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 “실리콘밸리나 ‘미국행 인재’ 유치” 기대?

美 H1B 비자 강화로 ‘주요국으로 인재풀 분산’ 기대섞인 ‘희망’도 英, “기금조성, EMI 등 보상 등으로 실리콘밸리 인재 적극 빼와야” “천재일우의 기회” 평가도, AI 인재 절실한 국내업계도 예의주시

2025-09-23     엄정원 기자
IT직종 관련 기업 관계자들의 모습으로 사진은 본문과 직접 관련은 없음. (출처=펙셀)

[애플경제 엄정원 기자] H-1B 비자 수수료를 종래의 10배인 무려 10만달러(한화 1억4천만원)으로 올리기로 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가 장차 글로벌 기술산업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란 분석이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실리콘밸리 등 미국으로 집중되었던 ‘인재풀’이 세계 주요국으로 분산될 수도 있다는 기대도 일고 있다. 즉, 미국행에 실패한 많은 인재들이 다른 주요국을 선택하는 분산 효과가 있을 것이란 얘기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이미 산업계 일각에선 미국 등 해외로 빠져나가던 인재들의 유출이 많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는 시각도 있다. 특히 ‘AI 3대 강국’을 목표로 내걸고 있는 현실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AI인재난이다. 매년 수 천 명에 달하는 미국행 인재들이 현지의 비자 정책 강화로 국내에 머무를 수도 있다는 기대다. 이런 기대가 단순한 ‘희망사항’으로 끝날지는두고 볼 일이다.

英 산업계 “한 세대 있을까 말까한 기회”

그런 가운데 실제로 영국에선 이미 그런 움직임이 표면화되고 있다. 영국의 산업계 일각에선 “(트럼프의 H1B 비자 차단을 기회삼아 세계의 인재들이 영국을 ‘최고의 목적지’로 삼도록 해야 한다”는 주문이 자국 내에서 잇따르고 있다.

영국의 기술 정책 및 스타트업 지원 단체인 ‘스타트업 연합’(Startup Coalition)은 아예 공식적으로 영국 정부에 “트럼프 행정부의 H-1B 비자 단속을 적극 활용할 것”을 촉구했다. 미국행 인재들의 발길을 영국으로 돌리게 하는 적극적 정책을 주문한 것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높은 임금과 인프라, 생활 환경 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앞서 지난 주 트럼프 행정부는 전문 직종 외국인 근로자 채용을 위해 특별히 고안된 H-1B 근로자 비자 발급을 받으려면 연간 10만 달러를 납부하도록 기업에 요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다가 다시 “신규 발급 신청자에게만 요구할 것”이라고 오락가락했다.

영국 런던의 모습. (출처=언스플레시)

이에 영국 내에선 기다리기나 한 것처럼 “이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바로 나온 것이다. 이날 ‘스타트업 연합’은 샤바나 마흐무드 영국 내무장관에게 보낸 공개 서한에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발표 이후) 적극적인 (이민정책) 개입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이런 (미국의) 조치는 영국 기술 부문에 다신 찾아올 수 없는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그야말로 “하늘이 영국에게 내려준 축복과도 같은 기회”라는 얘기다.

美 수만 명 외국인 인재들, “타국 선택 등 미래 고민”

영국은 EU탈퇴 이후 유럽에서 이렇다할 리더십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IT산업 분야에서 유럽 최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노력하고는 있으나 쉽지않은 상황이다. 파운데이션 모델이나 데이터센터, 반도체장비 등에선 프랑스, 네덜란드 등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최근 트럼프의 방문을 계기로 실리콘밸리의 빅테크과 주요 기업들이 무더기로 투자를 약속, 큰 기대를 모으고 있긴 하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와 같은 풍부한 인재풀을 확보하지 못해 자생적 AI산업 등에선 큰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H1B 비자 요건 강화는 인재를 유치할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란 기대다.

