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 자율운항선박 시장 규모, 143억 달러에 달할 전망
해양사고 방지, 해운 인력 부족 해소, 운용 비용 절감 기대
국내, 대형조선3사가 개발 주도... “민관협력으로 AI·5G 등 선택과 집중 필요해”
[애플경제 윤수은 기자]
최근 우리나라, 유럽, 중국 등 조선, 해운 강국들이 경쟁적으로 자율운항선박을 개발 중이다.
자율운항선박의 정의는 발표하는 기관마다 다양하나, 공통적으로 ‘선박 스스로 주변 상황을 인지하고 제어하여 운항하는 기술’이라는 개념을 포함한다. 해양수산부는 자율운항선박을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센서 등을 융합하여 지능화・자율화된 시스템을 통해 선원의 의사결정을 지원 및 대체할 수 있는 차세대 고부가가치 선박’으로 정의내리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마켓스앤마켓스에 따르면, 세계 자율운항선박 시장 규모는 2019년 71억 달러(약 8조 1145억원)로 추산되며, 2030년에는 143억 달러(약 16조 3434억원)로 2배 가량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조선업의 경쟁 화두가 가격이 아닌 기술로 바뀌는 자율운항선박 시대의 도래는 세계 1위인 한국 조선 산업에 위기이자 기회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가운데 미래 자율운항선박 시장의 성공을 위해 5G·AI 등 우리만의 경쟁력 있는 솔루션 분야를 발굴하고 집중하자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의 김용균 수석이 펴낸 ‘국내외 자율운항 선박 최근 동향과 시사점’에 관한 보고서(이슈분석 191호)가 대표적이다.
배가 스스로 움직이게 되면 무엇이 달라질까?
보고서는 자율운항 기술이 본격화되면 해양사고 방지, 해운 인력 부족 해소 및 운용 비용 절감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중앙해양안전심판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해양사고 발생건수는 2001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 2020년에는 3156건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러한 해양사고의 대부분은 인적요인으로 발생되는데, 미국 연안경비R&D센터 연구에 따르면, 해양사고 원인의 약 75~96%가 인간의 실수 때문에 야기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자율운항 기술이 도입되면 해양사고 방지뿐만 아니라 전통적 선박 대비 25% 이상의 운용비용 절감 효과가 예상된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해상물동량이 세계 경제 성장률, 유가, 환율 등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기에 해운 산업은 실적 변동성이 큰 경기순환산업이다. 또 경쟁은 치열하나 서비스 차별성이 낮아 수익성은 그다지 높지 않은 편이다.
보고서는 상업 선박 운용비용 중 연료비와 인건비가 80% 이상으로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자율운항선박으로 연료비와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다면 해운 업계의 수익성 개선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전했다.
더불어 완전 자율운항선박이 실현되면 선원 거주공간과 이동통로, 안전장비 등이 필요 없어 선박을 공기 저항이 적은 형태로 설계해 연비를 더욱 높일 수 있으며, 사라지는 공간에 화물을 더 적재해 운항 효율성 향상도 기대할 수 있다.
한편 자율운항선박 기술은 ESG 이슈, 곧 온실가스 배출 저감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조선・해운 업계는 2008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40%, 2050년까지 70% 감축해야 한다.
현재 국제 무역량의 90% 이상이 국제해상운송에 의존하고 있으며, 전 세계 해운 활동을 통해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운송 분야 온실가스 배출량 중 13%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해사기구가 해상 온실가스 배출 저감을 위해 환경규제기준을 강화한 IMO2020을 시행하여 최근 LNG추진선 도입이 늘어나고 있으며, 미래에는 수소・암모니아 등 차세대 친환경 연료를 사용하는 선박으로 전환될 예정이다.
