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경제 김건주 전 서울신문 제작국장·현 서강출판포럼 회장 ]
디지털 성범죄가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운영하는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지원센터’에 지원을 요청한 피해자 수는 올해 9월 기준 5695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연간 지원했던 피해자 수 4973명을 넘어선 수치다. 피해자중 디지털 기기나 온라인 플랫폼에 친숙한 저연령층인 10대(22.3%)와 20대(21%)가 전체의 43.3%를 차지했으며 나이를 밝히지 않은 피해자를 포함하면 절반을 상회할 것으로 추정된다.
피해 사례도 갖가지다. 디지털 성범죄 촬영물에 기반한 피해(유포, 불법촬영, 유포협박, 유포불안, 사진합성)가 있는가 하면, 언어적 괴롭힘에 기반한 피해(사이버 괴롭힘)도 횡행한다. 올해는 그 중 유포불안이 가장 많고, 그 뒤를 이어 유포와 불법촬영, 유포협박, 사이버 괴롭힘 순으로 많았다. 지난해 대비 유포불안은 대비 8.4% 증가하고, 불법촬영은 10.9% 감소한 수치다.
지원을 요청하지 않은 피해자는 또 얼마나 많을까. 드러난 피해는 빙산의 일각이고 디지털성범죄의 거대 뿌리는 수면아래에 똬리를 틀고 있지 않을까 싶다.
지난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전환이 이뤄졌다는 긍정적 평가가 무색할 지경이다. 치안보다 한발 빠른 성범죄집단의 명석함(?)에 디지털 세상을 넘어 시대의 화두인 메타버스 성범죄로 이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다.
그렇다면 디지털성범죄는 왜 일어나며 왜 증가하는 것일까?
모든 성범죄는 구조화된 젠더폭력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구조화된 젠더폭력은 정(政)・경(經)・사(社)・문(文)・역(歷)의 집단혐오와 집단차별이 그 자양분일 터이다. 덧붙이자면 우리사회의 언론(言論)이야말로 젠더폭력의 구조화를 지탱해주는 일등공신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인간이 사는 사회는 정글의 세상과는 다르다. 아니 달라야 한다. 힘센 자는 살아남고 힘없는 자는 죽는 양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것이 정글이라면 이성이 지배하고 정의가 세워져 모두가 사람답게 사는 것이 동물과 다른 인간이다.
코로나19라는 유래없는 재난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경제규모는 G7에도 연속해서 초청될 만큼 선진국반열에 올랐다고 자부하고 있으며 문화산업도 BTS, 기생충에 이어 오징어게임까지 한류가 세계문화의 정상에 올랐다고 야단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젠더지수(남녀평등지수)는 불행히도 후진국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성별 임금격차는 여전히 OECD 최하위 수준인 67.5%에 머물고 있으며 정치 사회적 지위 역시 낮은 수준이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WEF)에서 2021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남녀평등 수준을 수치화 한 「젠더 갭 지수(Gender Gap Index:GGI)」순위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156개국 가운데 102위로 여전히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젠더폭력의 자양분인 구조(틀)을 일순간에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적 구조를 바로 세우기 위해 우리사회가 부단히 희생하고 수고해왔던 것처럼 젠더폭력의 자양분인 구조(틀)를 바로 세우는 노력을 해준다면 여전히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 토대의 절반은 여성임을 잊지 않고 있다면 말이다.
덧붙여 작은 실천 두어 가지를 종교계와 언론에 주문하고 싶다.
성직자(신부, 사제, 나아가 스님)는 신자들에게 있어 매우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 중 교회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자부하고 있다. 그런데 교회에서 “성폭력 없는 사회를 만들자”는 기도문을 들어본 적이 없다. 신자들의 기도에서 “성폭력 없는 사회를 위하여 기도 합시다.” “성희롱 없는 직장을 위해 기도합시다.” “성매매 없는 사회를 위해 기도합시다.” “가정폭력 없는 가정을 위해 기도합시다.”와 같은, 실천이 담보된 기도를 교회에서 함께 한다면 어떨까. 기대 이상의 성과가 나올 수도 있고 한국교회와 교회지도자들이 벌인 그간의 오명을 씻을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언론도 교회와 마찬가지로 주도적으로 “성폭력 없는 세상 만들기”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자주 펼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길만이 젠더 관련 이슈에서 선정주의와 황색저널리즘에서 헤어나올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두 기둥인 언론과 종교는 우리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이라는 공통의 과제를 갖고 있기도 하다. 구조화된 젠더폭력의 틀을 바꾸려는 노력은 특히 언론과 종교계에서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전 <서울신문> 제작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