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르쿤, 메타와 ‘헤어질 결심’에 담긴 뜻은?
사업가 vs 과학 사상가의 ‘AI의 행로에 관한 문명론적 갈등’ 해석 저커버그 ‘수익모델 신속 개발’ vs 르쿤 ‘장기적 AI 혁신’, 갈등 메타, AI인재 대거 영입 ‘초지능’ 개발 ‘올인’에 ‘소외감 반발심’ 르쿤, 텍스트 외 공간·영상 학습, 물리적 세계 이해 ‘세계모델’ 추구
[애플경제 김홍기 기자] 컴퓨터 과학 사상가이자 딥러닝의 대부로 불리는 얀 르쿤이 그간 몸담고 있던 메타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의 퇴사 소식에 실리콘밸리와 월가가 술렁이고 있다. 르쿤의 이탈은 단순히 한 유명인의 동정을 뛰어넘는다. 어떻게든 빨리 가시적인 AI 수익모델을 개발하려는 CEO 저커버그와, 장기적 안목의 AI 혁신을 지향하는 르쿤의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아가선 지구촌 AI산업과 ‘AI붐’을 둘러싼 ‘속도론’과 ‘신중론’의 대립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 때문에 르쿤의 ‘헤어질 결심’은 실리콘밸리는 물론, AI경쟁이 치열한 글로벌 AI생태계 차원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르쿤, 퇴사 후 자신이 직접 스타트업 창립 계획
메타(Meta)의 최고 AI 과학자 르쿤은 곧 회사를 떠나 자신의 스타트업을 설립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퇴사는 소위 ‘초지능’(superintelligence)이란 야심찬 목표로 내달리고 있는 메타 CEO 마크 저커버그와는 더 이상 ‘한 배’를 탈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파이낸셜 타임스’, ‘e-위크’ 등에 의하면 프랑스계 미국인 컴퓨터 과학자이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AI연구자 중 한 명인 65세의 르쿤은 앞으로 몇 달 안에 회사를 떠날 계획임을 동료들에게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튜링상 수상자이기도 한 그는 현재 새로운 벤처 자금 조달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퇴사는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다. 현재 메타 내부에선 AI 개발의 미래를 둘러싼 이견과 갈등, 논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저커버그는 르쿤이 지난 10년 이상 주도해 온 개방적이고 탐구적인 연구 문화를 배척하고 있다. 대신에 당장 돈벌이가 될 반한 AI 도구를 신속하게 개발하기 위한 공격적 전략으로 선회하고 있다.
르쿤은 2013년 설립 이후 메타의 파운데이션 AI 연구실(FAIR)을 이끌어 왔다. ‘FAIR’는 신경망, 컴퓨터 비전, 머신러닝 이론 분야에서 획기적인 연구를 수행하며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학술 연구 기관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메타의 전략적 방향은 최근 몇 년 동안 급격히 바뀌었다. 오픈AI, 구글, 앤스로픽과의 경쟁이 치열해진게 그 원인이다. 저커버그는 구성원들에게 품이 많이 들고 시간이 걸리는 ‘과학적 혁신’보다는 당장 시장에 출시할 만한 AI 제품을 독려하고 있다. 이는 메타가 생성 AI 분야에서 자칫 뒤처질 위험이 크다는 초조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LLM은 한계, 세계모델이 궁극적 목표"
그러나 르쿤은 달랐다. ‘FAIR’에서 스스로 “세계 모델”(World Model)이라고 부르는 신개념의 AI모델에 집중해 왔다. 이는 텍스트에만 의존하지 않고, 공간이나 영상 데이터에서 학습, 물리적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획기적인 AI 시스템이다. 일각에선 ‘공간컴퓨팅’으로 이해하긴 하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다.
