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 씨앤에스테크놀로지(038880, 거래정지) 회장의 파격 행보에 재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현대차 그룹의 2인자였던 그가 자신의 주군이었던 정몽구 회장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는 소문때문이다.


김 회장은 현대차그룹 부회장 재임 시절인 2006년 현대차 비자금 사건 때에 정몽구 회장과 함께 곤혹을 치를 만큼 정 회장의 신임을 받은 대표적 가신이었다. ‘럭비공 인사’도 그를 피해 갔을 정도.

 

그런 그가 2008년 계열사인 현대모비스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 2010년 현대를 떠난다. 당시 재계에선 이를 두고 3세 경영권 승계를 앞둔 예정된 수순이라고 분석했다.

 

이후 김 회장은 그해 3월 차량용 반도체 개발 업체로 현대·기아차의 협력사인 씨앤에스테크놀로지의 회장을 맡게 된다.

 

당시 씨앤에스는 자동차분야 전문가인 김 회장과 반도체 분야 전문가인 서승모 대표이사 사장 체제로 운영, 자동차용반도체 분야의 시너지가 크게 기대됐다.

 

씨앤에스는 현재 현대·기아자동차와 체결한 자동차용 반도체 국산화 개발 계약에 따라 1차적으로 자동차 인포테인먼트용 주문형 반도체인 고성능 칩과 모듈을 공동개발하고 있다. 칩 개발이 완료되면 현대기아차의 신뢰성 검증을 거쳐 본격 양산하게 될 예정이다.

 

또 이와는 별도로 현대자동차 등과 정부국책개발 과제인 스마트 프로젝트를 통해 자동차의 바디·샤시 제어용 반도체도 개발 중에 있다.

 

문제는 다른데서 터졌다. 정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부회장이 개인투자 형태로 자동차 반도체 사업을 관장할 ‘현대차전자(가칭)’를 설립한다는 계획이 알려지면서부터다.

 

‘현대차전자’가 설립되면 씨앤에스는 최대 위기를 맞게된다. 핵심 인재 유출 우려는 물론 일감이 대폭 줄어들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 국내 대·중소기업의 하청 구조로 볼 때, 씨앤에스로선 기업 존폐가 위협받는 상황인 셈이다.

 

결국 김 회장과 서 전 대표의 밀월은 1년 만에 깨진다. 과거부터 호형호제하던 관계는 원수가 됐다. 김 회장은 책임경영을 이유로 지분매입에 나섰고 서 전 대표도 경영권을 위협받는다고 판단, 김 회장에 대한 해킹과 도청 등을 통해 자료수집에 나섰다.

 

갈등의 최정점은 지난 3월 13일 터졌다. 이사회에서 서 전 대표를 대표이사직에서 해임, 김 회장이 단독 대표체제로 추대됐다.

 

이어 23일에 열린 주총에서 김 회장은 “(서 전 대표가)지분 축소로 지위가 불안하게 된 뒤 자신(김동진 회장)의 이메일을 해킹하고 도청까지 했다”고 폭로했다.

 

서 대표는 지난해까지 김 회장(8.9%)에 이어 지분(7.9%)을 보유한 2대 주주였으나, 올 들어 장내매도와 선물옵션 담보로 맡긴 지분이 넘어가면서 0.39%로 격감했다.

 

서 전 사장은 문방구에서 판매하는 어음용지에 날인한 ‘문방구 어음’을 회사 명의로 발행해 채권자 20여명에게 90억3500만원어치를 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를 받고 있다. 또한 김 회장 집무실에 도청장치와 해킹프로그램을 설치한 혐의도 받고 있다.

 

김 회장과 서 전 대표의 갈등의 불똥이 현대차로 튀었다.

 

서 전 대표가 김 회장의 컴퓨터와 이메일을 해킹하면서 2006년도 현대차 비자금과 관련된 문건을 확보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것.

 

김 회장은 현대차에서 오랫동안 중책을 맡아 왔다. 그 만큼 기밀 사항을 많이 알고 있다. 때문에 재계 일각에선 해킹 문건 가운데 김 회장을 비롯해 현대차와 관련된 ‘핵폭탄’급 기밀도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고 있다.

 

지난 3월 10일엔 정 회장이 비자금 사건으로 재판을 받던 2006년에 현대차가 옛 여당의원들에게 구명로비를 했다는 문건도 폭로됐다.

 

당시 8월과 9월 김 전 현대차 부회장은 여당인 열린우리당 내 의정연구센터 소속 386의원 8명에게 1000만원씩이 든 봉투와 고급 와인을 돌렸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하지만 해당 의원들은 정 회장을 만난 건 사실이지만 돈을 받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이 사건은 정치자금법상 공시시효 5년이 지났다. 하지만 정 회장이 386의원들을 직접 만났고 1000만원이 든 돈 봉투와 고급봉투를 돌린 것이 사실이라면 도덕적 비난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의혹이 약과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의 반응을 체크하기 위한 ‘잽’정도이며, 사실은 더 큰 문건을 두고 물밑에서 ‘빅딜’을 유도한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김 회장 역시 현대차측에 섭섭한 감정이 있다는 소문이다.

 

정 회장에게 충성을 했고 비자금 사건으로 곤혹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퇴직 이후 전관예우는커녕 ‘비올 때 우산을 빼앗긴 상황’이라는 것이다. 정 부회장이 개인회사로 자동차반도체 사업을 차리게 되면 계열사에 일감이 그 회사로 몰릴게 뻔하다.

 

김 회장과 서 전 대표간의 갈등에서 시작된 분쟁의 불씨가 현대차 수뇌부까지 미칠 것인지 재계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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