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와 CEPI, AI로 팬데믹 대응·기초의료 혁신 모색
보건 형평성 향상과 기초의료 혁신에 AI 역할 확대
“AI는 더 이상 의료 보조 기술이 아니라 필수 인프라”
[애플경제 김예지 기자] 팬데믹 이후 세계 보건 전략의 핵심 키워드는 인공지능이다. 백신 개발을 앞당기는 연구 엔진부터 결핵·망막병증 같은 기초의료 지원 도구까지, AI는 공공보건의 판을 다시 짜고 있다.
지난 17일 진행된 세계 바이오 서밋에서 WHO는 형평성 있는 의료 접근성을, CEPI는 초고속 백신 개발 플랫폼을 강조하며 AI가 이끌 글로벌 보건 패러다임의 변화를 제시했다.
AI, 기초의료에서 드러난 가능성
WHO 서태평양사무소 박기동 국장은 “AI의 진짜 가능성은 첨단 병원이 아니라 1차 의료 현장에서 드러난다”고 말했다. 결핵 조기진단을 위한 모바일 엑스레이와 AI 판독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보건 인력이 단말기로 영상을 촬영하면 AI가 곧바로 분석해 환자를 빠르게 찾아낸다.
당뇨망막병증 검사도 같은 원리다. 환자가 촬영한 눈 사진을 AI가 판독해 고위험군을 걸러내면, 전문의가 부족한 지역에서도 치료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 박 국장은 “AI는 의료 접근성을 넓히고 보건 형평성을 높이는 열쇠”라고 강조했다.
초고속 백신 개발을 노리는 글로벌 AI 플랫폼
감염병예방혁신연합(CEPI)은 ‘Disease X 엔진’을 공개하며 팬데믹 대응 전략을 내놨다. 백신 개발 기간을 100일 이내로 줄이는 것이 목표다. 뉴턴 와호메 CEPI 수석책임자는 “AI는 연구자와 함께 일하는 가상 동료가 될 것”이라며 “유전자 분석부터 임상시험 설계까지 전 과정을 디지털화한다”고 설명했다.
이 엔진은 글로벌 슈퍼컴퓨팅 센터와 연결돼 각국이 데이터를 공유하고 연구 결과를 빠르게 교환하는 구조다. 한국 역시 차세대 슈퍼컴퓨터와 질병관리청을 연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CEPI는 국가별 데이터 주권을 지키면서도 글로벌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AI 공장’ 모델을 추진하고 있다.
데이터와 인프라, 공공보건의 새로운 경쟁
AI가 공공보건의 필수 인프라가 되면서 국제 거버넌스 논의도 속도를 내고 있다. WHO는 환자, 시설, 의약품 데이터를 공공재로 구축해 국가 간 공유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각국의 법과 표준이 달라 상호 호환성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이를 항공 교통 규제에 비유한다. 하늘길을 열되, 충돌을 막기 위해 국제 규칙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팬데믹 이후 보건 전략은 IT 인프라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백신 개발과 감염병 대응은 슈퍼컴퓨팅, 클라우드, AI 플랫폼 없이는 불가능하다. 공공보건의 주도권은 이제 의학 지식뿐 아니라 IT 역량으로 판가름 난다.
전문가들은 “AI는 더 이상 보조 기술이 아니라 필수 인프라”라고 입을 모았다. 향후 국제사회가 AI를 공공재로 다루는 논의가 본격화되면 팬데믹 대응은 물론 국가 간 보건 격차를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