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삼성 전기차배터리 안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13일 삼성SDI 천안사업장에서 만났다. 삼성 SDI 천안사업장은 차세대 전기차용 배터리를 연구개발, 생산하는 곳이다. 전기차 부문 협력방안을 포함해 어떤 내용도 발표되지 않았다. 만난 이유는 있었을 것이다.
아무 발표도 없었지만
정 수석부회장은 이날 알버트 비어만 현대차그룹 연구개발본부장, 서보신 현대차 상품담당 사장 등 그룹 관련 경영자들을 대동했다. 삼성그룹에서도 이 부회장과 함께 전영현 삼성SDI 사장, 황성우 삼성종합기술원 사장 등 관련 분야의 핵심 경영자들이 나섰다.
정 수석부회장은 이날 황성우 원장으로부터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 기술을 브리핑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고체 배터리는 안정성과 에너지 효율 측면에서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를 압도할 것으로 주목받는 제품이다. 전고체 배터리는 배터리의 양극과 음극 사이에 있는 액체 전해질을 고체로 대체해 출력 및 에너지 밀도를 끌어올린 배터리로, 업계에서는 오는 2030년께나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종합기술원이 최근 한번 충전으로 800㎞를 주행할 수 있는 전고체 배터리 핵심 기술을 발표했지만 현재는 일본 도요타의 기술력이 가장 앞서 있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수 십분 동안 충전해야 하는 리튬이온 배터리와 달리 전고체 배터리는 단 몇 분이면 충전할 수 있다는 강점을 갖고 있다. 배터리 형태를 바꾸기도 쉽다,
삼성과 현대차의 계산
현대차그룹은 그동안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삼성SDI 배터리를 쓰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배터리 형태에 대한 기술적 이유도 한가지 원인으로 지목됐다. 현대차가 사용하는 파우치형 배터리는 국내에서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에서만 만든다. 삼성SDI는 캔형 배터리를 만든다.. 현대차그룹은 2025년까지 44종의 친환경차를 선보이면서 23종은 순수 전기차로 출시할 방침이다. 내년 초 양산하는 순수 전기차용 배터리 1차 공급사로는 이미 SK이노베이션을 선정했다. 전고체 배터리는 배터리 형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다. 추가 발주나 후속 차량에는 삼성SDI 배터리를 쓸 가능성은 열려 있다.
사실 삼성과 현대자동차그룹의 관계는 협력보다는 견제에 가깝다. 삼성은 2016년 말 9조원을 들여 미국 자동차 전장업체 하만을 인수했다. 현대차는 하만 카오디오를 다른 브랜드로 바꿨다. 두 회샤의 입장을 감안해보면 삼성 입장이 더 절실하다. 하만의 전장사업도 그렇고 자동차 디스플레이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전략적 파트너가 절실하다.물론 현대차그룹입장에서도 자율주행차에 필요한 차량용 반도체나 5G 네트워크 기술 부문에서 아군은 필요하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
차세대 전기차 시대의 게임 체인저는 배터리다.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는 합종연횡이 숨가쁘다. LG화학과 GM은 총 2조7000억원을 투자해 배터리 합적법인을 설립했다. 토요타와 파나소닉도 전기차 배터리 합작법인을 만들었다. 독일 폭스바겐은 스웨덴 배터리업체 노스볼트와 한 배를 탔다. 리튬이온 배터리 시장은 국내 기업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2020년 1분기 세계 각국에 차량 등록된 전기차의 배터리 에너지 총량은 20.4GWh로 전년 동기 대비 14.2% 감소했지만, LG화학은 5.5GWh로 1위를 차지했고,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도 각각 1.2GWh와 0.9GWh로 순위가 두 계단씩 상승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말 발표한 ‘2025 전략’에서 전기차와 수소전기차 판매를 각각 56만대와 11만대로 늘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기아차 역시 올해 초 발표한 중장기 미래 전략 ‘플랜 S’를 통해 2025년까지 전기차 11종 풀라인업을 갖추고 2026년에 전기차 50만대, 친환경 차 100만대 판매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내놨다. 하지만 전기차 1위 기업 테슬라에 비하면 차이가 크다. 테슬라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소형 위주 전기차 라인업에서 벗어나 고급차와 고성능차 분야까지 전기차 라인업을 확대해야 한다. 고출력을 내고, 늘어난 주행가능거리를 확보하면서도 부피와 무게를 최소화하는 기술이 필수적이다. 전고체배터리는 현재 사용 중인 리튬-이온전지와 비교해 1회 충전 주행거리는 2배로 확대하고, 수명도 획기적으로 늘리면서 크기는 반으로 줄이고 안전성도 강화할수 있다. 삼성전자가 고성능 전고체 배터리의 상용화에 성공해 현대·기아차의 전기차에 양산 적용될 경우 테슬라를 넘어 세계 전기차 시장 1위에 오르는 것도 기대해볼 수 있다.
자율주행차까지 협력확대?
삼성과 현대차의 협력 모델이 ‘자율주행차’까지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도 없는 것은 아니다. 업계에서는 삼성과 현대차가 자율주행차 부문으로까지 협력의 폭을 확대할 경우 인텔·구글·테슬라 등 미국 업체가 주축이 된 선두그룹과 한국 업체 간 기술 격차가 상당 부분 좁혀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놓는다. 실제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은 자율주행차 시장 장악을 위해 기술 개발과 지분 투자 등 다양한 방안을 시도하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인 ‘오토노머스 비어클’에 따르면 글로벌 자율주행차 시장은 올해 64억5,000만달러 규모에서 2035년에는 1조1,204억달러 규모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 사업이다.
삼성전자의 자율주행차 반도체 기술 고도화는 주력 사업인 메모리반도체 시장 성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 또한 ‘글로벌 톱3’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업체로 분류되는 앱티브와 손잡고 미국 보스턴에 자율주행차 기술 개발을 위한 총 40억달러 규모의 합작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