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도체 백혈병’ 논란 여전히 ‘현재 진행형’
산재 인정 판결 불구, 삼성 “인과관계 없다” 일축
영문 연구 보고서 공개…열람 자격은 제한 ‘꼼수’


삼성전자가 ‘세계 가장 나쁜 기업’ 2위에 올라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기업으로 떠오르면서, ‘삼성 백혈병’ 논란이 재점화 되고 있다.

 

더욱이 “인류의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기업 사명”이라고 밝힌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발언이 다시금 화제가 되면서 삼성의 노동 인권 처우에 대한 비난 여론이 만만치 않다.

 

삼성전자는 환경단체 그린피스 스위스 지부와 스위스 시민단체 ‘베른 선언’(Berne Declaration)이 지난 5일부터 실시한 ‘퍼블릭 아이 워어즈’ (the Public Eye Awards)에서 16일 오전 11시 현재 1만1241표를 얻으며 2위를 달리고 있다.

 

‘퍼블릭 아이 어워즈’는 세계에서 가장 나쁜 기업을 선정을 하는 어워즈로, 전 세계 시민단체로부터 추천을 받은 40개 기업 가운데 주최 측의 객관적인 검토를 거쳐 6개의 기업이 후보로 압축됐다. 한국의 삼성전자를 비롯해 영국의 바클레이스은행, 미국 광산 기업 프리포트 맥모란, 스위스의 농업 전문 기업 신젠타, 일본 전력업체 텝코, 브라질 광산기업 발레가 그 주인공.

 

현재 누리집(www.publiceye.ch/en/vote)에서 온라인 투표가 한창 진행 중이며 오는 26일까지 진행, 결과는 다음날 발표된다.


삼성전자가 이 같은 조사 후보에 오른 배경에는 ‘삼성 백혈병 논란’이 크게 자리 잡았다.



주최 측은 투표에 앞서 삼성전자의 ‘갤럭시 탭’ 광고를 패러디해 ‘탭할 시간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진실을 대면할 시간입니다’라며 ‘삼성 백별형’ 문제를 꼬집었다.

 

아울러 ‘삼성 백혈병 피해자’ 영상을 통해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공장에서 금지된 독성물질을 사용해 140여명이 암을 앓고 있으며 그중 50여명이 숨졌음에도 삼성전자는 관련성 부인은 물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삼성전자는 한국에서 큰 영향력이 있어 ‘삼성 공화국’으로 불린다고 덧붙였다.

 

현재 시민단체인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접수된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는 제보자만 150명, 사망자만 45명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은 이름조차 낯선 다발 경화증, 중증재생불량성빈혈, 베게네육우종증, 종격동암 등으로 힘겹게 투병 중이다. 사망자는 45명에 달했다.

 

삼성 “조사 결과가 아니라는데 왜 자꾸...”

사실 삼성의 ‘반도체 백혈병’ 논란은 2007년부터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기흥공장 반도체라인에서 일하던 황유미씨와 이숙영씨가 백혈병으로 숨지면서 이를 둘러싸고 삼성전자와 유족간에 ‘산재 공방’이 이어졌다.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는 “백혈병은 10만명 중 두세명이 걸린다는 희귀병인데 딸아이와 2인1조로 일한 선배도 백혈병에 걸렸다”며 “작업 환경으로 인한 직업병”이라고 주장했고, 삼성전자측은 “산재에 책임이 없다”며 유족측과 대립각을 세웠다.

 

이들의 공방전은 결국 법정으로 이어졌고, 지난해 6월 열린 첫 재판에서 “산재를 인정한다”는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이에 불복, 근무환경과 백혈병 발병이 무관하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미국 환경 보건 컨설팅 회사인 ‘인바이론’에 의뢰해 사업장의 근무환경과 백혈병 유발과의 인과관계에 대해 조사한 결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며 더 이상의 논쟁을 차단했다.

 

당시 조사에 참여했던 폴 하퍼 인바이론 소장은 “반도체 제조공장인 기흥 5라인과 화성 12라인, 제조·테스트공장인 온양 1라인의 화학물질 노출환경을 다각적으로 조사했다. 전체 35개 유사노출군으로 분류해 분석한 결과 모두 미국 산업협외가 정한 노출 위험기준에 미달해 안전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작업장에서 암을 유발하는 어떠한 물질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조사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일단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씨의 근무 환경이 문제가 됐던 작업장인 ‘기흥3라인’이 아닌 5라인을 연구 샘플로 택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5라인과 3라인이 비슷한 환경이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정확한 자료로 측정을 낸 결과가 아니라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을 풍겼다.

