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 “기존 산재 신청자들 당시 구체적인 증상 없어”


삼성 “발병 원인 아닌, 영향 가능성만 산재로 인정”

삼성전자가 백혈병으로 발전할 수 있는 ‘재생불량성 빈혈’에 대한 근로복지 공단의 첫 산업재해 판정에 대해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번 근로복지공단의 결정을 겸허히 수용하겠다”며 “다만, 이번 판정은 명확한 발병 원인을 확인한 것이 아니라 영향 가능성만으로 산재를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전에 산재를 신청한 노동자는 단 한명도 인정되지 않아, 삼성전자와 공단 간 양 측에 대한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산재 인정됐지만…

지난 10일 근로복지공단은 삼성전자 반도체 조립 공장 등에서 근무한 여성 근로자 김모씨(37)에 대해 ‘혈소판감소증 및 재생불량성 빈혈’을 산재로 승인했다.

공단관계자는 “근무 과정에서 벤젠이 포함된 유기용제와 포름알데히드 등에 간접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인정됐다”며 “퇴사 당시부터 빈혈과 혈소판 감소 소견이 있었던 점 등이 고려돼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 인과관계가 인정된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근로자의 재생불량성빈혈이 산재로 인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생불량성빈혈(무형성빈혈)은 골수 손상으로 조혈기능에 장애가 생겨 백혈구, 혈소판 등이 감소하는 질병으로 선천적인 경우도 있으나 80% 정도는 후천성인 사례가 많다.

후천적 무형성 빈혈은 방사선 노출, 화학물질(벤젠 등), 약물, 감염, 면역질환, 임신 등이 원인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번에 산재 인정을 받은 김씨는 1993년 12월부터 1년간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근무하다가 온양공장으로 옮겨 약 4년 5개월간 근무했다.

김씨는 재직 당시 빈혈과 혈소판 감소증이 나타났고 퇴사 이후 재생불량성빈혈로 진척되자 지난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다.

공단 측의 애매한 판단 기준

하지만 또 다른 산재 신청자와 유가족들은 근로복지공단의 이번 판단 기준이 과거 벤젠 불검출로 산재 신청 불승인과 엇갈려 공단 측의 이러한 판정에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2009년 당시 국회 환경노동의원회 소속인 김상희 의원(민주당)과 홍희덕 의원(민주노동당)이 압수한 반도체 3사 평가 자료에 의하면 반도체 제조공정에서 사용되는 PR이라는 물질 성분에 1급 발암물질인 벤젠이 검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게다가 벤젠은 국제적으로 인정된 1급 발암물질로 우리나라 산재보험법에 따르면 근로자가 벤젠에 노출된 후 백혈구 감소증, 백혈병 등에 걸리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산재 신청자와 유가족들의 산재신청은 여전히 불승인 상태다.

또한 지난해 6월 서울행정법원은 삼성전자 직원과 유족 5명이 백혈병에 관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사망한 직원 황모씨와 이모씨 유족 등 2명에 대해 “명백하게 백혈병 유발 유인을 입증하지 못하더라도 유해한 화학물질에 복합적이고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백혈병에 걸릴 수 있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지만 근로복지공단은 불복하고 즉각 항소했다.

현재 근로복지공단에 직업성 암과 관련해 산재인정 신청을 한 삼성전자 근로자는 모두 22명이다. 이 중 김씨를 제외한 18명은 산재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들 대부분은 백혈병이며 루게릭병이나 김씨와 같은 재생불량성빈혈도 있다. 나머지 3명은 현재 산재판정이 계류중이다. 산재로 인정받지 못한 18명 가운데 10명에 대한 1심과 2심 소송도 현재 진행 중이다.

공단관계자는 “직업성 암을 유발하는 원인 물질이 벤젠이나 포름알데히드로 보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유해 물질에 노출됐다는 증거가 없다”며 “과거 노출여부를 보더라도 유해물질에 노출됐다고 추정하기 힘들다는 점 때문에 산재로 인정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삼성 “우리와 상관없다”

삼성전자는 공단 측의 판정에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여전히 기존 산재 신청에 대해서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어 산재신청자들과 유가족들의 소송과 시위는 지속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기존 산재 신청자들은 근로복지 공단을 대상으로 산재신청을 한 것이고 공단 측에서 심사를 거쳐 산재판정을 내린 것이기 때문에 우리와 상관이 없다”며 “우리는 누가 산재신청을 했는지 모르고 오직 근로복지공단만이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삼성전자는 지난 1월 환경단체 그린피스 스위스 지부와 스위스 시민단체 '베른 선언'(Berne Declaration)이 실시한 '퍼블릭 아이 워어즈' (the Public Eye Awards)에서 세계에서 가장 나쁜 기업 3위로 꼽힌바 있다.

당시 주최 측은 투표에 앞서 ‘삼성 백혈병 피해자’ 영상을 통해 반도체 생산공장에서 금지된 독성물질을 사용해 140여명이 암을 앓고 있으며 그중 50여명이 숨졌음에도 삼성은 관련성 부인은 물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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