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기 애플경제 발행인·편집국장
김홍기 애플경제 발행인·편집국장

[애플경제 김홍기 기자]

인공지능이 발달하면서 빠르게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숙련도에 따라 일자리의 운명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튀지않는 ‘중간’이 좋다”는 우스개섞인 속설이 적어도 AI와 사람의 일자리 관계에선 통하지 않을 듯 하다. 산업연구원에 의하면 AI에게 일자리를 빼앗길 확률이 가장 큰 대상이 ‘중간 수준’의 전문성을 가진 실무자다. 다시 말해 ‘어중간’한 수준이 가장 위험한 셈이다. 그런 연구 결과는 이제 일자리와 AI의 역학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한 것이어서 흥미를 끈다.

물론 그런 연구결과를 무조건 신뢰할 순 없지만, 이는 향후 펼쳐질 인공지능 시대의 또 다른 단면을 그려보기엔 충분하다. 연구에 따르면 가장 먼저 대체될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 단순 반복업무 종사자가 오히려 생존력이 강하다. 하위의 노동자들도 AI기술을 반복업무에 쓰고, 남는 시간을 좀더 부가가치가 높은 업무에 투입하기 때문이다. AI를 활용해 일의 성과나 성취도를 종전의 중간 숙련도의 전문가 수준만큼 올릴 수 있게 된다. 이에 ‘중간 수준’의 실무자들을 AI로 대체하고, 대신에 비전문 노동자들을 대거 고용하는 상황이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 그런 이유로 하위 노동자들은 임금은 다소 깎일 수도 있으나, 일자리는 보전할 수 있다.

그러면 고난도의 기술과 업무 능력을 갖고 있는 ‘상위 전문가’들은 어떨까. 소위 ‘장인’(匠人)이나 ‘대가’(大家)급의 전문가들은 기존의 업무 역량에다 AI기술까지 직접 활용하면서 더욱 ‘날개’를 달게 된다. 그 결과 생산 시간을 절약하고 더욱 품질좋은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물론, 중간 전문가들의 영역까지 침범하게 된다. 그로 인해 어중간한 전문가들은 더욱 ‘설 땅’이 좁아질 수 밖에 없다. 그 뿐 아니다. 심지어 소비자들까지 포함하여, 비전문가나 하위직 노동자, 최상위 전문가들이 모두 AI를 활용하면서, 중간에 해당하는 전문가의 영역을 다각도로 잠식할 수 밖에 없다. 이걸 두고 산업연구원은 ‘생산자 내의 양극화’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문제는 대부분의 직장인 혹은 화이트컬러 사무직 노동자들이다. 그들 대부분이 그런 ‘중간 수준’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저 그런 숙련도를 가진 대부분의 직장인이나 사무직 종사자들은 최상위 전문가와 하위 노동자 사이에서 그야말로 ‘샌드위치’ 신세가 된다. AI 자동화의 표적이 될 수 밖에 없다. 특히 화이트컬러로 알려진 많은 직장인들이 수행하는 적당한 난이도의 사무나 업무는 가장 먼저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 매일 출근해서 작성하는 기안문, 품의서, 마케팅 보고서, 사업계획서, 프로젝트 리포트 등이 모두 그런 종류다. 이미 챗GPT나 바드가 너끈히 그런 일을 척척 해내는 세상이다. 달리2나 ‘제미니’, 라마2, GPT-4, 더욱이 멀티모달AI까지 도입하면 사람이 필요없게 된다. 글자와 문장으로 된 보고서나 마케팅 계획서를 즉석에서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만들어버린다. 도저히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심지어는 언론매체 종사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고도의 사고와 분석이 필요한 기획기사나 탐사, 르포 기사는 당장 어렵겠지만, 그 외의 단순 팩트기사, 리뷰, 에세이형 박스 기사 정도는 GPT나 바드 정도면 충분하다. 기사 제목도 기존 편집부 기자들보다 더 멋있고, 함축된 카피로 뽑아낸다. IT업계의 앱이나 웹 개발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AI 지원 코딩 정도면 초보자들도 웬만한 소프트웨어 정도는 손쉽게 만들 수 있다. 자연어 처리 기능을 사용하면 일반인들도 간단히 프롬프트를 작성하고, 프로젝트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얻을 수 있다. 그러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스스로 전문가를 자처하던 개발자는 물론 프로그래머 상당수도 필요없게 된다. 그 자리가 비숙련 저임금 노동자로 대체되거나, 아예 AI 개발 도구 중심으로 재편될 수도 있다. 

산업연구원이 예측하였듯이, 결국 살아남는 건 ‘양극화’된, 양 끝단의 직업인들이다. 한쪽은  경영진이나 고위 관리자, 특별한 분야의 엔지니어링이나 고도의 기술자들, 그리고 다른 한쪽은 육체노동과 반복업무를 하면서 AI를 관리, 제어하는 하위 노동자들이다. 그 중간의 기획과 총무, 마케팅 관리, 홍보, 재무, 경리 등 사무직 노동자와 개발자들, 코딩 작업자, 앱 디자이너 등은 사람이 많이 필요없다. 그렇다고 21세기 버전의 ‘러다이트’(기계 파괴운동)를 벌일 수도 없는 일이다. 물론 AI가 실제 산업 현장에 스며드는(임베디드) 경지에 접어들면 꼭 그렇지만은 않을 가능성도 크다. 그럼에도 인공지능은 인류가 여지껏 경험해보지 못한 직업세계를 연출할게 분명하다. 그 결과 대학을 나온 보통의 직장인들에겐 듣도 보도 못한 ‘시련의 계절’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물론 안 그럴 수도 있지만,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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