 

또한 삼성전자가 연구를 맡긴 인바이런사는 그간 필립모리스 담배회사를 위해 간접흡연과 폐암의 연관성을 부정하는 주장은 물론 담배와 암의 연관성에 대한 재판에서 담배회사를 대변한 바 있어 그 결과에 의혹이 제기됐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이 같은 논란을 일축했다. 권오현 DS 사업총괄 사장은 “미국 최고의 조사업체가 결론을 냈는데 무슨 논쟁이 더 필요한지 모르겠다”며 “이번 조사를 계기로 더 이상 불필요한 오해와 소모적 논쟁을 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항소 전 근로복지공단과 사전 교감 ‘들통’

그러나 권 사장의 바람과 다르게 논란은 계속 이어졌다. 암 치료비로 1억원까지 지원하는 방안을 내놓았지만, 여론은 오히려 싸늘했다. 근무환경과 암 발병간에 인과관계는 없다고 다시 강조, 인도적 차원에서 추진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반올림’은 “인도적 차원의 보상보다 왜 그런 질병이 생기는지 원인을 파악해 직업병을 근본적으로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근로복지공단과 삼성전자와의 보이지 않은 딜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해 9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민주당 정동영 의원은 “근로복지공단이 사실상 삼성법무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질타, 삼성전자가 근로복지공단이 항소하기 전 합동대책을 벌였다는 전화통화 내용을 공개했다.

 

또 고용노동부와의 삼성전자의 유착관계도 드러났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2010년 ‘직업성 암 등 업무상 질병에 대한 인정기준 합리화 방안’이라는 연구 컨소시엄 총책임자 및 연구원직에 삼성계열사 출신인 대학 교수들에게 맡긴 것이다.

 

정 의원은 “삼성전자가 백혈병 산재 피해자들과 직업성 암 안정기준을 놀고 소송을 벌이고 있고 사회적 논란의 핵심 당사자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기?을 마련하는 연구 컨소시엄을 사실상 삼성연구팀에게 맡긴 것은 ‘삼성노동부’를 자초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100페이지 영문 보고서를 두시간만에 봐라?

최근엔 ‘꼼수 열람’ 논란까지 불거졌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공장 작업환경과 백혈병은 관련성이 없다’는 연구 결과 발표 자료를 공개, 열람하는 과정에서 갖가지 제한조건을 달은 것.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가족들은 지난 13일 삼성본관 앞에서 ‘삼성 인바이런 연구보고서 제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

 

반올림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12월 한 달 동안 삼성전자 기흥공장에 100페이지 가까이 되는 영문으로 된 연구 보고서를 공개했다. 하지만 이를 보려면 학술적 목적을 가진 개인이어야 하며, 열람시간과 횟수를 하루 2시간 2차례 제한했다. 또 열람을 하기 위해서는 비밀유지 계약서와 개인정보수집이용동의서를 작성해야 한다. 더욱이 열람 사실을 유족들에게 알리기는커녕 영문홈페이지에만 공지를 해, 유족들의 분노를 샀다.

 

이종란 반올림 노무사는 “유족들한테 사전에 고지도 않고 자사 영문홈페이지에 영어로만 공지글을 올리면 누가 알겠느냐”고 지적했다.

 

항의가 잇따르자 삼성전자측은 8시간 동안 한 번 더 열람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100페이지에 이르는 영문 학술자료를 12시간 만에 파악하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측은 “우리나라에서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들어가도 2시간 만에 100페이지가 넘는 보고서를 학술적인 목적으로 검토하는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기나 하냐”며 삼성의 반인권적인 처사를 비판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측은 보고서 내용 중 반도체 관련기술이 있어 유출 우려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전히 여론의 반응은 냉담하다.

 

직장인 김모씨는 “최근에 삼성전자 브라질 공장 근로자들의 비인간적 처우 논란이 불거진 것도 그렇고, 세계 최강 기업답지 않은 비인간적인 모습이 자주 비춰지는 것 같아 그런 부분에서 ‘세계 나쁜 기업’ 후보에 오를만 하다”며 “좋은 제품을 연구하고 내놓는 것도 좋지만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노동 인권에 대해 나 몰라라 하는 행위는 결국 삼성의 이미지를 실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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