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대폰 가격 담합 후 고객 유치 혈안
개인정보 유출 불구 책임 회피 ‘논란’
‘재선임’된 이석채 KT 회장의 ‘퇴진론’이 확대되고 있다. 제주 7대 경관 선정투표와 관련, KT 공대위에 ‘사기죄’로 고발을 당하면서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떠오른 것. 지난해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투표 당시 KT가 국내전화를 통해 투표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전화인 것처럼 속여 상당부분의 이익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 회장은 지난 2009년 KT 회장에 취임할 당시부터 ‘독불장군식 경영’ 행태를 일삼으며 갖가지 논란을 야기한 바 있다. 종편투자 의혹, 낙하산인사 의혹, 직원들 고강도 구조조정, 2G강제 종료 서비스 강행 등 끊이지 않았다. 연임과 동시에 또다시 불거진 이 회장 ‘퇴진론’의 실체를 되짚어 봤다.
국내통화요금 대신 국제통화요금 적용
KT공대위(KT·계열사 노동인권 보장과 통신공공성 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15일 오전 11시 서초동 서울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회장을 ‘사기죄’로 검찰에 고발한다고 밝혔다. KT가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전화투표 과정에서 사실상 국내 전화임에도 불구하고 국제전화인 것처럼 꾸며 국내 통화요금이 아닌 국제통화요금을 부과했다는 게 그 요지다.
KT공대위는 “온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친 이석채 회장은 모든 책임을 지고 즉각 물러나라”며 퇴진을 요구했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4월 ‘세계 7대 자연경관’선정 전화투표 과정에서 KT가 자체 투표 시스템을 도입했음에도 국제전화 식별번호인 ‘001’이 들어간 기존 단축번호 ‘001-1588-7715’ 를 그대로 사용 하면서 불거졌다.
실제로 2010년 12월 투표 시작 당시만 해도 ‘001-1588-7715’ 번호는 영국 국제전화 투표 번호인 ‘001-44-758-900-1290’의 단축번호였다. 그러나 2011년 4월 1일 KT가 국가별 투표시스템을 도입하면서 해외에 전용서버를 따로 설치, 국내전용회선을 연결하면서 사실상 국내전화가 됐다. 국내전화로 변경이 되면서 더이상 ‘001’을 사용할 수 없었지만 KT는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국제전화 식별번호인 ‘001’을 계속 사용, 기존번호를 그대로 유지했다.
하지만 KT는 이에 대해 “기존 투표번호가 TV, 신문 등 광고매체를 통해 널리 인식된 상태여서 변경시 인쇄물 교체, 재광고 등 문제가 있었다”며 “제주도와 범국민추진위원회의 ‘번호변경’불가 요청도 있어 번호를 바꿀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문제는 국내전화로 변경이 됐음에도 KT가 국제요금을 적용했다는 것이다.
국제 음성통화료는 기존 투표 한 건당 144원에서 180원으로, 문자요금은 기존 100원에서 150원으로 올려서 부과했다. 국내 문자요금이 한 건당 20원인 점을 감안했을 때 그리고 국가에 관계없이 1통에 100원인 국제 문자요금과 견주어 봐도 이는 상당히 비싼 금액이다.
KT 공대위는 “KT가 국내에서 이뤄진 통화를 국제전화요금으로 받아 냈다”며 “전 국민이 돈벌이에 환장하는 KT라는 기업에 놀아난 것”이라며 지적했다.
하지만 KT측의 주장은 달랐다. 국내전화가 아니라 엄연히 국제전화라는 것. 일반적인 국제 전화처럼 상대국 교환기를 거치진 않았지만 해외에 있는 투표서버와 국제전용회선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국내전화’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KT는 “국제전화는 국가 간 사람과 사람이 직접 장시간 대화하는 방식이지만 국제전화 투표방식은 사람이 해외에 설치된 서버에 국제망을 통하여 짧은 시간에 데이터 투표를 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사람 간 통화가 아니라 서버에 일방향 투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상대국 교환기를 거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통화료에 관해 기존 요금보다 적게 책정했다며 요금부분에 대해 오히려 반박했다. 지난 2010년 12월 단축번호 적용 당시 건당 1400원이던 요금을 투표 당시에 180원으로 낮췄다는 것.
