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2-1) ‘혼돈’의 실리콘밸리…‘H-1B’ 사태로 활주로 비행기 ‘유턴’
고향가던 외국인 직원 ‘간청’에 항공기 이륙 취소, 게이트로 회항 트럼프 ‘H-1B 비자’ 수수료 폭탄에 실리콘밸리 종사자들 ‘공황’ 中·印 출신들, 휴가차 들른 고향 공항서 가족 못보고 바로 미국행 정부 방침 ‘오락가락’ 기업들 불안, ‘귀국 명령 철회’ 불구 불안감 여전 미국 일자리 늘지만, 美기업 해외 이전, 외국 인재 유치 중단 예상도
[애플경제 이윤순 기자] 트럼프의 H-1B 비자 발표로 실리콘밸리가 대혼란을 빚고 있다. 비록 처음 발표와는 달리 “처음 신청하는 신규 발급자에 한해서만 10만달러의 수수료를 낸다”는 백악관 대변인의 발표가 있었지만, 그 후폭풍은 여전하다.
앞서 발표 당일엔 미국 공항에선 이미 활주로에 나간 비행기가 기내에 탑승한 실리콘밸리 직원의 ‘애절한 간청’으로 다시 게이트로 유턴하는 일도 벌어졌다. 막 해외여행이나 인도, 중국, 한국 등 고향 방문에 나섰던 사람들이 가족 상봉도 못하고 현지 공항에서 다시 미국행 항공편에 부랴부랴 몸을 싣는 광경도 줄줄이 이어졌다.
출장과 여행 전격 취소, 너도나도 급거 미국행
‘와이어드’는 “3800달러(한화 약 530만원)짜리 항공 티켓을 날리고, 비행기 이륙이 취소되는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며 이런 웃지못할 해프닝들을 전했다. ‘기즈모도’는 “트럼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정책 변화로 기술 기업들은 이민 노동자들을 미국으로 급거 귀국 시키면서 10만 달러의 수수료를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고 현지 표정을 전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또한 ‘트럼프의 H-1B 비자 발표가 기술 종사자들을 공황에 빠뜨린 이유’라는 제목으로 빅테크과 실리콘밸리의 충격과 혼란을 전달했다..
이외에도 많은 현지 언론들은 미국 기술산업을 강타한 이번 ‘H1 B 비자’ 사태에 주목하며 향후 미국경제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그 중엔 트럼프의 발표 직후 벌어진, 그야말로 다급하고 절박한 외국인 인재들의 사연이 여과없이 전해지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한 반도체 회사에서 근무하는 ‘샤윈’은 6주간의 출장을 마치고 중국 고향에 도착했을 때 H-1B 비자 관련 뉴스를 접했다. 마침 그 날 오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H-1B 비자 소지자의 미국 입국에 대해선 “10만 달러의 비자 청원서가 첨부되거나 추가된 외국인을 제외하고는 제한될 것”이라는 내용의 포고문에 서명했다. 샤윈을 비롯한 수십만 명의 이주 노동자들로선 충격적이었다.
만약 현재 해외에 나와 있는 ‘샤윈’과 같은 경우 이틀 후 새로운 규정이 발효되기까지 미국으로 돌아가야 할지 여부를 속히 결정해야 했다. 그 직후 미국 본사의 상사로부터 “수수료 부과를 피하려면 최대한 빨리 귀국하는 것을 고려해 달라”는 연락을 받기 시작했다. 이에 그는 공항에서 가족을 만나기도 전에 가능한 한 빨리 미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결국 중국 땅에 단 두 시간만 머물렀다가 다음 비행기를 타고 캘리포니아로 향했다.
그는 “오랫동안 부모님과 함께 여행할 기회를 기대했지만, 현실은 아내와 고양이, 집, 친구, 그리고 미국에 있는 제 직업을 두고 고향에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백악관, 상무장관, 공식 소셜미디어 ‘각기 다른 발표’
‘H-1B’ 비자는 미국에서 최대 3년까지 임시 거주를 원하는 숙련 근로자에게 발급되는 가장 일반적인 취업 비자 중 하나다. 이는 갱신을 통해 계속 (미국 직장에) 고용될 수 있다. 2019년 미국 시민권 및 이민국(USCIS)은 미국 내 H-1B 비자 소지자가 58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했다. USCIS가 매년 H-1B 비자와 관련해 수집한 데이터에 따르면, 역시 실리콘 밸리 기업들이 이 프로그램을 가장 많이 이용하고 있다.
2025 회계연도에 신규 H-1B 비자를 가장 많이 후원하며, 외국 인재들을 끌어들인 기업으로는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애플, 구글 등이다. 이에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은 해외에 나가있거나 행방이 불투명한 외국인 직원들에게 긴급 연락, ((비자 수수료 10만달러) 선언문에 명시된 (이틀 후) 일요일 마감일 전에 미국으로 돌아오라고 독촉했다.
그러나 곧이어 백악관과, 미국 상무장관 하워드 루트닉, 대변인 캐롤라인 리빗, 그리고 다른 정부 소셜 미디어 계정마다 상반된 메시지가 쏟아졌다. 이날 NYT는 “상황이 매시간, 매 30분마다 변하고 있다”면서 “루트닉(상무장관)은 매년 10만 달러의 수수료가 부과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다른 이들은 일회성 수수료라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원래 발표문에는 기존 비자 소지자들도 포함되었지만, 후속 발표에서는 면제되었다. 이러한 모순된 상황 전개로 인해 지난 주말 동안 합법적인 이민 노동자와 그 가족, 그리고 회사측은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확신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은 23일 현재까지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그 무렵 휴가나 출장 중이었으나, 급히 미국으로 돌아오기로 H-1B 비자 소지자들도 부지기수로 알려졌다. 미국 공항마다 활주로에서 비행기가 게이트로 회항하거나, 발권 창구에서 항공편을 취소하는 풍경이 줄을 이었다.
