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그건 오로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질문이다. 곧 신의 뜻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의 질서를 기획해보겠다는 도발이기도 하다. 고대 탈레스, 데모크리토스, 아낙사고라스의 반(反)신비주의적 물질주의나, 실험과 논증으로 자연의 법칙을 추론하고자 했던 갈릴레오, 뉴튼, 데카르트의 시도가 모두 그렇다. 중국 공자와 노자, 바빌로니아 조로아스터, 석가의 깨우침이 공존했던 BC 6세기의 지적 요동 또한 그 아류라고 하겠다. 그러던 것이 이젠 AI로 ‘인공 인류’를 잉태하기 위해 또 다른 존재론을 사유할 수 밖에 없게 된 지금이다.

AI가 인간을 대체할 것인가는 이제 진부한 얘기다. 그 보단 인간의 어떤 능력, 그리고 어떤 ‘인간성’을 대체할 것인가, 그게 문제다. 실제로 2015년을 계기로 AI의 진화는 차원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해 일론 머스크 등은 범용 인공지능을 위한 연구소 ‘오픈AI’를 개설하며, 트랜스포머 기반의 초대형 알고리즘 모델을 구축했다. 이에 질세라 구글이나 MS 역시 기존 인공신경망 대신 같은 트랜스포머 언어모델로 맞서고 있다. 한 마디로 “인간과 똑같은 ‘인공 인류’의 시대를 구현하겠다”고 작심하고 나선 것이다.

이미 AI 기술은 여느 생명체는 물론, 때로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을 정도다.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헷갈릴만한 온갖 모순되고 말이 안 되는 데이터들을 고도의 지수법칙과 함수로 조합해 말이 되게 한다. 그런 기능의 ‘GAN’은 방대한 데이터 라벨링과 생성모델을 충돌시키고 답을 구하며 이미 실용화된지 꽤 된다. 오픈AI의 자연어 처리 모델 GPT-3는 한 술 더 뜬다. 하나의 예시가 아니라, 여러 개의 예시를 제시하고 “답을 구해보라”고 했더니 거뜬히 정답을 내놓곤 한다. 일문일답이 아닌, ‘사고’와 ‘추리’가 요구되는 ‘퓨샷러닝’ 기법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GPT-3가 곧 1조개 이상의 매개변수를 지닌 언어모델을 개발한다는 소식이다. 그렇다면 이는 인간의 뉴런이나 DNA 핵산을 조합하는 뉴클레오티드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인간의 뉴런은 10조개 내지 100조개로 추산된다. 수많은 DNA는 각각 10억개의 뉴클레오디트 사다리로 되어있어 그 수를 가늠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인간의 뇌와 유전자가 해내는 ‘능력’을 AI가 해내겠다며 시동을 건 것이다.

AI가 ‘인공 인류’가 되려면, 창조의 비밀에 다가가야 한다. 혹자는 ‘한 사람을 구성하는 질소나 탄소, 물, 철분 따위는 모두 합해봐야 우리 돈으로 1만원 안팎’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물질을 뒤섞기만 하면 ‘인간’이 탄생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런 화학물질이 어떤 조합으로 유전자와 핵산을 만들고 생명과 사유 능력이 있는 ‘인간’을 만들어내는지는 아직 수수께기다. 뉴클레오티드의 순서를 어떻게 바꾸어야 새로운 인류를 만들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물론 어떤 목적에 맞는 인간이나 능력을 위해 유전자를 맘대로 조합한다고 상상할 수는 있다. 그러나 오묘하다고 할까. 지금까지 살았던 그 어떤 인간을 통해서도 나타나지 않았고, 아직 생성되지 않은 미지의 핵산 조합들은 많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무한하다고 해야겠다. 쌍둥이를 포함해서 지구상에서 아직 똑같은 사람 두 명이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AI의 도전은 그래서 무모하기까지 하다.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인공인류’와 인공의 ‘인간성’을 낳으려면, 그 어떤 하이테크로도 쉽지 않은 창조의 자물쇠를 열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 실존의 기원을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른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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