KT는 “국제통화요금은 현재 10초에 18원이다. 본사가 영국으로 전화해 본 결과 총 100초가 걸렸다. 투표시간이 지연됐을 경우 100초 이상이 걸리는 경우도 있어 KT는 180원을 종량제로 도입했다”고 말했다.
이에 이해관 KT 새노조 위원장은 국제전화라는 KT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이 위원장은 “국제전화 통화호는 양방향이어야 과금할 수 있는데 데이터를 일방향으로 전달했다는 얘기는 전화 가입자가 발생시킨 통화호가 국내 소재 KT국제지능망교환기에서 일단 끝나고 투표 통계 데이터만 해외에 있는 투표 서버로 전달되는 의미”라며 “결국 7대 경관 투표는 국내 전화망에서 종료 처리된 상태고 그 결과만 해외 서버로 데이터 전송된 것이기 때문에 국제전화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번 국민 투표 전화를 통해 KT가 벌어들인 수익금도 논란의 대상이다.
올해 정보공개청구로 드러난 제주도 행정 전화비가 211억원인 것을 감안했을 때 자발적인 시민참여의 경우 공무원 이상의 전화비용이 예상된다. 지난달 방송된 KBS<추적60분>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의 경우 전화투표로 인한 수입 중 10~15%가 통신사에게 배분되고 있었다. 따라서 한국도 마찬가지로 이 룰을 적용했을 경우 KT의 지난해 전화투표 매출액은 277억~416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KT는 “전화투표 이익금 모두는 사회에 환원한 상태라 문제될 것이 없다”고 반박했다.
시민단체는 “KT가 내부정보라며 전화투표에 참여한 전체 전화 통계를 밝히고 있지 않지만 결국 소송 과정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신문 광고도 내고 온라인에서도 소송단 신청을 받아 시민들이 받은 피해를 보상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끊이지 않는 KT 잡음
이 회장의 리더십 논란은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 15일 KT는 휴대폰 가격을 부풀린 후 할인해 주는 것처럼 소비자를 속인 혐의로 SKT, LGU+와 함께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 명령과 과징금을 부과 당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KT는 휴대폰 제조사로부터 휴대폰을 공급받을 당시 출고가를 현저히 높게 책정, 남은 차액으로는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고객을 유인했다. 고객이 마치 고가의 휴대폰을 싸게 구입하는 것처럼 소비자를 속인 것이다. 공정위는 소비자를 기만했다며 KT에51억4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KT는 우선 의결서를 받아본 후 신중하게 움직일 것이라고 밝혔지만 지난 개인정보 유출 사건 때처럼 책임 회피에 급급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지난 8일 KT와 SK텔레콤이 협력체에 의해 고객들의 20만 건에 달하는 개인정보가 유출됐지만 KT는 이에 대한 어떠한 대응책도 마련하지 않았다.
당시 경찰은 이통사들의 협력업체가 해당프로그램에서 빼낸 정보를 한 건당 수십만원에 사고 판 혐의(위치정보보호법)로 브로커와 심부름센터 업자 등 3명을 불구속 입건, 불법 조회된 휴대폰 위치정보 등이 19만8000여건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KT는 이에 대해서도 "현재 경찰이 조사·진행 중에 있어 피해자 규모가 어떤지, 이용자 중 누가 피해를 보았는지는 알 방법이 없다“며 ”경찰 조사가 끝난 후 향후 방향을 논의할 예정”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KT의 이런 대안에 이통사 고객들은 자신의 개인정보가 유출 됐는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무방비 상태에 놓였다.
KT가입자인 박모(27)씨는 “해당 기사가 나오기 전까지 이 사실에 대해 몰랐다. KT측은 이 사실과 관련된 어느 정보도 공지하지 않았다”며 “KT와 무관한 협력사가 저지른 행동이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상담원과의 통화에 어이가 없었다”며 분개했다.
김모(30)씨 또한 “그렇지 않아도 밀려드는 스팸문자와 스팸전화로 피곤한 상태다”며 “믿었던 거대 통신사에서 제대로 된 대응방침은커녕 손 놓고 수사 결과만 기다리고 있다니 황당하다. 게다가 핸드폰 가격 담합이라니 이건 사기나 다름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