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2-2)유럽 기업들, 美 고급인재 본격 ‘빼돌리기’?

H1B 비자 사태 틈타, 유럽 기업 ‘링크드인’, X 등에 채용공고 ‘홍수’ 실리콘밸리, 美빅테크 등 외국인 인재 겨냥, 본격적인 사냥 나서 美정부 뒤늦게 ‘비자금 면제’ 등 수습 불구, 기업들 여전히 ‘불안과 불신’ 유럽 ‘고임금, 비자 및 이주비 지원, 불확실성 배제’ 등 조건 제시

2025-09-24     이윤순 기자
실리콘밸리의 개발자와 엔지니어들. 미국의 H1B 비자 수수료 대폭 인상 등 요건 강화로 현지의 외국인 인재들을 유럽으로 빼돌리거나 스카웃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출처=언스플레시)

[애플경제 이윤순 기자] 트럼프의 H-1B 비자 사태로 인한 혼란을 틈타 유럽이 미국의 기술 인재들을 훔칠 기회를 노리고 있다. 유럽의 기술 스타트업들은 트럼프의 비자 변경에 환멸을 느낀 숙련된 외국인 근로자들을 흡수할 태세에 돌입했다.

대서양 건너편의 스타트업들은 미국에 환멸을 느낀 외국인 근로자들을 자신들에게 끌어들이기 위해 나름대로 매력적인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특히 영국이 그런 움직임의 선두에 서있다. 영국의 핀테크 유니콘 기업 ‘클레오(Cleo)’의 창립자 바니 허시 여는 링크드인과 더 버지에 “만약 그런 고급 인재들을 우리가 나서 돕고 싶다”고 적극 추파를 던지기도 했다.

일부 기업, 실리콘밸리 겨냥 100개 채용공고도

그는 아예 자사의 런던 지사를 통해 이런 내용의 채용 공고를 무려 100개나 냈다. 채용 공고에서 이 회사는 H1B 비자로 어려움을 겪을 근로자들을 겨냥 “(비자문제로 미국에서 쫓겨나는)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것이 당신의 계획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예상치 못한 변화에서 최고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적극적인 스카웃 의사를 적극 밝혔다.

런던에 본사를 둔 AI 비디오 스타트업이자 또 다른 유니콘 기업인 신테시아(Synthesia)도 미국의 고급 인재들에 대한 ‘이삭줍기’에 적극 나섰다.

공동 창립자 겸 CEO인 빅터 리파벨리(Victor Riparbelli)도 ‘링크드인’에 비슷한 글을 올렸다. 그는 “H-1B 비자 때문에 지금 많은 불확실성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다행히 실리콘 밸리 같은 직업을 구하는 데 H-1B 비자 따윈 필요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에 반감을 가진 실리콘밸리 인재들을 자사로 유인하려는 유럽 기업은 유니콘 뿐만이 아니다. 스코틀랜드 법률 AI 회사 ‘워즈미스’사는 “H-1B 비자 신청이 조금 까다로워 보인다면, 영국에서 잠깐 일해보고 싶은 엔지니어들을 위해 비자(수수료 1억4천만원을)를 지원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소셜미디어에 유럽 기업인 ‘구인’ 게시물 넘쳐나

이 밖에도 현재 ‘링크드인’과 X에는 ‘Definely’, ‘Exo Labs’, ‘Verto’와 같은 소규모 기술 기업의 창업자와 임원들이 올린 게시물이 넘쳐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인재 영입을 위해 H-1B 비자를 언급하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이들 실리콘밸리 인재들에게 높은 급여, 비자 및 이주 비용,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 근로자들이 직면한 것보다 불확실성이 적다는 점을 약속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직장인들. (출처=언스플레시)

그런 가운데 영국 정부조차도 H-1B 비자 발급의 혼란 속 기회를 엿보고 있다. H-1B 비자 발급 관련 혼란은 세계 유수 인재들의 비자 수수료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깜짝 놀란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새로운 비자 수수료에 대한 반발과 우려를 불식시키려 애썼다. 이에 따르면 “10만 달러의 수수료는 기존 비자 소지자나 갱신 비자 소지자에게는 적용되지 않으며, 이미 해당 프로그램에 참여한 근로자들은 재입국 수수료 걱정 없이 정상적으로 출장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미 행정부는 또 특정 산업에 대한 수수료 면제를 약속하기 시작했다. 백악관이 수수료 면제 대상에 가장 먼저 포함시킬 것으로 예상했던 집단 중 하나는 의사였다. 그러나 H-1B 비자는 기술 분야뿐만 아니라 연구 대학과 의료 분야에도 필수적이다.

美기업들 여전히 ‘놀란 가슴’에 정부 불신

그러나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말처럼 실리콘밸리와 빅테크 등 기업들은 정부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꺼리는 듯하다. 기업들은 행정부의 9월 21일 마감일까지 근로자들을 미국으로 복귀시키려고 애썼고, 여전히 직원들에게 출장 계획을 취소하고 그대로 미국 내에 머물도록 권고하고 있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수개월 동안 외국인 인재들을 소외시키고, 미국을 불쾌하고 불편한 나라로 만들었다. 수천 건의 학생 비자를 취소하고, LG 배터리 공장에서 수백 명의 한국인을 체포했으며, 거의 모든 국가의 국민에 대한 전면적인 입국 금지 조치를 취했다.

미국 기업들은 트럼프의 정책이 얼마나 큰 타격을 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기술 인큐베이터 ‘Y Combinator’의 CEO 겸 사장인 개리 탠은 더 버지에 “빅 테크 기업들은 이러한 (비자 사태 등) 어려움을 헤쳐나갈 만큼 충분히 크지만, 스타트업들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타트업들은 그 만한 세금(수수료)을 감당할 수 없다”며 “AI 군비 경쟁이 한창인 상황에서 ‘비자 제도 변경’으로 인재들을 쫓아내는 것은 (유럽 등) 해외 기술 허브에 엄청난 선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기술 업계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고 있다. 특히 이번 비자 제도 개편은 그에게 빅테크 기업들을 견제하기 위한 유용한 채찍(혹은 당근)을 제공할 수도 있다. 그 때문에 업계의 불만이 그에게 큰 걱정거리가 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그런 가운데 실리콘밸리 등 미국의 외국인 인재들에 대한 ‘구인’ 전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