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경제 이원섭 네오플랜비 대표]EU(유럽연합)가 철강,알루미늄,시멘트,전기,비료 등 역내로 수입되는 고탄소 집약적 상품에 대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2023년부터 단계적으로 실시할 예정인 가운데 교역 상대국들은 우려를 표명하며 다가올 글로벌 탄소규제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CBAM)는 EU 역내로 특정 제품을 수입할 경우 수출국에서의 생산과정에서 배출된 탄소량에 따라 수입업체가 인증서(CBAM Certificate)를 구매하고 이를 수입국의 관할 당국에 제출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는 CO2 1톤 배출량에 해당하는 인증서로서, EU-ETS 탄소배출권 주간 평균가에 판매한다. 유럽으로 상품을 수출하는 모든 역외국에 적용되며 이미 EU-ETS(유럽 탄소배출권거래제)에 참여하고 있거나 연계된 EFTA(유럽자유무역연합) 4국인 아이슬란드,리히텐슈타인,노르웨이,스위스와 외부 영토인 세우타,멜리야 등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지난해 7월에 발표된 유럽 기후변화 정책 패키지인 “Fit For 55"의 법안 중 하나이다. 패키지에서는 기후,에너지,운송,건물,토지·산림 등의 분야에서 정책 및 경제부문을 포함하는 13가지 제안과 함께 탄소배출권거래제 강화,탄소국경조정제도 등을 제언했다.
CBAM의 도입은 탄소유출 방지 및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조치의 일환으로서 환경기준이 높은 국가로의 수입처 전환과 함께 기업의 친환경 경영을 유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된다.
산업의 특성상 역외국으로의 탄소누출 위험이 크고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이 비교적 용이한 품목을 중심으로 우선 5개 품목을 지정하였으며 향후 단계적으로 품목을 확대할 예정이다.
2023년부터 3년간의 전환기간(과도기)을 거쳐 2026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며 2025년까지는 EU의 수입업자가 관할당국에 분기별로 제품별 탄소배출량 보고서만 제출하고 별도의 비용은 지불하지 않는다.
이제 EU지역으로 탄소집약적 제품을 수출하는 우리 기업들은 다가오는 CBAM의 시행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
적용대상 기업들은 대부분 국내 탄소배출권 거래제 할당대상업체들이며 그동안 체계적인 MRV 시스템에 의한 온실가스 인벤토리 구축과 함께 탄소경영의 측면에서 관리되어 오고 있다. 제도 시행의 전환기간 동안 제품별로 정확한 순배출량을 산정하여 EU 역내 기업과의 배출량 차이를 검증하고 EU 당국의 인증절차 대응에 대비해야 한다.
아울러 CBAM 인증서의 단위 가격은 유럽 탄소배출권 시장가격에 연동되어 있으므로 인증서 구매비용 절감을 위하여 유럽 탄소배출권 시장(EU-ETS)에 대한 적극적인 분석과 다양한 정보를 통한 전략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제도 시행의 초기에는 해당 수출품목의 온실가스 직접배출량에 한해서 과세하는 방안이 유력하지만 2026년 이후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가면서 품목확대와 함께 간접배출량(전력사용 등)을 포함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어 신재생에너지 사용을 위한 기반 마련도 절실히 요구된다.
CBAM 적용 품목중 2015~2020년 기준으로 EU 역내에 수입되는 교역량 규모로는 한국이 $ 2,663 million으로 세계 6위 수준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의 경우 철강과 알루미늄이 교역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철강의 경우 3개년(2018~2020년) 평균 “265만톤/년” 규모이며 국내 철강업체의 부담은 상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 철강기업의 수출 단가 경쟁력 약화와 함께 수출량 감소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2021년 KIEP(대외경제정책연구원) 보고서에 의하면 전세계 철강제품 수출이 11.7% 감소하고 한국의 철강 생산은 0.25% 감소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U가 유럽 탄소배출권 시장가격에도 못미치는 30유로(1톤당) 정도의 과세만으로도 국내기업의 경우 관세율 1.9%를 추가 적용하는 영향이 예상된다.
