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溫故而知新(온고이지신)’을 입에 올리기조차, 민망한 시대다. 초고속 연산과 생성형 AI로 규정되는 디지털 시대엔 ‘옛것’은커녕, 목전의 현상마저 따라잡기 어렵다. 이진법적 비트(bit)에 기반한 ‘빨리 빨리’와 ‘효율성’을 숭배하다보니, 아날로그적 느림과 성찰은 자칫 수구적 완고함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래서다. 필자의 고향인 경기도 양평군 ‘왕충이’를 가로지를 서울-양평 고속도로가 새삼 떠오른다. 맹목적인 지금 세태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인 듯 해서다.
그 일로 인해 요즘 지역사회가 소란스럽다. 국토부의 ‘서울-양평 고속국도 건설사업 전략환경연향평가 항목 등의 결정 내용’이 공지되면서 마치 ‘벌집’을 쑤신 듯하다. 땅 값이 오르길 기대하는 소유주와 부동산 관련 업계를 중심으로 당장 고속도로가 착공될 것 같은 착시현상 속에 온갖 낭설이 난무한다. 이 지역 대다수의 토지가 이미 외지인의 손에 들어 간지 오래다. 땅을 사 둔 외지 사람들과 현지에서 농사짓고 사는 소수의 땅을 소유한 사람들이 기대감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되짚어보면 그렇게 들뜬 일부 민심이 곱게 보이진 않는다. 왕충이는 필자의 ‘뿌리’인 연안김씨와 떼어내선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는 마을이다. 조그만 마을에 연안김씨의 위토와 임야가 넓게 자리잡고, 유서깊은 묘소들이 즐비한 연안김씨 선영이 오래도록 터잡고 있다. 매매에 한계가 있는 종중 땅이다 보니, 양평 일대에선 드물게 몇 군데 안 되는 미개발 청정지역이다. 개발의 마수가 뻗치지 않은 덕분에 아직도 마을 인심은 후하고 순수하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궁핍하지도 않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린 시절 선친께서는 작은 성씨지만 조선 500년의 극심한 부침 가운데도 명문가를 지탱해온 강소(强小)명문 연안김씨라고 몸소 오래된 묘소를 일일이 돌며 설명하셨다. “자부심을 가지고 ‘양반’답게 살아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하셨다. 그처럼 선영이 있는 왕충이는 연안김씨 가문의 오랜 자존심이기도 하다.
왕충이엔 세종조때 형조판서와 이조판서 등 주요 관직을 거친 ‘김자지(金自知)’, ‘김여지(金汝知)’ 선생의 묘(향토문화제 49, 5호)를 비롯하여, 이 땅의 역사에 헌신해온 연안김씨 선조들의 유서깊은 묘소가 밀집해있다. 특히 두 분의 모친인 죽성부인의 묘는 가장 오랜 연혁을 품고 있다. 미루어보면 죽성부인의 묘는 남편(고려조 밀직제학 김도(金濤))이 1379년(우왕 8년)에 돌아가셨으니 조선이 개국할 무렵이 아닌가 짐작된다. 이를 추정하면 아마도 630여년 전 안팎에 조성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런데 만약 국토부 계획대로 고속도로가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 마을은 두 동강이 날 것이고, 연안김씨 선영 또한 남북간에 삼팔선이 그어지듯 두 토막이 나게 될 것이 자명하다. 선영에 자리잡은 600년이 넘은 죽성부인의 묘와, 지역 향토문화재로 지정된 ‘金自知’, ‘金汝知’선생의 묘, 연안김씨의 족보를 집대성하는데 평생을 매달렸던 ‘첨추공’의 묘소 등 셀 수 없이 많은 선조들의 흔적은 어찌 되는가. 연안김씨의 성전이나 다름없는 경원재와, 고인이 된 종원들을 모신 봉안당은 또 어찌 될 것인지 알 수 없다.
마을은 마을대로 그렇다. 고래로부터 내려오는 윗말(웃담), 중간말(중간담), 아랫말(아랫담)으로 불리던 동네, 그리고 연안김씨의 묘소를 중심으로 나뉘어진 까치독골, 능골(능곡), 웃능골(상능곡) 등도 잘못하면 결딴이 날판이다. 고속도로가 생기면, 그 정겹고 오랜 서사가 깃든 마을들이 남북으로 갈라지고, 딴 동네로 헤어지게 생겼다. 사통팔달 소통이 자연스레 이뤄졌던 마을의 아름다운 지명들도 고속도로 탓에 이젠 이름값도 못할 것이다.
그래서 간절히 염원한다. 고래로부터 내려오는 아름다운 마을 왕충이와, 오늘날의 왕충이라는 이름을 갖게 한 연안김씨 선영의 오래된 묘소와 관련 시설, 그리고 빼어난 경관들이 훼손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당국도 정녕 고심을 거듭하며 훼손을 피할 수 있는 결론에 다다르기를 바랄뿐이다.
이런 지경에 ‘온고이지신’까진 기대하지 않겠다. 옛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알기 전에, 부디 ‘현재의 것’이나마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다. ‘현재’를 제대로 익힐 때만 새로운 미래가 담보되지 않을까. ‘디지털 아키텍처’는 오히려 아날로그 공정(工程)과 화해할 때, 비로소 조화로운 ‘디지로그’ 문명을 생성하는 법이다. 정녕 생성AI 문명이 생성해야 하는 가치 또한 그러하다. ‘왕충이’가 그 시범적 학습모델이 되었으면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