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구글 고정밀지도 반출 심의 또 보류

정부, 구글에 추가 자료 제출 요청 "보안과 산업 사이 고민" 산업계 “글로벌 경쟁 뒤처질 수 있어”…기술 활용 제한 우려 전문가 “보안·산업 병행 가능한 절충안 필요”

2025-11-12     김예지 기자
구글의 고정밀지도 해외 반출 요청이 보류되었다.(사진:미드저니)

[애플경제 김예지 기자] 정부가 구글의 고정밀(HD) 지도 데이터를 해외로 이전하려는 요청을 다시 보류했다. 구글은 자율주행 기술 개발을 위해 한국에서 수집한 지도 정보를 해외 서버로 옮기겠다고 신청했지만, 국토교통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추가 자료 제출과 검증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결정을 미뤘다.

고정밀지도에는 국가 기반 시설과 군사보안시설 등의 민감한 정보가 포함돼 있어, 단순한 지도 데이터를 넘어서는 주의가 요구된다. 구글은 이번 요청에서 데이터 비식별화와 보안 암호화 기술을 적용했다고 밝혔지만, 정부는 국가 안보와 데이터 보호를 최우선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구글의 재요청에도 “보안 우려 여전”

구글은 지난 2010년 이후 여러 차례 지도 데이터를 해외로 반출하려고 시도했지만, 매번 정부의 제동에 부딪혔다. 자율주행과 위치 기반 서비스의 기술 수준이 빠르게 높아지면서 올해 다시 요청을 냈고, 이번에는 비식별화와 암호화 기술 등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구글 관계자는 “정확한 지도 정보는 국내 이용자 서비스의 품질을 높이고 자율주행 기술 발전에도 필수적”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고정밀지도는 이미 자율주행 산업의 핵심 인프라로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신중하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지도 데이터에는 민감한 보안시설의 위치가 포함될 수 있다”며 “국가 안보를 해치지 않으면서 산업 경쟁력을 지킬 방안을 함께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산업계 “기술 경쟁 뒤처질라”…글로벌 기업은 속도전

산업계에서는 이번 결정이 장기적으로 국내 기술 경쟁력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고정밀지도는 자율주행차의 주행 경로를 정밀하게 계산하고 주변 환경을 인식하는 데 필수적인 기반 기술이다.

업계에서는 “지도 반출 제한이 지속되면 글로벌 기업과 협업이 어려워지고, 한국 시장이 테스트베드에서 제외될 수도 있다”는 목소리가 크다. 이미 테슬라, 애플, 엔비디아 등은 자율주행용 지도와 위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플랫폼 경쟁을 가속화하고 있다.

한국정보통신정책연구원 관계자는 “안보는 지켜야 하지만, 지도 정보는 이미 상업 위성이나 민간 데이터로 상당 부분 확보 가능한 수준”이라며 “정부가 지나치게 폐쇄적인 태도를 유지하면 국내 산업이 국제 흐름에서 뒤처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과 유럽은 정부가 정한 보안 기준만 충족하면 해외 기업에도 지도 데이터 활용을 허용한다. 반면 한국은 ‘공간정보의 구축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군사시설이 포함된 지도 데이터의 해외 반출을 금지하고 있다. 국내 기업은 별도 심사를 통해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외국 기업의 경우 절차 자체가 막혀 있다.

보안과 산업, 양립 가능한 해법 찾아야

전문가들은 지금이 한국 데이터 정책의 전환점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한다. 서울과학기술대 정민호 교수는 “보안과 개방은 충돌하는 가치가 아니라 기술적으로 병행 가능한 문제”라며 “비식별화 기술이 발전했는데도 정책은 여전히 과거 기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IT정책연구소 김도현 소장도 “국가 안보를 이유로 기술 접근 자체를 막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명확한 검증 절차와 기술적 보완 장치가 갖춰진다면 보안과 개방을 함께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내부에서도 입장 차가 존재한다. 국토부는 산업 발전을 위해 일정 수준의 개방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국방부와 국가정보원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부처 간 시각차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심의가 매번 지연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도 데이터 이전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국가 기반 정보의 해외 이전을 의미한다”며 “보안 검증 과정이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과기정통부는 “지도 데이터는 자율주행과 로보틱스 등 신산업의 핵심 인프라”라며 “기술 발전을 위한 완화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구글의 고정밀지도 반출 논의는 단순한 행정 절차를 넘어, 한국이 어떤 기준으로 데이터 개방과 보안을 조율할지 묻는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보안을 지키면서도 산업 경쟁력을 확보할 절충점을 찾는 것이 이제 정부의 과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