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 일대는 씨족사회의 전통이 깊다. 그중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씨 혹은 본관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근대화의 상징인 도시화가 급격히 이뤄지고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혁명적 변화가 지구촌 곳곳을 달구면서 우리도 전통적 씨족사회에 대한 관념이 점차 퇴색되어 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일상에서 “나는 ㅇㅇ의 ㅇ대 손”이라는 자기소개가 흔하게 오가는 것을 보면 그 흔적은 뚜렷하게 남아있고, 크든 작든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분명하다.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우리는 부계의 성을 따르고 있고 외가를 비롯한 방계의 성은 3대를 지나면 희미해져 알 길이 없다. 그것은 바로 가부장적 질서를 중시하던 전통사회의 가치관이 깊이 반영된 족보를 보면 알 수 있다.

“족보는 한 족속의 계통과 혈통 관계를 밝혀 놓은 책”이다. 16세기 이전의 것들부터 전해지고 있는 족보는 물론, 조선 중기 이후 붕당정치의 득세에 일조한 측면도 있다. 그럼에도 족보는 세계사적 유례가 없을 정도로 800년에서 천년 안팎을 이어오는 혈족 관계를 넓고 깊게 다루고 있으며 당시 사회를 잘 반영하고 있다. 필자는 우리나라의 족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훌륭한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관련기관에도 그 필요성을 알리는 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유구한 혈족 역사의 기록을 잘 전승해 왔다는 측면과 당대의 시대상과 신분구조, 그리고 사회상을 잘 반영하는 희귀한 문화유산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족보를 들여다볼 때면 늘 갖게 되는 의문이 한 가지 있다. “족보가 특정 혈족의 계통과 혈통을 반영한 것”이라면, 필자는 “이것이 유전학적으로도 그 의미가 있는 것일까.”라는 합리적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여기서 새삼 AI 학습모델링을 차용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문을 풀고, 정확한 혈통과 뿌리를 찾아내는데도 AI가 매우 유용하지 않을까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AI학습을 위한 빅데이터의 골간이 정확해야 한다. 아마도 다음과 같은 계통도를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나는 부모 두 분으로부터 왔다. 나의 부모는 그들의 부모 네 분으로부터 왔다. 나의 부모의 부모는 그들의 부모 여덟 분으로부터 왔다. 나에게 유전적으로 영향을 끼친 조상들의 혈연관계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이런 공식이 나온다.

만약 자신이 특정 성씨 시조의 27세 손이라면, 2의 26제곱, 즉 2를 26번 곱한 수 만큼 당사자에게 조상들이 유전학적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또 11대조까지 거슬러 올라갈 경우엔 2의 10제곱 곧 2를 10번 곱한 수가 1024이니, 11대조에서 1024명의 유전적 조상이 존재하는 셈이다.

동성동본의 혼인을 엄격하게 금지했던 우리의 조상들은 타 성씨의 건강한 혈족과 혼인했을 것이다. 유전학적 관점에서 보면 오늘의 후손은 그 만큼 자신의 성씨의 혈족으로부터 멀어져 온 것을 알 수 있다.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본래 인간이 다른 영장류를 비롯한 동물과 다른 것은 ”인간은 허구를 만들어 공유하고 소통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이라며, ”허구의 대표적인 것이 종교“라고 주장한 바 있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대를 거듭해 온 특정 혈족의 유전적 자부심이 아니라, ”그들의 조상들이 남긴 훌륭한 정신을 승계 해온 정신적 자부심“일 것이다.

디지털시대엔 또한 족보에서 소외된, 많은 여성들의 사회 정치적 활동이 남성 못지않게 활발하다. 모계혈족의 계통과 혈통을 제대로 다룬 새로운 족보문화 또한 필요하지 않을까. 세상사 그 어떤 것도 AI로 가능하게 된 이 시대에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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