한편 EU CBAM 당국은 유럽과 동일한 탄소가격 적용국은 제외한다는 취지를 밝힌바가 있다. 한국은 유럽과 매우 유사한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운영하고 있는데 기업의 탄소배출을 공적인 시스템에 의해 규제하고 있는 전 세계적으로 몇 안되는 나라 중 하나이며 이러한 노력을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 국내 산업계의 입장이다.
CBAM 적용대상 제품에 대해 생산국에서 배출권거래제 등의 제도적 수단을 통해 투명하고 실효적인 방식으로 검·인증하여 온실가스 배출량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와 함께 탄소가격을 선제적으로 부담한 경우에는 그에 상응하는 방식에 의해 EU 역내로 수입되는 제품의 인증서 구매시 상계(차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과 유럽의 배출권거래제는 철강에 대한 할당배출권 유상할당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갈 예정이므로 궁극적으로는 해당 제품에 대한 CBAM 적용 면제국에 한국이 포함될 수 있도록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포함한 다각적인 지원이 요구된다.
제도 시행에 앞서 협상력 제고를 위해 대외적으로 미국,중국,러시아,일본 등 관련 국가들과의 공동 대응과 함께 새로운 무역장벽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적극 강조해야 한다.
WTO 국제통상법의 ‘최혜국 대우 규정(GATT 제1조)', '양허스케줄(GATT 제2조)', '내국민대우 원칙(GATT 제3조)' 뿐만 아니라 역외 교역국의 추가적인 인증서 구매에 따른 가격구조 악화와 함께 수출물량 감소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수량제한 철폐원칙(GATT 제11조) 등의 규정에 위반될 소지가 여전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EU 이사회는 2023년 제도의 시행을 앞두고 강경한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는 유럽의회를 대상으로 EU-ETS에서의 적용품목(업종)에 대한 무상할당 폐지(단계적)와 수출환급제(Export Rebate, 탄소가격 상계) 등에 대한 보완과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는 상황이다. 수출환급제는 EU 역내에서 생산된 제품을 탄소세 등의 탄소규제 정책을 도입하지 않는 국가로 수출할 경우에 적용되는 제도이다.
유럽철강협회(Eurofer) 등 유럽의 산업계도 CBAM의 도입이 산업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하며 수출환급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으나 환경단체들의 반대에 직면해 있어 난항이 예상된다.
이러한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 시행 움직임은 이후 미국 등 역외의 다른 국가들을 자극하게 되면서 미 의회에서는 민주당의 크리스 쿤스(Chris Coons) 상원의원과 스콧 피터스(Scott Peters) 하원의원 등이 미국형 탄소국경세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전세계 수입량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EU와 미국에서 또 하나의 무역장벽인 탄소국경세 등이 동시에 시행되면 글로벌 무역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외에도 일본과 중국 등 현재는 EU의 CBAM 시행에 부정적인 입장이지만 대외 교역량이 많은 국가들에게로 까지 확대되면서 탄소국경세를 통한 글로벌 무역의 주도권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전환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국제사회는 신기후체제 출범 이후 공동으로 직면하고 있는 2050 탄소중립의 명확한 목표 아래 각국은 돌아갈 수 없는 저탄소 경제체제로 진입했다.
우리 기업들은 전략적이고 투명한 MRV에 의한 체계적인 데이터 구축과 국제적으로 공인된 인증기관에 의한 EU의 인증절차에 미리 대비하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탄소집약적 산업의 경우 수소환원제철 등을 포함한 탈탄소 생산기술 개발,CCU(탄소포집·활용),대체에너지(신재생에너지 등) 생산과 탄력적인 사용을 위한 적극적인 준비가 요구된다.
국가 차원에서도 EU 교역 상대국들과의 적극적인 협의는 물론 제도 시행에 따른 WTO 규정 위반 가능성에 대한 대응과 함께 한국 배출권거래제의 확대 시행과 철저하고 투명한 운영 및 할당배출권 무상할당 축소를 서두르면서 신뢰성 있는 국가 감축활동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국내 탄소중립 정책과 EU의 정책간의 격차 해소를 통해 제품별 생산과정에서의 탄소배출 수준에 대한 동등성을 인정받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2026년 이후 제도의 본격 시행에 대비하여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산업부문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방안 마련과 산업계의 탄소저감 저변 확대로 늘어나는 국제사회의 탄소장벽에 효율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