보고서는 ”국제해사기구의 환경규제를 맞추기 위해서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은 친환경 연료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최적의 경제운항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소화할 수 있는 조선・해운의 디지털화(자율운항선박, 스마트 항만) 도입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다만 선박은 자동차와 달리 건조되는 데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수명주기도 길다. 이에 자율운항시스템 의무장착·보급지원 등 정부의 정책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자율운항선박 도입 확산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기술/시장 문제 이외에 규제, 법률, 보험 등 비기술적 문제들이 해결되야 하므로 자율운항선박 시장이 단기간 내에 급성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자율운항선박이 주는 혜택이 비용을 초과하기 때문에, 기술 성숙도가 확보되고 관련 사회 인프라가 정비된다면 자율운항선박 도입은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이 자율운항선박 기술 리더십 선점, 국내 자율운항선박 개발은 대형 조선 3사가 주도
유럽은 일찍이 2012년부터 3년간 선박 자율운항을 위한 MUNIN 프로젝트를 통해 기술적, 제도적, 경제적 측면의 타당성을 연구하고 전략 방향을 제시해왔다. 핀란드에서는 2018년 12월 세계 첫 완전자율운항 여객선 ‘팔코(Falco)’가 승객 80명을 태우고 핀란드 남부 발트해 연안에서 시험운항에 성공했다.
일본에서는 2019년 10월 일본 선사 NYK가 자동피항시스템 SSR이 적용된 2만톤급 자동차운반선 ‘아이리스리더호’의 시운전에 성공했으며, 중국에서는 2019년 12월 중국 첫 무인 자율운항선박 ‘근두운0호(筋斗云0号)’가 홍콩- 마카오 구간의 시험 항해에 성공했다.
영국 롤스로이스 마린이 2015년에 발표한 기술 로드맵에 따르면 2035년 경 자율운항선박이 실현될 것으로 전망했다. 또, 2030년까지는 연안 원격제어 무인화에 기술 개발의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예상했다.
보고서는 기술 성숙도를 높이고 안전성을 검증하기까지 앞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며, 적어도 2030년 전까지는 원격제어 또는 완전자율운항 단계가 확산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내다봤다.
현재 자율운항선박 기술 개발 주도권은 노르웨이의 콩스버그(Kongsberg Gruppen SA), 콩스버그가 인수한 영국 롤스로이스 마린(Rolls-Royce Marine), 핀란드 바르질라(Wärtsilä), 스위스 ABB 등이 가지고 있다. 유럽 업체들이 이 시장에서 70% 내외의 점유율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국내의 경우 자율운항선박 전문 기업은 거의 없고, 스타트업이 일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산학연관이 함께 공동 연구를 추진하는 유럽·일본과 달리 우리나라 자율운항선박 개발은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대형 조선 3사가 주도하고 있다. 아직 실제 배에 탑재한 솔루션은 없으나 실제보다 축소된 목업 배나 소형 선박에서는 시험운항에 성공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2017년 통합스마트십솔루션(ISS)을 출시한 이후 항해지원시스템(HiNAS), 이접안지원시스템(HiBAS), 선박운전최적화시스템 등을 잇달아 개발 완료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원격 유지・보수 지원, 최적 경제운항 지원 등이 가능한 스마트십 솔루션 DS4를 개발해 국적 선사 HMM에 인도한 컨테이너선에 탑재했다.
삼성중공업은 2016년부터 자율운항선박 기술 개발에 착수했으며, 2022년 자사 원격자율운항시스템(SAS)의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다양한 크기 선박의 실증을 추진 중인데, 지난 2월 목포해양대와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국내 최초로 9200톤급 대형 선박을 이용해 원격 자율운항 기술 실증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르면 오는 8월부터 목포-제주 실습 항로 중 일부 구간에서 원격자율운항 기술 실증에 나설 계획이다.