일단 20일(토요일)오후 트럼프 행정부 공식 설명에 따르면 결과적으로 해외에 있던 H-1B 비자 소지자 대부분은 서둘러 귀국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대부분 여행 계획을 변경하면서 미국행을 서둘렀다. 그 바람에 “이미 수천 달러를 잃었고 이틀 동안 정서적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하소연도 줄을 잇고 있다.
‘미국에서의 삶에 회의, 다른 나라로 떠날 생각’도
시애틀에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조이’는 9월 29일까지 중국에 휴가를 갔다. 그러나 새로운 H-1B 규정에 대해 걱정하는 (직장) 동료들이나 친구들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그녀는 직장인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가능한 한 빨리 귀국하라”는 이메일을 받았다. 막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즉시 4시간 후 미국으로 출발하는 새 항공편을 예약하고 가방을 급히 꾸리곤 2시간 거리에 있는 공항으로 달려갔다.
엑시오스도 이런 풍경을 전하며, “수많은 외국인 직원들은 추가 (H1 B) 수수료를 피하기 위해 여행, 결혼식, 가족 모임을 포기하는 등 다급하고 값비싼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특히 발표 당일인 지난 주 금요일과 토요일, 소셜 미디어들은 해당 규정 시행 전에 “어떤 항공편 노선을 이용하면 귀국할 수 있을지”에 대한 흥분되고도 초조한 게시물로 가득찼다.
실리콘 밸리의 한 회계사는 엑시오스에 “베이징에서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막판 항공권에 3,800달러를 써야 했다”면서 “이미 지불한 요금은 환불이 불가한데다, 여행지 예약을 포함하면 약 5,000달러(한화 약 700만원)를 날려버렸다”고 했다.
그렇다보니 기상천외한 일도 벌어졌다. 뉴욕에서 H-1B 비자로 금융계에 종사하는 에밀리는 비자 규정 발표 당일 저녁 파리로 가는 항공편에 탑승했다. 그러나 H-1B 명령에 대해 상담했던 이민 변호사가 “미국을 떠나지 말라”고 급한 연락을 해왔다. 이에 그는 비행기가 이미 출발을 위해 활주로를 돌고 있는데도 승무원들에게 내려달라고 사정했다.
그는 “승무원 한 명은 놀라서 제가 농담하는 줄 알았지만, 다른 상급 승무원은 정말 친절하게 응대해줬다”고 당시를 돌이켰다. 결국 조종사는 비행기를 게이트로 돌려보내는 데 동의했고, 천신만고 끝에 비행기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번 일은 그에게 “13년 동안 미국에서 살아온 나의 삶이 과연 안정적일까”라는 의문을 갖게 했다. 그래서 “앞으론 갑자기 여행을 갈 수 없다. 내일이라도 비자가 취소되거나 모레 미국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트럼프 대통령의 한마디면 충분히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새로운 규정이 비자를 갱신하거나 이직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법원에서 만약 이런 새로운 수수료를 인정해준다면, 미국 기업 특히 테크 기업들은 외국 인재 채용 비용이 엄청나게 증가한다. 결국은 외국 인재 유치를 전면적으로 포기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그 때문에 미국에선 이 규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소송이 앞으로 몇 주 안에 제기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한 새로운 규정이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오히려 미국 기업들의 해외 이전이 늘어날 수도 있고, 반대로 미국 내 노동자들이 더 많이 취업할 수도 있다.
‘대혼란' 속 법원 결정도 주목
첫 발표 이후 기자회견에서 하워드 루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또 다시 혼란스러운 발언을 했다. “(수수료는) 연간 비용이며, 총 6년 동안 매년 10만 달러씩 부과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발표문에는 수수료가 ‘연간’이라고 명시되어 있지 않다. 다음 날 백악관 대변인 캐롤라인 리빗은 X에 “연간 수수료가 아니고, 청원(처음 신청)에만 적용되는 일회성 수수료”라고 정정했다.
이에 실리콘밸리에선 여전히 “뭔가 바뀌었는데, 정확히 어떤 내영으로 바뀔 것인지 알 수 없다”며 혼란스런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발표 이틀째 오후 비로소 트럼프 행정부는 H-1B 비자 제한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내놓기 시작했다.
백악관 산하 계정인 ‘Rapid Responses 47’은 X에 “이번 비자 규정은 현재 미국 밖에 있는 ‘2월 추첨’ 대상 신청자에게만 적용되며, 이미 비자를 소지힌 경우는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미 세관국경보호국(CBP)과 USCIS 또한 각각 해당 규정 시행 방법을 명확히 하는 지침을 발표했다. 두 기관 모두 “이미 H-1B 비자를 소지한 근로자는 10만 달러의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밝혔다.
이에 일단 빅테크 등 실리콘밸리 기술 기업들은 자사 직원들의 귀국 명령을 철회했다. 구글과 아마존은 이미 유효한 H-1B 비자를 소지한 외국인 직원들에게 원래 여행 계획을 진행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이 시점엔 이미 귀국을 결정한 사람들은 미국에 있거나, 미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앞서 미국으로 급히 돌아가기 위해 3,800달러를 지불한 실리콘밸리의 회계사는 “베이징에서 로스앤젤레스로 돌아가는 비행 내내 불안을 느꼈다”고 말했다. “혹시 비행 도중에 항공기에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하거나, 지연될까 봐 걱정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