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천국인 미국은 그러나 자본가에게 결코 천국은 아니다. 미국은 현재 세계 디지털 산업을 주므르는 GAFA와의 ‘반독점’ 전쟁이 한창이다.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애플의 두문자를 딴 GAFA는 MS와 GE, GM 등 거대 공룡기업들도 망라하는 기호다. 며칠 전에도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들 거대 기술기업이 막강한 힘으로 시장과 가격을 좌지우지 못하게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검색 기능이나 데이터 수집의 명확한 규칙, 망 중립성 보호 의무, 제품 수리를 자사에게 맡기도록 강요하지 말 것 등 벼라별 규제사항이 무려 72개에 달한다.

얼핏 한국 같으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한국 정부나 국회가 그랬더라면 아마 난리가 났을 것이다. 대기업 집단이나 보수 언론, 경제신문은 물론이고, 상당수 여론이 아마 ‘나라 경제 망친다’며 들고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미 행정부와 의회에겐 이는 되레 정통 자본주의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일상화된지 오래다. 스탠다드오일의 ‘록펠러’를 해체시킨 반독점규제법(셔먼법)까지 거슬러 갈 것도 없다. 최근만 해도 이미 98년도에 마이크로소프트가, 작년에는 구글이, 그리고 금년 들어 페이스북과 아마존, 애플이 차례로 돌아가며 철퇴를 맞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공정하게 경쟁해라, 소비자와 시장을 속이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미국 역시 그런 법안과 규제책이 나올 때마다 시끄럽긴 하다. 하지만 20세기 산업자본주의의 1인자답다고 할까. ‘자유, 경쟁, 사유(私有)’, 즉 자유롭되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는 경쟁과 그에 기반한 소유의 획득이라는 정통 자본주의에 대한 역사적 신뢰가 두터운게 미국이란 나라다. 그래서 이 나라 집단지성은 진작에 깨달았다. 오로지 이익만을 위해 도덕적 선함을 희생시키는 경제 권력들에게 “부디 그러지 말라”며 선한 도덕적 의지를 주문한다는게 괜한 짓이란 것을…. 그래서 부당한 경제권력을 축소하고, 그에 필요한 강제력을 사회 전체의 책임 아래 두는 문제를 고민해왔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이 ‘반독점법’ 과 그 아류의 실천이다.

하긴 경제학이란 학문 자체가 ‘정의롭지 못한 자본’에 대한 분노에서부터 태동했다. 탐욕스런 보호무역으로 돈을 쓸어모으던 중상주의 독점 자본에 분개한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 그렇고, 수정자본주의의 존 케인스, <인구론>의 토마스 맬서스, 자유무역의 태두인 데이빗 리카도 역시 그 속내엔 경제적 약자에 대한 강자의 부당한 압제에 대한 경계가 스며있다. 결국엔 부당하게 부를 독점한 자본을 견제하고, 불평등을 해소한다는게 원조 경제학 텍스트의 핵심이다. 그냥 ‘잘 먹고 잘 살자’가 아니라 ‘함께 잘 먹고 잘 살자’인 것이다.

실제로 미국 독점금지법은 그런 경제학 본류의 취지에 보다 충실한 결과로 나타나곤 했다. 시장에서 다른 경쟁자를 부당하게 제압하는 대기업의 독점을 제한하면서, 미국 경제엔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기업과 새로운 기술이 창궐했다. 지금은 반독점의 타깃이 된 GAFA도 애초 그 수혜자들이다. 자유롭고 창발적인 사고를 허락했던, 합리적인 경쟁 생태계 덕분에 허름한 창고와 낡은 주차장 한켠을 벗어나, 디지털 산업을 휩쓰는 거대 자본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세상, 그게 20세기를 지배한 미국 경제와 팍스아메리카나의 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지금은 디지털 공간의 주인이 세상의 주역이 되는 시대다. GAFA로 상징되는 모든 독점적 경제권력들은 대중이 끊임없이 토해내는 지식과 기호, 정보를 해석하고 재생산하며 돈을 끌어모으고 있다. 그렇다면 달라져야 한다. 사회적으로 책임질 수 없는 경제적 소유권이나 독점을 제어하기 위한 공동체적 도덕심이 작동해야 하는 것이다. 미국의 120년 전 ‘반(反)트러스트법’이 지금에도 맹위를 떨치는 건, 그런 도덕적 각성 덕분이다. 그런 정의로운 각성때문일까. 20억명의 생각을 독점해온 페이스북이 ‘코로나 백신 공포’를 퍼뜨리자, 엊그제 바이든은 호통을 쳤다. “페이스북이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Facebook is killing people)”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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