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낸스 인수 합의 파기, “재무상태 점검해보니 ‘엉망’” 폭로
FTX CEO 뱅크맨-프리드 사임, 미 증권당국 본격 조사 돌입
자사 계열사인 ‘알라메다’와 돌려막기로 버텨…“‘루나’와 흡사”
전문가들 “‘루나-테라’ 사태의 글로벌 버전으로 확산, 파국의 시작”
글로벌 암호화폐 기업들 주가폭락, 거래 중단, 파산 ‘도미노’ 우려
[애플경제 이보영 기자] 제2의 루나-테라 사태를 넘어, 이제 암호화폐 시장이 완전히 붕괴할 것인가. 암호화폐 버전의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일어난 것인가. 세계 암호화폐 시장에 이같은 불안과 위기감이 엄습하고 있다. 11일 자정이 채 안된 시각 로이터통신, AP통신, WSJ, 블루버그 통신, NYT, WP 등 주요 외신들은 FTX의 샘 뱅크먼-프리드 최고경영자(CEO)가 사임하고, 미국에서 파산 절차에 돌입했다는 소식을 급히 전송했다.
이는 ‘루나-테라’사태의 글로벌 버전이 될 것이란 위기감마저 감돌고 있다. 세계적인 ‘가상자산시장 공황’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는 지난 주부터 갑작스런 유동성 위기에 몰린 세계 2위 암호화폐 거래소 FTX를 1위업체인 바이낸스가 인수하기로 잠정합의한 후 시시각각 상황이 변하며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인수 합의 다음 날 바이낸스가 “실패한 경쟁사인 FTX 트레이딩 인수 거래에서 손을 뗀다”고 전격적으로 밝히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파국으로 치달았다. FTX 재무상태를 검토한 바이낸스가 10일 성명을 통해 “인수거래에서 손을 떼겠다”고 공식 발표하면서, 이틀 연속 암호화폐 가격이 급락했다.
바이낸스는 성명에서 "처음에는 FTX의 고객들이 유동성을 제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우리의 바람이었지만, 문제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거나 도울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선다"고 밝혔다. 이번 주 초 바이낸스의 FTX 인수설이 나온 직후엔 2만 달러를 넘었다. 그러나 바이낸스가 인수를 무산시킨 직후 비트코인은 2년 만에 최저치로 주저앉았다.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비트코인 가격은 지난 2020년 11월 이후 최저치인 1만5840달러로 13% 이상 급락했다. 또 다른 주요 암호화폐인 이더리움도 13% 하락했다.
이같은 배경엔 FTX와 CEO뱅크맨 프리드의 감춰온 고질적 문제가 이번 불거진 탓이다. FTX의 계열사라고 할 수 있는 ‘알라메다 리서치’가 문제의 시작이었다. FTX는 유동성이 필요할 경우 자사의 FTT를 대량으로 내놓고, 이를 알라메다가 다시 사들이는 식으로 거래를 해오기도 했다. 마치 ‘루나-테라’처럼 돌려막기식으로 시장을 왜곡해온 것이다. 그러다가 최근 바이낸스 등이 이를 의심하며, FTT를 대량으로 내다팔았고, 가격이 폭락하며 유동성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에 바이낸스가 아예 FTX를 인수하려고 했으나, 이를 위한 재무제표 검증 결과 이같은 부당거래가 낱낱이 드러났다.
현재 알려지기론 FTX는 약 100억 달러의 부채를 안고 있다. WSJ 보도에 따르면 바이낸스가 합의를 파기하자, 뱅크맨-프리드는 이에 투자자들의 인출로 인한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 투자자와 경쟁사들로부터 90억 달러를 마련하려고 나섰으나 무위로 그친 것으로 전해졌다. 더욱이 미 증권당국이 CEO 뱅크맨 프리드와 FTX에 대한 전면 조사에 나서면서 사태는 이제 세계 암호화폐 전체로 비화되고 있다. FTX는 현재 고객의 예금을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해 미국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블룸버그통신 등이 보도했다.
