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이 세계적인 열풍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최근엔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되는 83개국에서 OTT 시장 1위를 차지할 정도라니, 가히 지구촌 규모의 ‘오징어게임’ 신드럼이라고 해야겠다. 제작 당시만 해도 이 영화는 찬밥 신세였다. 그러던 것이 넷플릭스에 의해 뒤늦게 빛을 보면서 인간과 세상의 모순을 일거에 함축한 ‘명작’으로 떠오른 것이다. 정색하자면, 이 작품은 인간과 물질 문명 간의 자리매김, 인간의 상호작용과 인간욕구가 과연 ‘인간의 몫’을 어느 정도까지 보장할 것이냐는 감독의 원천적인 질문이 배어있다.
‘오징어게임’은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서바이벌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게임에 도전한다는 내용이다. 9회로 구성된 줄거리는 약간 과장하면 꽤 철학적이다. 일확천금을 위해 목숨을 거는 게임 장면들 또한 결코 낯설지 않다. 주식이나 부동산, 코인 등에 목을 맨 요즘 세상을 그대로 옮겨온 듯 싶고, 시장만능과 기술만능이 판치는 천민자본주의의 민낯과도 정확하게 오버랩된다. 더욱이 사회적 약자일수록,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처할수록, 마지막 요행이라도 붙잡고자 하는 단말마적 인간조건을 그야말로 ‘드라마틱’하게 극화한 것이다.
허나 ‘오징어게임’은 현실적 측면에서 그 보다 더한 씁쓰레한 여운을 던지고 있다. 기획과 각본, 제작을 총괄한 황동혁 감독은 최근의 ‘신드롬’에 대해 “얼떨떨하다”고 토로한 바 있다. 그건 미처 예상치 못한 성공에 대한 ‘얼떨떨’함이자, 작업 초기 “이가 6개나 빠질 정도로” 고생해야 했던 회한이기도 하다. 애초 이 작품은 평단에서도 구성과 소재, 이야기의 흐름을 두고 “기본적인 미학 요소조차 없는 작품”으로 폄하했다. 국내 대기업이나 돈많은 투자자들도 외면했다. 그러던 것을 뜻하지 않게 넷플릭스가 선뜻 손을 내밀었고, 미증유의 히트를 친 것이다.
‘어설퍼 보이는 구성과 스토리’가 장차 세계적 히트작이 될 줄 넷플릭스가 미리 예상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선견지명까지는 몰라도, 넷플릭스는 성공과 실패의 복합적 옵션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간의 투자 히스토리로부터 키워진 학습능력으로 미래의 불확실성과 위험을 감수한 것이다. 그 결과는 250억이란 ‘저렴한’ 투자에 비해 그 600배나 되는 수익을 안겨주는 ‘대박’으로 되돌아왔다. 어떤 확률이론이나 양자역학적 측정조차 무색하게 한 실험이었다. 시종 생사를 건 리스크로 점철된 극중 내용처럼, 넷플릭스야말로 ‘위험’을 생산요소로 삼는 ‘오징어게임’에서 일확천금을 챙긴 것이다.
넷플릭스는 그 동안 국내에서 5천억 투자에 못미치는 4천억 매출을 감수해왔다, 하지만 ‘오징어게임’의 세계적 히트는 그런 기회비용을 한방에 지워버렸다. 성공과 실패의 융합적 리스크에 대한 열린 시선으로 결국 루저 아닌 최후의 승자의 자리를 꿰어찬 것이다. 세계 최강의 OTT 사업자로선 위상은 더욱 견고해졌다. 그래선지 요즘 국내에서도 넷플릭스의 위세는 대단하다. SK브로드밴드에게 마땅히 지불해야 할 망 사용료조차 안내겠다며 버티고 있다. 그 액수가 곧 1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 정도면 ‘넷플릭스 제국주의’를 떠올릴 만도 하다.
오징어게임’ 7화 VIP편에선 강화유리와 일반유리로 된 다리에서 떨어져 죽은 자의 시체를 산자가 건너뛰어가는 상황이 펼쳐진다. 수많은 루저들의 퍼레이드, 그리고 최후의 승자 역시 루저일 수 밖에 없는 모순된 장면들이다. 그러나 인정하긴 싫지만, 넷플릭스는 승자이되, 결코 루저일 수 없다. 더욱이 이번 제1탄 ‘오징어게임’에선 말할 나위조차 없다. OTT시장의 모든 루저들을 깨진 유리 사이로 떨어뜨린, ‘최후의 승자’라고 해야겠다. 우리로선 뼈아픈 대목이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