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 과잉·사드사태로 실적 악화...특허종료 1년반 남기고 조기 반납
한화그룹이 3년 만에 면세사업 철수를 결정했다.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는 29일 이사회 의결을 통해 오는 9월 갤러리아면세점 63의 영업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공식 영업정지 일자는 9월 30일이다.
갤러리아면세점 63의 영업 종료는 한화그룹의 면세사업 조기 철수(특허 반납) 결정에 따른 것이다. 2016년 7월 정식 개장한 갤러리아면세점 63은 매년 적자를 거듭해 지난 3년간 누적 영업손실이 1천억원을 넘겼다.
갤러리아가 사업권을 획득한 2015년 이후 시내 면세점 수가 6개에서 13개로 급증한 데다 예상치 못한 중국발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사태까지 터지면서 주요 면세점의 실적이 급속히 악화했던 게 직격탄을 맞는 원인이 됐다.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는 비효율 사업을 정리하는 대신 백화점과 신규 사업 중심의 경쟁력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또 영업 종료 시점까지 남은 기간에 세관 및 협력 업체와 긴밀한 협의를 통해 면세점 영업을 원만하게 정리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 관계자는 "면세점 사업을 지속하더라도 이익구조 전환이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며 "향후 백화점사업 강화와 신규사업 추진에 집중해 수익성 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의 면세점 사업 철수는 기업 입장에서는 당연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예고된 ‘재앙’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면세점 사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면서 2015년 이후 시내면세점이 급격하게 늘어나게 되자 어느정도 예상된 결과였다.
특히 지난 정부가 면세 사업권을 남발하면서 일찍부터 몇 개 업체가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가 많이 나오고 있었다. 업계에서는 전국적으로 상당수 시내면세점이 적자에 허덕이고 있어 추가 사업 철수가 나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면세점에서 손을 뗀 갤러리아는 앞으로 ‘넘버원(No.1) 프리미엄 콘텐츠 프로듀서’라는 비전 달성을 위해 기존 백화점사업을 강화하고, 신규 사업 확대에 역량을 집중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우선 내년 초 갤러리아 광교점을 열고, 사업장별 리뉴얼 작업에 나선다.
갤러리아백화점이 위치한 지역 내에서 시장점유율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갤러리아의 경우 리뉴얼 등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사업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기 위한 신규 비즈니스 발굴에도 나선다. 그간 국내 유통 업계에서 볼 수 없던 새로운 ‘스트리트 플랫폼’을 선보인다. 백화점을 벗어난 도심 공간에 핵심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에 적합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신개념 플랫폼을 구축해 백화점 사업 모델의 새로운 가능성과 대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갤러리아 관계자는 “사업구조 개편을 통한 안정성 확보로 갤러리아는 향후 2022년까지 전사 매출 4조원 목표 달성에 한 보 더 전진했다”며 “갤러리아의 잠재력을 발휘해 차별화된 ‘뉴 콘텐츠, 뉴 플랫폼’ 개발로 성장을 끌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2015년 면세점 허가를 받은 시내면세점 가운데 영업을 접는 것은 한화가 처음이라 업계의 충격도 심한 편이다. 당시 신세계면세점(신세계DF)·HDC신라면세점·두타면세점(두산)·SM면세점이 한화와 함께 면세점 사업자로 선정됐다. 한화 다음에는 어떤 기업이 또 철수를 결정할지도 관심을 모은다.
최근 따이궁(중국 보따리 상인)들의 시내면세점 쇼핑으로 국내 면세점 실적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 중이지만 접근성이 유리한 신세계, HDC신라 등 서울 도심 주요 면세점을 제외한 나머지 면세점들은 찾는 고객이 줄면서 적자에 허덕였다.
5개 면세점 실적을 보면 모든 면세점들이 지난 3년간 누적 적자를 기록했다. 한화를 제외하고 누적 적자가 가장 큰 SM면세점은 누적 적자만 693억원에 달한다. 이밖에 두타면세점은 약 -605억원, HDC신라는 -48억원, 신세계는 -14억원에 달한다.
신세계·HDC신라면세점은 최근 영업이익이 증가하는 추세다. 신세계는 지난해 363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해 2017년(145억원)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 HDC신라도 107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둬 2017년(52억원)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두타면세점은 2년 연속 적자를 내다 지난해 가까스로 흑자 전환했다. 한화를 제외하면 SM면세점만 지난해 적자를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적자가 지속된 한화 갤러리아면세점63이 사업을 철수함에 따라 3년 연속 적자를 낸 SM면세점도 사업을 이어갈수 있을지 우려도 적지 않다. SM면세점 관계자는 "사업철수 계획이 없고, 점차 업황이 개선되면서 손실 폭도 줄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실제 SM면세점의 지난해 손실은 138억원으로 2017년(276억원 손실)보다 절반 가량 줄었다.
한편 재계는 한화의 시내면세점 포기를 아시아나항공 인수 후보로 급부상한 것과 연결해 주목하고 있다. 항공업계에서는 한화그룹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참여로 기울었다는 성급한 추측도 나오고 있다. 재계에서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지가 워낙 강해 시내면세점 영업 종료 결정이 나온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화그룹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의 유력한 주자로 떠오르면서 기업 구조조정을 통해 터 다지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시각도 있다. 한화가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뜻이 있다면 면세점 사업은 항공과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쉽사리 면세점 사업권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면세점 철수는 오랫동안 한화가 준비해온 사안을 결정한 것인데, 아시아나항공 인수전과 맞물리면서 '오비이락'격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화 그룹측도 “면세점 사업 부진 이후 계속 검토했던 것으로, 아시아나 인수 등과는 무관하다”고 밝히고 있다. 기업의 인수합병전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막판에 어떤 결론이 날지, 상반기 재계의 최대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최기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