 배터리, 수소경제와 함께 중요한 프로젝트로 선정되었다. EU는 또 ‘2030 Digital Compass’를 통해 반도체 생산목표를 재확인하고, 전방위적인 투자와 함께 디지털 기술 분야 전문인력 양성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 반도체를 ‘6대 핵심 전략산업’으로 분류하고, 역내 반도체 기업이 참여하는 ‘반도체동맹’을 결성하고, 국제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또 세계 유수 반도체 기업을 적극 유치하고, 구체적인 인센티브 지원안도 마련하는 등 공격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정책이 반드시 순탄하진 않을 것이란 전망도 만만찮다.
실제로 유럽의 대표적인 반도체 기업인 ‘STMicroelectronics’는 “EU가 구상하고 있는 반도체동맹의 필요성을 못 느끼겠다”며 불참의사를 밝혔고, 대만의 파운드리 기업인 TSMC 역시 “이미 미국에 공장을 설립하기로 결정한 만큼 현재로서는 EU 내 생산설비 구축계획은 없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일본도 별도의 ‘반도체전략’을 발표한 데 이어, 반도체 전략을 ‘성장전략’의 주요 내용으로 포함시키는 등 적극적인 반도체 정책의 구사하고 있다. 일본의 반도체전략은 △첨단 반도체 양산체제 구축 △차세대 첨단 반도체의 설계·개발 강화 △반도체기술의 그린 이노베이션 △자체 반도체 제조 기반 재생 △경제안전보장 관점에서의 국제전략 추진 등이 주요 내용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특히 일본정부는 자신들의 가장 큰 약점으로 파운드리가 없다는 사실로 보고, 자체 반도체 소재·제조장치 산업의 강점과 결합하는 방식으로 외국의 첨단 파운드리를 유치하는 전략으로 방향을 선회했다”고 밝혔다.
그 중 일본정부는 ‘포스트 5G 네트워크’에 맞는 차세대 첨단 로직 반도체 설계·개발에 주목하고 있다. 반도체기술의 그린이노베이션을 촉진하기 위해 파워반도체와 광전자 반도체를 집중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또 외국 파운드리의 협력을 이끌어내어 세계에서 숫자는 가장 많지만 대부분 노후화된 국내 반도체 생산설비를 현대화하고 신·증설한다는 방침이다. 반도체 기술 유출을 방지하되, 미국, 대만, 유럽 등 동맹국과 협력하여 이노베이션과 안정적 공급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일본이 ‘반도체전략’을 통해 과거 1980년대 반도체 ‘왕국’을 부활시킬 수 있을지 여부는 ‘첨단 로직 반도체 양산체제 구축’의 성패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는게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전망이다. 실제로 지난 2월 대만 TSMC가 차세대 3D 패키징 기술 연구개발 센터를 일본에 설립한다고 발표한 데 이어, 6월 초에는 구마모토현에 반도체 공장을 신설한다고 발표하는 등 외국의 첨단 파운드리 유치에 나름의 성과를 거두고 있긴 하다.
그러나 “일본의 반도체 소재·제조장치 기업들이 일본 정부 의도대로 국내 공급망만을 고수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 견해가 다수”라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다만 미국의 대중 디커플링정책 심화에 따른 미·일 간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 가능성, 그리고 일본정부의 외국 첨단 파운드리 유치전략의 결과는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과도 직결되는 주요 변수”라고 적시했다.
연구원을 비롯한 전문가들은 그래서 한국 반도체 산업이 상대적으로 열위에 있으면서 EU가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반도체 설계나 제조장비 기술 분야에서 한·EU 협력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한다. 또 “한국은 대만의 반도체 산업 경쟁력이 높아지고, 자주적 공급망 구축에 따라 한국·대만 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등의 변수에 적절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얘기다.
현재로선 한국과 대만 양국 모두 상대적으로 열위에 있는 반도체 제조장비 및 소재의 경쟁력 향상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또 소재·장비의 국산화 및 전량 대체는 기술 난이도로 인해 소요시간이 많이 걸리고, 그 수준의 한계가 존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공급선 다변화 측면에서 (대만과의) 상호 협력이 가능한 부분을 모색해볼 필요가 있다”는 연구원은 “대만이 TSMC, UMC, ASE 등 자국의 대표 반도체 대기업을 활용하여 중소기업의 기술을 개발하고, 산학연이 연계된 고급 인재를 육성하는 등의 사례를 참고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자료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