특허 관점에서 앞으로 중국이 우리나라를 넘어설 우려도 제기됐다. 해양 분야 컨설팅 기업 테티우스는 전 세계적으로 등록된 자율운항선박 관련 특허는 거의 3000건에 이르는데, 이 중에서 96%가 중국에 등록되어 있다고 밝히며, 중국이 앞으로 자율운항선박 기술에서 선두권으로 올라설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특허청은 조선분야 기술・특허트렌드 보고서를 통해, ‘조선 산업의 스마트화’와 관련해 우리나라 조선 3사의 특허 출원·등록건수가 가장 많았으며, 특히 조선 3사 중 삼성중공업이 관련 특허 출원·등록에 가장 적극적인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선 산업의 스마트화’에는 선박 자동화 기술들이 대부분으로, 이 중에서 자율운항선박 관련 특허는 극히 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우리나라는 세계 제1의 조선 강국이고, 세계 7위의 해운 강국이다. 국토 중 3면이 바다로 되어 있고, 해양 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국가”라면서 “현재 중국이 우리나라에 조선업에서 밀리기 시작한 것은 ‘친환경(LNG, LPG 선박)’이라는 기술력에서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친환경이라는 테마 다음으로 조선업의 경쟁우위를 좌우할 수 있는 테마가 바로 자율운항선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기술 주도권 싸움에서 밀리게 되면 우리나라가 언제 다시 중국에 밀려나지 않을지 모른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분야를 발굴하고 선점해서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보통신기획평가원 김용균 수석은 6일 <애플경제>와의 통화에서 “대부분의 R&D가 그렇겠지만, 가장 이상적인 것은 민간이 하기 어려운 분야에 정부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면서 “그 외의 분야는 민간자율에 맡기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가 부족하다고 해서 모든 걸 우리나라가 다 생산해 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율운항선박 솔루션 중에서 우리나라가 강점을 가지고 있는 5G 또는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아직 시장이 성숙되지 않은 분야는 우리도 경쟁해서 선점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면서 “아직 이 시장은 시작도 안 한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김 수석은 “자율주행차의 경우 주변에 파악해야 되는 게 많고, 또 길이 아닌 곳도 갈 수 있다. 하지만 배의 경우는 항로가 정해져 있다. 북유럽의 경우 셔틀 방식의 페리는 지금도 자율운항이 충분히 가능한 것으로 안다”면서 “현 상황에서 기술보다는 법 개정이 우선이다. 자율주행차 같은 경우도 현 도로교통법 상에는 운전자가 반드시 있어야 된다. 해사법 역시 반드시 사람이 배에 타고 있어야 한다. 자율운항에 관한 법적인 규제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발틱국제해운거래소(BIMCO)/국제해운회의소(ICS)가 공동 조사/발표하는 ‘해운인력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해기사 인력 부족률은 2.1%이며, 2025년에는 부족률이 18.3%로 치솟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해양수산부의 최근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해기사뿐만 아니라 부원도 매우 부족한 것으로 나타나, 우리나라에서도 해운인력 부족과 외국인 의존도 심화가 해운 업계의 중요한 고민거리로 대두되고 있다.
조선업의 디지털 기술 도입으로 인한 고용이슈에 대해 김 수석은 “현재 해운인력이 부족한 상황이고, 자율운항선박이 일반 선원보다는 해기사(간부)의 대체이기 때문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면서 오히려 안정성과 편의성 측면에서 호응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김 수석은 “우리나라 조선 산업에서 국산 소재・부품・장비의 자급률은 높지 않은 편이다. 보다 경제적이고 안전한 미래 항해는 결국 핵심 장비・SW경쟁력이 관건”이라면서 장기적으로 노르웨이의 콩스버그 같은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자율운항선박 전문 솔루션 강소 업체가 국내에서도 육성될 수 있는 저변을 마련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국제표준화 주도 및 공공 빅데이터 제공도 정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 수석은 “개발된 기술을 실제로 테스트해 볼 수 있는 자율운항선박 테스트베드 해역을 조성한다던가, 디지털트윈 기술을 활용해 디지털 환경에서 미리 시뮬레이션해 볼 수 있도록 하는 테스트 환경을 기업들에게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다”면서 “자율운항 솔루션이 학습할 수 있는 양질의 해양・선박 공공 빅데이터를 가공해 무료로 제공하는 방안도 적극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