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기세가 좀체 꺾이지 않고 있다. 각국에서 백신을 투여했음에도 알파, 베타, 감마, 델타 변이가 나오는가 하면, 급기야 델타 플러스까지 등장했다. 이러다간 델타 다음에 엡실론, 지타, 이타를 거쳐 오메가 변이까지 나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기실 바이러스는 인류사를 통털어 문명의 법칙을 바꾸었고, 세계사를 뒤바꾸었으며, 철학의 문법을 구성하는 삶과 죽음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근본에서부터 뒤흔들곤 했다.
그 옛날 아테네의 황금시대를 무너뜨린 것은 전쟁이나 침략이 아니라, 광범위하게 퍼진 장티푸스 바이러스였다. 정복왕 알렉산더의 꿈을 앗아간 것도 말라리아와 풍토병이었고, 서양문명의 물꼬를 바꾼 것 또한 중세 흑사병이었으며, 잉카와 아즈텍 문명도 에스파냐의 총칼보다는 그들이 몰고온 역병에 스러져갔다. 근대 유럽의 풍요의 절정기였던 ‘벨 에포크’를 마감했던 1차세계대전도 ‘스페인 독감’ 앞에선 강제로 종료될 수 밖에 없었다. 19세기 한반도에 창궐했던 콜레라 역시 조선 왕조의 쇠퇴를 앞당겼고, 급기야 남의 나라 식민지로 전락하게 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코로나19’가 지구촌을 엄습하며, 온 세계를 철통같은 봉건적 성곽체제로 몰아가고 있다.
그런 현실을 보고있자면, 오프라인 세계의 병균이나 사이버 공간의 바이러스가 서로 닮았구나 싶다. 사이버 바이러스 역시 그 진화의 연혁과 역사적 동선이 오프라인의 그것과 흡사하다. 바이러스는 이른바 ‘버그’라는 이름을 가진 오랜 기원을 갖고, 기술 문명에 흠집을 가하거나 SW를 망가뜨리곤 했다. 컴퓨터가 등장하기 전, 이미 기계와 장치를 고장내는 많은 종류의 버그들이 횡행했다. 19세기 말 나방(bug)이 기어들어가 발명품을 못쓰게 하는 걸 보고 에디슨이 처음 이 용어를 만들었고, 컴퓨터의 조상이라고 할 튜링 머신을 만든 1930년대 튜링 시절에도 버그로 골치를 앓았다. 컴퓨터가 실용화된 1960년대엔 드디어 공격자가 원하는 코드를 시스템이 임의로 만들도록 강제하는 버그도 등장했다.
IT시대가 꽃을 피운 후엔 기술 발전과 나란히 사이버 바이러스도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야말로 사이버 공간의 ‘팬데믹’이 펼쳐졌고, 지금도 그 연장선상이다. 1990년대말 이미 MS윈도우 운영체제인 Win32 API에서 OS 코딩 오류로 인해 보안 시스템 메모리에 구멍이 뚫리면서 난리가 났다.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버그 ‘프린트데먼’(PrintDemon)은 지금도 완전한 백신을 완성하지 못한 상태다. 권한이 필요한 파일 시스템조차 공격하며 그 속에 실행 가능한 파일을 생성하는 프린터 드라이버를 심는, 참으로 고약하기 짝이 없는 바이러스다.
2010년을 전후하면서 그 수법과 전술은 더욱 교묘해진다. DNS가 웜에 의해 구멍이 뚫리며 인터넷 백본 기능을 상실하거나, 네트워크 교통경찰이라고 할 도메인 타임2이 해커에 의해 맬웨어를 다운로드 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벌어지곤 한다. 가짜 기지국으로 스마트폰을 연결시키는 베이스밴드 프로세서 사기 사건도 드물지 않고, 불량 코드 하나로 수십 억 달러를 날린 사태도 벌어지곤 한다. 이처럼 버그와 악성 사이버 바이러스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창궐하며, 그 사례도 각양각색이다.
지난 세월 사이버 바이러스는 그처럼 변이와 진화를 거듭해왔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언젠가 종식될 수도 있으나, 세균과 질병의 종식이란 애초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사이버 세계의 오래된 버그들이 전하는 교훈도 그러하다. 프로세서와 시스템 행간의 취약성은 늘 어찌할 수 없고, 그렇다보니 항상 해커와 바이러스의 공격에 맞서야 하는 운명이다. 언감생심 바이러스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이란 기대하기 어렵다. 그럼 어떡해야 할까. 차라리 겸손해지는 것이 낫다. 문제와 결함이 해결될 것이라는, 기술 엘리티즘의 오만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과의 익숙한 경쟁을 밑천삼아 공존할 수 밖에 없다. 인류와 질병의 관계가 그렇듯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