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행은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이 그렇듯 성당과 모스크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절대권력의 상징이었던 중세 교회의 오랜 건축양식이 현세까지 고스란히 보존되어 내려오기 때문이다. 두 달여 전 내가 스페인을 여행할 때 다녀온 성당(모스크)만 해도 코르도바 메스키타, 세비아 대성당, 알함브라궁전 내 교회, 가우디의 성가족 대성당, 몬세랏 수도원(성당), 똘레도 대성당, 마드리드 대성당 등 10여개에 이르며 가는 도시마다 그 지역의 오래된 교회(모스크)가 바쁘게 오가는 여행객을 맞이한다.

교회의 우아하고 웅장한 자태는 그 자체로도 여행객을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건축물의 내부에 들어서면 더욱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건축물 자체의 예술성은 물론 유명작가들의 작품이 곳곳에 성화와 조각의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훌륭한 성인들을 모셔놓은 묘소가 교회마다 오랜 서사를 지닌 채 자리잡고 있다. 권력의 지형과 역사적 변화가 적층 문화 형태로 고스란히 스며든 것처럼 말이다.

대성당 한 곳을 둘러보는데도, 건축물 곳곳의 작품과 구조물에 얽힌 서사를 이해하면서 세세하게 살펴본다면 최소 일주일 이상 걸릴 것이다. 수많은 이야기가 응축된, 형언할 수 없는 종합예술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여행을 마친 사람들이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것은 당연하다. 한정된 시간에 제한된 공간을 마치 스쳐지나가듯, 빠르게 지나다 보니 주마간산이 될 수 밖에 없고 수박 겉핥기 식의 여행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필자는 ‘메타버스 교회’를 생각해 봤다. 예를 들어 ‘메타버스 세비아 대성당’, ‘메타버스 알함브라 궁전’ 등으로 명명된 메타버스 상품을 만들어 여행객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VIP 고객에게 특별 혜택을 주는 방식도 좋고, 세계적 명소로 이름 높은 성당이나 교회를 여행하지 못한 고객에게 메타버스 교회를 판매 하는 건 어떨까.

크고 오래된 교회일수록 여행객은 교회가 지닌 전통과 서사와 예술을 보려는 욕구가 당연히 클 수 밖에 없다. 셀 수 없이 많은 작품과 시대상을 반영하는 서사의 흐름이나, 전통적 구조물이 그저 박제된 채 대부분 시간에 쫓기는 여행객의 눈을 잠시 사로잡을 뿐이다. 겉은 살아있지만 실은 죽은 교회의 모습이다. 교회는 기억의 공간이다. 제사를 지내는 곳이기도 하다. 성당에서 미사는 예수님께 올리는 제사이기도 하다. 역사의 뒤안으로 스러져간 현인(賢人)들의 유골이 모셔진 곳이기도 하다. 메타버스는 그 모든 교회의 ‘죽은 것’들을 되살려 ‘살아 숨 쉬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명을 불어넣고 살아 춤추는 교회의 역동성을 메타버스는 되살려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면 ‘메타버스 교회’는 어떨까. 또 ‘메타버스 미사’나 ‘메타버스 제사’는 또 어떤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종묘제례도 제사의 일종이다. 왕가의 제례를 비롯한 수많은 명문가들이 ‘시제’라는 형식을 통해 제사를 봉행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의 전통 제례 문화는 갈수록 퇴색하고 있다. 그나마 어르신들의 적극적 참여로 근근히 유지되고는 있지만, 젊은층이 외면하는 한 언젠가는 단절되고 말 것이다.

‘제사’를 올린다는 것은 조상에 대한 기억의 시간을 갖는 것이기도 하다. 조상의 발자취를 기리고 추억하는 공간이며 후손들이 이를 새롭게 계승하겠다고 다짐하는 시간이다.

‘메타버스 제사’ 혹은 한 가문의 ‘메타버스 시제’는 디지털 시대의 세대 간 단절을 극복하면서, 옛것을 오늘에 새롭게 되살리는 또 하나의 실천적 방안이 아닐까 싶다. 잘만 활용하면 우리의 훌륭한 전통문화인 제례 문화를 전승할 좋은 보완재가 될 법도 하다.

필자의 본관인 연안 김씨는 양평군 왕충리 선영에서 매년 두 차례 1세부터 7세까지 시제가 봉행된다. 전국에서 1000여명의 종원이 모여 시제를 올릴 정도로 붐볐지만 지금은 절반 정도 수준으로 줄었다. 젊은층의 참여가 저조하기 때문이다. 만약 ‘메타버스’를 접목하면 어떠할까. 선조들의 훌륭한 업적을 발굴하여 ‘메타버스 시제봉행’으로 거듭난다면 노소가 어울린 축제의 한마당이 되지 않을까.

욕심같아선 메타버스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세종대왕과 그 충신인 연안김씨 출신 문익공, 문정공과 우리 후손들이 만나, 당대를 고민하고 역사를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 선조들을 뵙고, 수 백 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인간적인 아픔도 공유해보면 그 또한 얼마나 좋은 일인가. ‘메타버스’야말로 그런 공상을 현실로 만드는데 쓰일 법한 마법이다.

저작권자 © 애플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