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와 러시아의 가격전쟁으로
유가가 폭락하고 있다. 원유시장에서 가격 전쟁이 시작됐다. 사우디와 러시아가 불을 붙인 전쟁이. 시장점유율을 지키기 위한 전쟁으로 국제유가는 폭락하고 국제금융시장은 불안하다.
유가 대폭락
국제유가가 30% 폭락했다. 1991년 걸프전 이후 최대 낙폭이다. 영국 북해 산 브렌트유 선물은 한국시간으로 9일 오전장 초반 뉴욕 전장 대비 30% 폭락한 배럴당 31.02달러까지 주저앉았다. 서부텍사스원유(WTI) 선물은 27% 급락한 배럴당 30달러로 폭락했다. 두 유종 모두 2016년 2월 이후 최저로 내려앉았고 일일 낙폭으로는 1991년 걸프전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유가 폭락은 코로나19로 수요가 줄면서 타격을 받은 산유국들이 결국 수익증대를 위해 증산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산유국들은 감산을 통해 유가를 지지하는 것 대신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증산을 통해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에 나섰다.
지난 주말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과 러시아는 추가 감산 합의에 실패했다. 사우디는 러시아에 하루 150만 배럴 추가 감산을 요구했으나 러시아는 거부했다. 교섭은 깨졌고 2017년부터 이어진 협조 감산은 이번 달로 종료된다. 결국 사우디는 당장 아시아 원유 수출 가격을 낮추고 증산을 예고했다. 아람코는 다음 달부터 일일 생산량을 1000만배럴로 늘릴 계획이다. OPEC는 지난 2014년 미국의 산유량이 증가할 때에도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감산 대신 증산을 택했었다. 증산 전 배럴당 100달러를 넘었던 국제유가는 2015년 배럴당 40달러선 밑으로 폭락했었다. 사우디는 전 세계 하루 산유량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아람코 주가도 폭락
아람코는 아시아에 대한 4월 아랍경질유 선적분의 공식판매가격(OSP)도 벤치마크 가격인 두바이-오만유 현물시장 평균 가격보다 배럴당 3.10달러 낮게 책정했다. 미국에 대해서는 7달러, 유럽에 대해서는 8달러 인하할 예정이다. 지역마다 약 10%씩 가격을 낮춰 점유율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유가 하락은 당연히 사우디로서도 부메랑이다. 오일 전쟁에 대한 우려로 유가가 폭락하면서 사우디의 국영석유회사 아람코 주가는 전장 대비 9% 하락한 30.0리얄로 마감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기업 공개 당시인 32리얄보다 낮은 수준이다. 상장 3개월 만에 상장가 밑으로 떨어졌다. 아람코의 주가 하락은 사우디 경제에 대한 우려를 반영한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거래소도 한순간에 급락했다. 자매거래소인 아부다비 주식거래소도 7.0% 급락했고 카타르 증권거래소는 3.5% 떨어졌다. 쿠웨이트 증권거래소는 하루 하락폭이 7% 넘으면서 거래가 중단됐다. 사우디는 당장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실력 행사’를 통해 경쟁자들의 숨통을 틀어쥐겠다는 계산이다.
가격 전쟁의 내일
국제유가는 올해 배럴당 20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아람코는 생산량을 1000만 배럴로 늘리겠다고 밝혔지만 앞으로 하루 평균 1100만 배럴, 또는 1250만배럴까지 늘릴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우디의 강공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역시 증산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러시아가 추가 감산에 동의하지 않은 것은 감산으로 미국 석유회사들만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는 경계심 때문으로 알려지고 있다. 러시아는 미국의 셰일산업과 미국 경제에 타격을 가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 러시아-EU가 추진하고 있는 천연가스 송유관 사업 ‘노르드스트림2’을 미국이 제재하면서 러시아가 ‘보복’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는 것이다. .러시아도 4월 1일부터 감산 합의와 상관없이 증산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의 증산 규모는 다음 달 확인될 전망이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글로벌 원유 수요가 계속 감소할 거란 전망 속에서 산유국들이 이번 달까지 감산하기로 한 하루 210만 배럴이 다음 달부터 시장에 풀리면 유가는 더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유가 급락은 미국 석유산업에도 큰 타격을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가격 전쟁이 일어나면 파산 위기에 처한 미국 셰일가스 업체들은 더욱 어려워진다. 유가 폭락은 '코로나 공포'에 휩싸인 국제 금융시장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