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의 인 앱 결제 ‘갑질’에 대해 당국이 칼을 빼들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강력 제재에 나선지 오래고, 국회에서도 ‘구글 방지법’ 제정이 한창이다. 앞서 구글은 자기네 앱 마켓인 플레이스토어를 이용하는 앱 개발자들에게 판매 대금의 30%를 수수료로 떼고, 결제도 구글 페이 같은 자사 앱으로만 하게 했다. 그야말로 소비자들의 뒤통수를 친 셈이다. “순수하고 신선했던 세계 IT신화의 주역들, 이젠 다시 봐야겠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긴 구글뿐 아니다. 돈 앞에서 염치없기론 아마존이나,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같은 빅테크들도 매 한가지다. 운영체제에 대한 지배적 위치를 무기로 시도 때도 없이 새로운 버전 장사에 나서는 MS의 막무가내 행보는 이제 시장의 관성이 되었다. 아마존도 미디어 스트리밍 시장에서 경쟁자인 로쿠를 제압하느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이다. 무려 20개 통신사로부터 400개 이상의 라이브 스트리밍 채널을 공급받아 그 중 200개 이상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모두들 ‘돈독’이 잔뜩 오른 화상들이다.
이들 빅테크가 내세운 ‘무료’라는 것도 공짜가 아니다. ‘무료’의 달콤한 유혹 뒤엔 수많은 구매자들을 끌어들이려는 조삼모사의 꼼수가 숨어있다. 많은 사람들이 ‘무료’에 취해 오도가도 못하는 ‘브랜드의 노예’가 될 즈음 곧바로 표정을 바꾼다. ‘돈내고 사용하라’는 것이다. MS가 요즘 ‘윈도365’를 자랑하며, “‘마이크로소프트365’에 연결된 회사 계정이 없는 사용자는 윈도우365 액세스가 불가하다”며 짐짓 미안한 표정을 짓는 것도 같은 얘기다.
이에 비한다면 많게는 수 백, 수천만의 고객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이루고, 수익모델을 창출하려는 노력은 칭찬받을 만하다. 그러나 그것도 때론 술수와 패착을 부른다. 하다못해 핸드폰을 10분만 끄고 있거나, 플랫폼을 사용 안해도 구매 포인트를 적립해주는 등 소비자의 아무런 기여도 없이 포인트를 남발하곤 한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 그간 부여한 포인트 지출을 충당하느라, ‘구독’ 시스템을 동원하지만, 역부족이다. 구독료로 포인트 비용을 메꾸며 돌려막기에 나서지만 때를 놓치기 일쑤다. 최근의 머지 포인트 사태가 그런 경우다.
신흥 빅테크들의 순결했던 탄생비화나 ‘도원의 결의’는 실종된지 오래다. 오직 제로섬의 시장쟁탈이라는 욕망의 불길만이 그들을 감싸고 있다. 이는 요즘 새삼스레 소환되는 밀턴 프리드먼의 유령을 떠올리게 한다. 재산권을 천부적 권리로 신봉하는건 그렇다치고, 프리드먼은 독점체제가 부(富)의 총량을 늘려 소비자들의 복지 총량을 늘린다고까지 했다. 요즘 빅테크 경영진들의 머릿 속엔 그런 신자유주의 갈래의 원초적 탐욕이 가득한 듯 보인다.
하지만 프리드머니즘을 닮은 그들의 행동은 결코 자신들을 위해서도 이롭지 않다. 애초 정치권력, 종교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외친 17~18세기 ‘원조 자유주의’는 자유방임이나 시장독점과는 거리가 멀다. 합리적인 경쟁을 배제한 강자독식이나 시장왜곡은 더욱 아니다. 정녕 방임 속의 무한경쟁은 소비자의 자유를 옥죌 수 밖에 없다. 소비자 효용은 줄어들고, 구매욕을 떨어뜨려 구매 총량도 줄어드니, 독점적 빅테크 자신에게도 손해가 아닐 수 없다.
앞서 ‘머지’도 그런 고민을 하기보단, 섣불리 구글, 아마존을 흉내내려다 낭패를 본 경우다. 비단 이 회사뿐 아니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형태의 앱테크 산업이나 포인트 장사꾼은 많다. 불공평하고 불공정한 소비자 기만도 판을 치고 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제러미 리프킨을 빌려 ‘소유의 종말’로 인한 ‘접속’과 ‘이용’ 탓이라고 한다. 그러나 틀렸다.
그가 말한 ‘종말’은 소유의 객체되기를 끝막음하고, ‘인간 존재’를 회복한 주체로서의 부활을 뜻함이다. 사필귀정이라고 할까. 접속과 이용을 틈타 욕망의 화신이 된 빅테크들에 대한 비판이 요즘 시장에 팽배하다. “다시 보자! 빅테크!”가 소비 대중의 관용어가 되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