르쿤은 좀더 장기적 비전으로 궁극적인 고도의 AI시스템을 염두에 둔 것이다. “몇 년이 더 걸릴지라도 인간처럼 진정으로 추론할 수 있는 기계를 개발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거듭 주장해 왔다. 대신 그는 챗GPT와 같은 인기 챗봇의 기반이 되는 대규모 언어 모델(LLM)은 그다지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이는 “유용하지만 계획하고, 추상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에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커버그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최근 그의 관심은 ‘초지능’ 개발에 온통 쏠려있다. 특정 작업에서 인간 지능을 능가할 수도 있는 AI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다. 매우 위험한 목표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저커버그는 지난 여름 140억 달러 이상을 투자, ‘스케일 AI’의 지분 49%를 인수하고, 설립자 알렉산드르 왕을 ‘초지능’팀의 책임자로 영입했다. 왕은 데이터 라벨링 사업으로 유명한 28세 기업가다. 르쿤에게 이는 그다지 좋지않은 조짐이었다. 그 동안 메타의 최고 제품 책임자(CPO)에게 업무를 직접 보고했던 르쿤은 이젠 사사건건 나이 어린 왕을 거쳐야만 했다.
저커버그는 또 구글, 오픈AI, 앤트로픽에서 1인당 1억 달러가 넘는 스카웃 패키지를 제시하며 엔지니어와 과학자들을 영입했다. 지난 7월엔 오픈AI의 챗GPT 공동 개발자 중 한 명인 셩지아 자오를 초지능팀의 수석 과학자로 영입했다. 이같은 인재 영입 열풍은 내부 갈등을 촉발했다. 기존의 베테랑 메타 연구원들은 신규 영입 인사들과의 임금 격차와, ‘과학적 엄격성보다 속도에 더 치중하는 문화’에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
르쿤의 사임 계획은 또 다른 원인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메타의 천문학적인 AI 투자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안감이다. 그런 분위기가 르쿤에세도 간접적인 압박감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작 그의 사임설이 나돌면서 메타 주가는 1.2% 하락했고, 지난 10월 말을 기준으로 보면 무려 12% 이상 하락한 것이다. 당시는 저커버그가 “내년 AI 투자가 1,000억 달러를 돌파할 수 있다”고 공표했던 시점이었다. 그 바람에 메타의 시가총액은 단 일주일 만에 약 2,400억 달러가 증발했다.
메타, 르쿤 사임까지 ‘2025년은 격동의 한해’
르쿤이 독립해서 차릴 스타트업이 과연 그가 꿈꾸는 장기적인 비전을 성공적으로 실현할 것인지도 벌써부터 관심사다. 만약 성공한다면, 이는 학습이나 통계적 예측에 기인한 출력에 능한 AI를 뛰어넘는 인공지능의 탄생을 기약할 수도 있다. 즉, 인지와 상식적 추론을 우선시하는 새로운 AI패러다임을 제시할 것이란 해석이다. 르쿤의 그런 성취는 곧 “오늘날의 챗봇과 AI 선구자들이 오랫동안 상상해 온 ‘일반 지능’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르쿤의 사임은 메타로선 격동의 한 해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에 앞서 여러 인재들이 등지고 떠난 바 있다. 지난 5월엔 AI 연구 부사장인 조엘 피노가 캐나다 스타트업 코히어(Cohere)에 합류하기 위해 회사를 떠나면서 세인의 이목을 집중했다. 지난 달 메타는 비용 절감과 제품 출시 속도 향상을 위해 AI 부문 직원 약 600명을 해고하기도 했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저커버그의 신념은 변치 않는다. 변하긴커녕 “‘초지능’이 디지털 비서부터 고급 크리에이터 도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뒷받침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하지만 이 분야의 대표적인 사상가 중 한 명인 르쿤의 이탈은 결코 메타로선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그저 신속한 AI배포를 추구하는건 혁신 자체를 희생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란 비판이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르쿤의 ‘헤어질 결심’은 곧 AI의 행로에 관한 또 하나의 문명론적 갈등을 보여준다는 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