애초 뱅크맨-프리드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자금난에 빠진 다수의 암호화폐 회사들을 구제하는데 나서면서 마치 구세주같은 대접을 받았다. 한때 시장에서 ‘백마 탄 기사’로까지 칭송받았던 FTX는 그러나 사실상 ‘속 빈 강정’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지난 7월 FTX가 암호화폐 대출업체 블록파이에 4억 달러 규모의 리볼빙 자금을 제공하기로 합의하고 대출업체를 인수할 수 있는 옵션을 확보할 때부터 이상 조짐이 일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투자자들의 탈퇴가 급증한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FTX는 당시 연이은 손실 끝에 자사의 FTT를 방어하느라, 계열사인 알라메다에 최소 40억 달러를 송금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처럼 알라메다와 돌려막기를 하며, 근근히 FTT가치를 떠받들어왔으나, 이젠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특히 인수 합의 후 바이낸스가 FTX의 장부를 들여다볼 기회를 갖게되면서, 이는 공개적으로 문제가 되었다. 실제로 이와 관련된 한 인사는 “FTX 거래소와 알라메다 리서치 헤지펀드는 서로 자산과 부채를 구분할 수 없는 ‘블랙홀’”이라고 AP통신에게 밝혔다. 심지어는 “두 회사 간의 관계는 마치 근친상간과도 같다”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사태가 악화되면서 세계 암호화폐시장이 출렁거리고 있다. 특히 암호화폐 시장을 주도해온 상장 거래소들의 주가도 하락세로 돌아섰다. 로빈후드 주가는 약 14% 하락했고 코인베이스 주가는 약 10% 하락했다. 지난 5월 테라USD의 엄청난 추락으로 많은 암호화폐 관련 회사들이 붕괴 직전까지 몰린 뒤 FTX와 구조 패키지를 체결했던 블록파이나, 이미 파산한 암호화폐 대부업체 보이저 디지털과 같은 회사들의 미래도 불투명한 실정이다.
더욱이 9일에는 비트코인이 2년 만에 최저치인 15,632달러로 떨어졌고, 금요일에는 간신히 17,450달러선에 그쳤다. 특히 FTX의 FTT는 금요일 주당 85%의 손실을 보며 5.7% 하락한 3.5달러를 기록했다. 비트코인 선물 거래량과 거래소 거래 펀드 거래량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세쿼이아, 소프트뱅크 등 일부 투자자들은 아예 FTX에 대한 투자를 ‘0’으로 표시하며, 원천봉쇄했다.
다른 많은 암호화폐 업체들도 비상 대책에 나섰다. 대부업체 블록파이는 FTX에 대한 해법이 제시될 때까지 대출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또 제네시스 트레이딩은 자사의 파생상품 거래로 인해 FTX에 약 1억7500만 달러의 자금이 묶여있다고 전했다.
세계 각국 금융당국도 비상 대책에 나섰다. 이미 미 증권거래위원회는 뱅크맨 프리드에 대해 증권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하고 있다. 특히 로이터 통신은 “미국 증권 감독 당국이 FTX.com의 고객 자금 처리와 암호화폐 거래 활동을 조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키프로스도 FTX 유럽법인의 면허를 정지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호주의 FTX 현지 법인도 11일 당국에 호출되어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고, 바하마 증권위원회는 FTX 자회사인 FTX 디지털 마켓의 자산을 동결하기까지 했다.
홍콩에 본사를 둔 암호화폐 펀드 기업의 연구 책임자인 카미 쩡은 “이러한 사태가 급속히 번지면서 이제 (FTX가 회복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시장에서 완전히 사라졌다.”면서 “문제는 암호 화폐 시장에는 진정한 유동성이 충분하지 않다보니, 이번과 같은 일이 터지면, 이를 해결할 만한 현금이 없는게 더 문제”라고 했다. FTX 사태처럼 전혀 예상치 못했던 ‘재앙’ 수중의 사건이 터지면 시장의 붕괴를 막을 방도가 없다는 얘기다.
그런 가운데 투자자들은 “거의 미친 듯이” 코인을 내다팔고 자금을 인출하는 바람에 시장 전체의 유동성 경색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그야말로 공포와 공황 심리가 도미노 현상처럼 번지면서 암화화폐 시장의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는 모습이라는게 외신과 전문가들의 우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