‘스타트업 연합’은 서한을 통해 “H-1B 비자 발급 수수료 10만 달러 도입은 실리콘 밸리 전역에 불확실성을 야기했고, 세계에서 가장 재능 있는 수만 명의 엔지니어, 창업자, 연구자들이 자신들이 미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한 술 더떠 “지금은 조용한 외교나 ‘영국식 겸손함’을 과시할 때가 아니다. 과감하고 단호한 행동이 필요한 때”라고 적극 나서서 실리콘밸리를 포함한 미국과 인도 등의 인재들을 적극 빼돌리거나, 유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단체의 전무이사 돔 할라스는 ‘아이티프로’에 “영국에게 이번 기회야말로 최고 수준의 글로벌 기술 인재를 유치할 수 있는, ‘한 세대에 한 번뿐인 기회’에 직면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개입, 영국으로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취해야 할 몇 가지 주요 조치”를 제시하며 구체적 유치 방안까지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영국으로 과학, 기술, 공학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설계된 ‘글로벌 인재 기금(Global Talent Fund)’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또 미국의 비자 정책 변화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미국 내 외국인 인재를 지원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을 신속하게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H-1B 소지자와 이주를 희망하는 개인을 위한 ‘신속한 대책’과 함께 이들에 대한 주식 패키지 강화를 포함한 ‘기업 경영 인센티브’(EMI) 제도를 업데이트할 것을 강조했다. 기업경영의 성과를 적정 수준으로 직원들에게 나눠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영국이 미국에 비해 인재 확보 측면에서 주요 이점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도 폈다. 즉 비자 발급 경로가 ‘획기적으로 간단, 저렴’하고 ‘몇 달이 아닌 몇 주 만에’ 처리될 수 있다. 특히 “영국의 현재 정치 상황이 노동자들에게 더 큰 확실성을 제공한다”고 했다. 또 “(비자 발급을 위한) 추첨 시스템이나 임의적인 상한선 없이 명확한 정착 경로를 제공한다”고도 했다.

실리콘밸리가 인접한 미국 샌프란시스코 전경. (출처=언스플레시)

美서 H-1B 비자로 일하는 ‘고급 인재’ 70만 명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조치는 지난 수 개월 간 빅테크와 연방정부 간에 긴밀한 관계가 유지되었던 와중에 나온 것이어서 실리콘 밸리로선 더욱 충격이 컸다. 그 동안 빅테크들은 미국으로 세계 각국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H-1B 비자에 크게 의존해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처럼 변화된 비자 정책으로 인해 모든 기업들이 큰 비용을 부담해야 할 상황이다.

통계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서 H-1B 비자로 일하는 사람은 70만 명이 넘으며, 수십만 건의 신청에도 불구하고 매년 8만 5천 건만 발급되고 있다.

정책 변화는 미국 기업뿐 아니라 여러 국가의 외국인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BBC 뉴스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그 중 인도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몇 년 동안 H-1B 비자 발급자의 70% 이상을 인도 국민이 차지했다. 다음으로 중국이 차지하고 있으며, 비록 절대 숫자는 작지만 한국도 5번째로 많다.

그렇다보니 국내에서도 인재 유출을 줄이거나, 미국에 나가있는 인재들을 다시 끌어들이는 등 “잘만 하면 오히려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있다. 그러나 이는 아직은 일말의 가능성에 그칠 뿐이다. 실제로 이런 기대가 현실로 이어지기 위해선 고급 인재들에게 맞는 인프라와 급여 수준, 기술적 환경 등이 갖춰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영국 비영리단체를 중심으로 ‘미국행 인재’ 유치를 위한 구체적 요구와 움직임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실제로 대량의 인재 유치에 성공할 경우 이는 AI를 포함한 지구촌 기술산업의 판도를 크게 바꿀 수도 있는 변수다. 특히 해외 인재 유출을 최소화하고, 고급 인재를 확보해야 하는 한국으로서도 이를 예의주시하며 나름의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조언도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