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부터 비상체제, 7월 이어 오늘 대규모 ‘대미사절단’ 방미, “전방위 로비’
미국의 무역규제를 위한 ‘232조’ 관련 보고서가 의회에 제출되기 직전이어서 우리 정부도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232’조는 미국 정부가 ‘통상’의 안보를 해친다고 판단될 경우 대외 수입량을 제한하거나, 고율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한 법이다. 정식 명칭은 무역확장법(Section 232 of the Trade Expansion Act)이다. 이는 1995년 이후 사실상 사문화됐다가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후 2017년 부활했다.
만약 이 조항이 원안 그대로 의회를 통과하면 우리나라는 특히 자동차와 철강 부문에서 적지 않은 타격을 입게 될 가능성이 크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자동차 232조’, ‘철강 232조’라고 명명하고, 이를 회피하기 위해 현재 비상 체제에 돌입했다.
오늘부터 오는 2월 6일까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을 비롯한 민관합동사절단이 급히 미국을 방문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들은 미국 현지에서 자동차 232조 등 통상 현안 대응을 위해 미국 정부와 의회 주요 인사들을 두루 만나 설득할 예정이다. 특히 자동차의 경우 미국 안전기준과 우리 차의 안전기준의 ‘동등성’ 인정범위를 확대하고, 픽업트럭 관세철폐기간을 20년 연장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산자부는 이를 두고 ‘아웃리치’라는 점잖은 영어 표현을 썼지만 사실상 미국 의회를 대상으로 한 로비인 셈이다. 사절단 역시 로비단체나 다름없다. 이들은 자동차 232조 보고서가 미 의회에 제출되기 전엔 미국 정부 핵심인사를 대상으로 한국의 입장을 전달하고 설득하며, 현지 분위기를 탐색한다.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엔 미국 116대 의회 핵심인사와 연계망을 구축하고 전문가 집단을 접촉할 예정이다. 또 김 본부장은 ‘철강 232조’와 관련된 업계 애로 사항 해소 등 현안을 논의하는 한편, 한국의 전문직 비자(H1B) 할당 확보를 위한 노력도 병행할 예정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이에 앞서 이미 금년 들어 공식, 비공식 루트를 통해 다양한 대미 로비 활동을 벌여왔다. 지난 5월 민관 TF를 구성한데 이어, 백운규 산업부 장관의 대미 대외 설득작업, 6월의 우리 정부 의견서 제출, 7월의 공청회 참석과 로비 등을 미국의 ‘자동차 232조’ 조사에 대응해 왔다.
특히 지난 7월에는 ‘232’조를 방어하기 위해 이번처럼 대규모 사절단을 보냈다. 당시에도 김 본부장을 대표로 한 민관합동 사절단이 방미, 미국 상무부 공청회 등에 참석하는 등 ‘로비 활동’을 벌였다. 이번처럼 김 본부장을 위시하여 통상차관보, 외교부, 기재부(민간) 자동차산업협회 회장, 현대차그룹 사장, 무역협회 부회장 등 25명의 민․관 인사가 대거 방미했다.
그때 우리측은 미국에 대해 한국에 대한 ‘232조’의 적용이 부당함을 설득했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래리 커들러(Larry Kudlow) 위원장, 백악관 믹 멀베이니(Mick Mulvaney) 예산국장 등 미국 백악관의 통상 관련 핵심인사와 주요 상‧하원의원(7명)과, 그리고 여론주도 두뇌집단(싱크탱크) 관계자들을 두루 만났다.
이들에게 우리측은 “한국은 미국의 핵심 안보 동맹국이자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이므로 한국은 자동차 232조 조치 대상이 아니다”고 설득했다.
김 본부장은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 개정협상을 통한 자동차 분야 미국의 우려가 기우임을 강조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하는 자동차 관세 상호 0% 적용 등 상호 호혜적 교역여건이 이미 조성되어있음을 강조했다. 또 “한국 자동차산업의 미국 투자 등이 미국경제에 크게 기여했다”고 밝히는 한편, “한국은 미국의 핵심 동맹국”임을 강조하였다.
한국측은 특히 미국의 대한 수입관세율이 2011년 2.5%에서 2016년 0%로 인하되었다면, 한국측 역시 대미 수입관세율이 2011년 8%에서 2016년 0%로 같이 인하되었음을 주지시켰다. 특히 미국의 대한(對韓) 자동차 수출이 2011년 1만3천대에서 2017년 5만5천대 (305%↑)로 크게 늘어난 점도 부각시켰다.
한국측은 또 주요 인사들을 대상으로 자동차 232조 이외에도 철강 232조와 관련, “한국은 미측과 첫 번째 합의를 이룬 국가임에도 품목 예외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하며, “국가면제 국가에 대해서도 품목 예외를 인정해 줄 것”을 적극 요청했다.
이에 우리측이 만난 미국 인사들은 대체로 우호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들은 “자동차 232조 조치는 자동차 산업의 복잡한 국제 공급망(global supply chain) 감안시 미국 경제 및 고용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타냈다.
현대차 현지공장 등이 위치한 조지아·앨라바마주 의원의 경우 “자동차 232조 조치가 부과되지 않을 수 있도록 미국 백악관, 상무부 주요 인사들을 지속 설득해 나가겠다”고 밝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두 번째인 이번의 방미 사절단 역시 지난 7월의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다시금 ‘232’조 회피 방안을 재확인하는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사절단은 출발에 앞서 공식 자료를 통해 “의사결정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미 행정부 핵심인사를 수시 접촉하여 한국이 조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는 당위성을 설명할 것”이라며 “여론 조성에 기여할 수 있는 미 의회 및 기업 주요 인사 대상으로도 우리 입장이 대변될 수 있도록 전략적 아웃리치를 지속 전개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232’조는 한때는 국제정세를 뒤흔들 만큼 큰 위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 조항에 따라 1979년, 1982년 각각 이란과 리비아에 원유 수입금지 조치가 단행된 적도 있다. 이를 다시 부활시킨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근거로, 최근엔 미국으로 들어오는 철강과 알루미늄에 10~25% 관세를 부과하기도 했다.
김점이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