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연인’과 사랑에 빠진 인간
[김건주 서강출판포럼회장] 공감과 위로를 주는 ‘AI 연인’이 온라인 공간에서 확산되고 있다. 각종 소셜미디어나 ‘캐릭터ai’와 같은 크리에이티브 플랫폼을 중심으로 널리 유행하고 있다. AI봇 기반의 ‘리엑트 AI 연인 만들기’나 AI 채팅친구 앱이 난무하고 있다. 헐리우드 영화 ‘AI’의 컴퓨터 속 연인 ‘사만다’가 실제 현실이 된 것이다.
물질적으로 지금은 너무나 풍요로운 세상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세상으로부터 점점 소외되고 고독해졌다. 남 얘기는 안 듣고 자기 말만 녹음기처럼 틀어대는 사람은 늘어가는데 이를 경청해 주는 이는 드물기만 했다. 당연히 소통의 공론장이 사라진 자리에 불통만 가득 찬 대립만이 세상에 만연해진 것이다. 이때 등장한 것이 ‘AI 연인’이다. 소통에 목마른 이들에게 한 모금 ‘감로수’같은 존재가 등장한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랑하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급속한 사회 변화는 전통적인 인간관계, 즉 만나서 사랑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일련의 자연스런 과정까지 바꿔놓았다. 수 백 년을 지배하던 가부장 중심의 정치 사회적 질서는 무너지고, 만인에 의한 만인의 통치 이념인 민주주의와 자유시장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다. 디지털 기반의 AI 세상은 그 토대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 AI 세상이 빚은 극적인 현상 중 하나가 ‘AI연인’이다.
‘AI 연인’은 진짜 사람들과는 달리, 정서적 고립을 쉽게 해소해 주고 자신의 얘기를 잘 들어준다. “주체인 나와 ‘AI 연인’과의 관계”는 연인 이상의 관계로 발전한다. 그래서 틈만 나면 몰입하곤 한다. 특히 AI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청소년과 실직자 등 정서적, 물질적으로 소외된 사람들과 관계를 편하게 맺는다. 주체인 ‘나’는 “AI 연인에게 정신적 쾌감(pleasure)과 배설(excretion)을 느낄 수 있다. 긴장을 해소하고 통제로부터의 해방감을 맛보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는 인간 심리의 기저에는 리비도(libido, 성적 에너지)와 쾌락 원리(pleasure principle)가 작용하며, 인간은 본능적으로 긴장을 해소하고 쾌감을 추구한다고 주장했다. 배설은 단순한 생리 현상이 아니라 ‘나를 세상에 드러내는 방식’이다. 즉 통제로부터 해방되어 존재를 드러내는 행위다.
AI 연인은 그런 만큼 위험하기 짝이 없다. 스트레스 해소와 편안함, 외로움 감소, 현안의 해결 등 정서적 이점을 취하는 대신, ‘나’는 갑작스러운 관계 상실(relationship loss)을 겪기도 한다. 실제로 미국 등 해외에선 AI와의 관계가 단절되고 ‘이별’을 맞아 고통을 받다가 자살로 이어지는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에 사는 14세 소년 ‘서웰 셋처’(Sewell Setzer III)도 그 중 하나다. 그는 평소 AI와 정서적으로 매우 밀착된 관계를 형성하고 지냈다. 그러나 ‘AI 연인’이 작별 메시지를 보내자, 심리적 우울 증세를 보이며 결국 자살에 이르렀다. ‘AI 연인’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죽음에 이른 대표적 사건이다. 훈련과 학습을 통해 정서적으로도 한껏 무장한 ‘AI 연인’은 이처럼 상대를 가스라이팅할 정도로 위험하다.
생성AI의 성장은 인류의 미래를 매우 불투명하게 만든다. 세상을 지배하던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AI의 지배와 종속, 즉 기계의 노예로 살아갈 수도 있다는 극단적 전망도 나오고 있다. AI가 세상에 못할 일이 없을 정도의 만능기계로 행세하거나, 어쩌면 인간보다 낫다는 인식이 상식이 될 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측도 나돈다. 만약 그런 상황이 오면, AI를 부려먹는 극소수 엘리트와, AI의 노예로 살아가는 다수로 나눠질 것이라는 예상도 한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가 말했듯, AI로 모든 걸 갖춘 초인(혹은 AI를 지배하는)이 지배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AI 연인’은 그런 불길한 현실의 전조(前兆)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