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만 한서대 교수
박경만 한서대 교수

원통형 곡식 창고 사일로에 수확한 양식을 살뜰히 모아둔다. 이웃과 나누고픈 생각은 추호도 없다. 참으로 인색하고 이기적인, 그런 모습은 짐짓 기업의 칸막이 문화와도 닮았다.

특히 IT업계에선 다른 부서와 담을 쌓고 기술이나 노하우를 파티션 안에 꽁꽁 가둬놓는 ‘사일로 효과’가 고질병으로 지목되고 있다. 한때 세계 최고로 끗발을 날리던 소니가 쇠퇴하게 된 큰 원인으로 빗대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자신만의 기술 창고를 고집하는 사일로 방식에 저항하는 몸짓이 늘 있어왔다. 수 년 전부터 등장해서 이젠 꽤나 자리를 잡고 있는 데브옵스(DevOps)나 데이터옵스(DataOps)도 그런 것들이다.

그 시작은 기왕의 데브옵스로부터 비롯되었다. 흔히 조직 내에서 볼 수 있듯이, 각기 다른 재능과 전문지식의 소유자들끼리는 서로 자신의 전문화된 달란트가 최우선이라고 우긴다. 소프트웨어 개발자(development)와 운영(Operations) 내지 마케팅 파트 간에도 그런 모양새다. 하지만 SW를 개발해본들 써먹지 못할 바엔 무용지물이고, 그렇다고 SW 개발없는 운영도 존재할 수 없다. 그런 각성에서 비롯된 데브옵스가 이젠 한 발 더 나아가 데이터 공학자나 데이터 과학자와 마음을 합치고, 손을 맞잡기로 한 것이다. 데이터옵스는 그렇게 생겨났다. 사일로 방식에 익숙했던 스페셜리스트들의 보기 드문 변신이다.

종래 사일로 방식에선 빅데이터를 활용하고 조작할 때마다 경직되고 느려터지기 일쑤였다. 그러나 데이터옵스는 다르다. 기존 빅데이터 방식과는 달리, SW기술과 공학의 도움으로 머신러닝에 의한 데이터 분석 모델을 실제 시스템에 즉각 적용할 수 있는 기민함을 발휘한다.

그런 점에서 데이터옵스는 링크 바이 링크가 아닌, 엔드 투 엔드의 애자일(agile) 방법론인 셈이다. 본질적 단순성이라고 할까. 빠르고 정확하게 목표를 달성하려면, 복잡성을 탈피한 최적의 단순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최적의 단순화를 위해선 정작 복잡한 구조와 이치를 통찰하고 해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데브옵스는 바로 그런 능력을 갖게 하며, 그것을 통해 애자일하게 기업 목표에 다가가게 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사회학자 안토니오 네그리의 ‘사회적 공장’을 연상케 한다. 그에 따르면 어떤 사회적, 경제적 성과도 ‘협업’으로 인해 “엄청나게 생산성이 높아진 사회에 속한 덕분에 세습한 재산”에 불과한 것이다. 독불장군이 있어 ‘무’에서 ‘유’를 만든 게 아니라, 모든 경제 주체가 서로 연대하고 신뢰하며 경제․사회적 코드를 공유하고, 전승한 결정체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 만큼 데이터옵스 참가자들은 프로페셔널하되, 결코 엘리티즘에 빠져선 안 될 것이다.

자신만의 가치와 방식, 교조적인 스페셜티만을 주장하다간 다시 사일로 방식에 갇히기 십상이다. 그 보단 개발과 운영과 데이터공학의 협업에 충실하되, 허탄하게 우선 순위를 양보하고 해결책을 내는 진정성을 발휘해야 한다. 그래야만 공통의 목표를 공유할 수 있고, 그것에 충실한 데이터링에 대응할 수가 있다.

그렇다고 사람마다 한 가지 현상을 같은 시각으로 보는 것도 문제다. 오히려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의 천차만별의 진단과 차이가 자연스러울 수 있다. 예를 들어 운영 담당자는 신뢰성을 우려하고, 특정 시간 안에 해법을 찾으려 하지만, 데이터 과학 담당자는 시점보단 그 해법의 정확성을 중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같은 목표를 지향하고, 그 과정에 대한 타협과 양보의 여지가 있다면 결국 데이터옵스의 환상적 시너지를 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곧 여러 개인들이 갖는 다양한 지식과 경험, 노동을 더 쉽게 공유하는 공식이기도 하다. 경쟁과 분업에 따른 긴장과 불안, 기회비용을 최소화하면서 더 다양한 세상의 감각적 체험을 즐기는 길도 된다. 여유있게 기술을 개발하고 시장을 창조하며, 협업에 의한 분배를 즐기는 노하우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데이터옵스는 또 하나의 인문학적 층위의 성찰이며, ‘기술의 주인이 곧 인간’임을 암시하는 징표다.

저작권자 © 애플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