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필자가 몸 담고 있는 서강출판포럼에서 ‘세상을 이어주는 소통’을 주제로 초청 특강을 가졌다. .

사전적으로 풀면 ‘소통’은 ‘사물이 막힘이 없이 잘 통함’을 의미한다. ICT기술과 비대면 온라인 시대라서일까. 사람과 사람, 사회와 사회가 꽉 막혀있다보니 소통은 이 시대의 트렌드가 된 듯 신문 방송마다 요란스럽다. 불통의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단면이다.

디지털시대는 무한대로 범람하는 정보의 홍수로 몸살을 앓을 지경이다. 대학을 위시한 교육기관이 정말 필요한지 의문이 들 정도로 클릭만 하면 필요한 정보가 눈 앞에 펼쳐지고 마음만 먹으면 관련 유튜브나 영상으로 체계화된 정보습득이 가능하다.

모두가 아는 바, “정보는 소통의 원자재”다. 원자재가 없으면 상품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 원자재는 무한대로 공급되고 하루가 다르게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디지털과 인공지능의 조합으로 이뤄진 각종 정보는 밥이나 빵처럼 사람들의 밥상 앞에 놓여 있고 생활공간 깊숙이 침투했다.

그럼에도 ‘소통’이라는 이름의 그럴싸한 상품을 만드는데는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소통의 중요성이 야단스럽게 강조될 만큼 ‘불통의 시대’를 살고 있다. 현대인은 여전히 소통에 목마르고 고독하다. 정보의 바다에서 부유물처럼 이리저리 떠돌고 있다.

전문가들은 흔히 불통의 원인을 이구동성으로 공동체의 붕괴에서 찾고 있다. 공동체의 대표적 공간인 종교활동의 쇠락과,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갇힌 이웃의 결여를 대표적 사례로 들고 있다.

그러나 필자 생각은 다르다. 불통의 근원을 나르시시즘(自己愛/Narcissism)과 탐욕(貪慾)에서 찾고 싶다. 돈 없으면 살 수 없는 자본주의 세상은 나르시시스트와 탐욕주의자를 한층 부추겼고, 이 둘은 신자유주의를 지탱하는 양쪽 수레 바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르시시즘은 그리스 신화에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다 결국 물에 빠져 죽은 나르키소스(Narcissos)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 탐욕은 말 그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더 가지려는 마키아벨리적 특징을 가진다.

나르시시즘과 탐욕은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는 공통점이 있으며, 자신은 멋있고 소중하다고 생각하지만, 타인은 나만큼 멋있고 소중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과도한 경쟁사회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는 이런 이기적인 사람들을 양산하였고, 이에 부합하는 집단들이 마음껏 활개치게 만들었다. 인간의 기본적 양심, 공동체의 정의, 약자에 대한 배려는 이들을 위협하는 불순물일 뿐이다. 이들이 입에 달고 있는 ‘자유주의’는 자신을 위한 ‘자유’만 해당되고, 나눔 또한 그들만의 ‘나눠먹기’다. 이는 기득권 카르텔의 고착화를 가져오고 있고, 수많은 이웃들은 더욱 소외되는 불통의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나르시시즘과 탐욕은 자기혐오의 다른 이름이다. 여기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들의 결말 또한 허무와 방탕일 것은 자명하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이웃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명을 지닌 모든 것들은 한순간도 소통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하지만, 그 끈을 놓는 순간 사실상 사회적 죽음에 이른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 몸도 핏줄을 통해 각종 장기와 뇌와 세포가 원활하게 소통하듯, 생명을 가진 모든 동식물도 죽는 날까지 끊임없이 소통을 멈추지 않는다. 불통은 죽음의 시작이다. 그래서 소통의 파수꾼은 늘 감시하고 점검하고 해결책을 내놓는다.

우리와 우리를 이어주는 소통의 파수꾼은 종교와 언론매체다. 부패를 방지하고 건강하게 만들며 희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극적이게도 그 역할을 담당하는 종교와 언론의 상당수가 스스로 부패집단이 돼버린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면 어찌해야 할까. 그동안 우리 앞에 펼쳐진 디지털 문명의 작동원리부터 달라져야 한다. 온갖 IT기기와 기술로 실시간 소통을 시도한다고 했지만, 나르시시즘과 탐욕을 부추기며, 오히려 소통의 악순환을 가져왔다. 그렇다면 이제 소통의 선순환 구조로 가야할 것이다. 모든 기술문명의 동기와 언어에서, 나르시시즘과 탐욕을 지워가야 할 것이다. 자유롭고 평등한 디지털세상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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