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스택으로 승부…피지컬 AI 전면에
AI가 물리 현실로 들어왔다…산업계 ‘생태계 구축’ 속도전 풀스택 기술이 핵심…“한국, 주도권 가질 역량 있다” 정부, 실증 예산·산학 협력으로 대응…426억 규모 PoC 추진
[애플경제 김예지 기자] AI 기술이 현실 공간으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단순히 데이터를 처리하는 소프트웨어를 넘어, 실제 공간에서 사람처럼 판단하고 움직이는 '피지컬 AI'가 주목받고 있다. 정부와 업계는 이 기술을 차세대 범용 AI로 보고 대응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실 공간에 적응하는 AI
피지컬 AI는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물리적 상황에 맞게 움직이는 인공지능이다. 기존의 자동화 기계처럼 정해진 작업만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스스로 판단해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이 넘어졌을 때 이를 인지하고 도와주거나, 작업자와 호흡을 맞춰 협력하는 로봇을 생각할 수 있다. 이런 기능을 구현하려면 정밀한 로봇 하드웨어와 고성능 AI가 자연스럽게 결합돼야 한다.
이미 상용화 가능성도 확인되고 있다. CES 2025에서는 다양한 기업들이 피지컬 AI 기반 로봇을 선보이며 기술 진전을 보여줬다. 인공지능이 물리 환경과 연결되는 속도는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국내도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30일 ‘피지컬 AI 생태계 확산을 위한 산학연 간담회’를 열고 관련 전략 논의를 시작했다. 현장에선 기술은 앞서고 있지만, 산업계의 준비가 부족하다는 우려도 나왔다.
핵심은 기술 융합과 통합 역량
전문가들은 피지컬 AI의 발전이 특정 기술 하나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다양한 요소의 유기적 결합에 달려 있다고 본다. AI 알고리즘, 로봇 설계, 제어 기술, 실시간 데이터 처리 등 전 분야가 함께 작동해야 성과를 낼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 반도체, 로봇 부품, 제조 데이터 등 다양한 기반을 갖춘 유리한 조건에 있다.
마음AI 유태준 대표는 “피지컬 AI는 기술 공개가 거의 없는 분야라, 독자 기술 확보가 중요하다”며 “AI부터 하드웨어까지 전 과정을 국내에서 직접 구현할 수 있어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KAIST 장영재 교수도 “글로벌 기업들도 아직은 공정에 바로 적용하긴 어렵다”며 “복잡한 환경에서 유연하게 움직이는 AI는 한국이 먼저 앞서나갈 수 있는 분야”라고 설명했다.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 실제 환경에서 검증된 데이터와 테스트 경험이 함께 쌓여야 기술의 완성도가 높아진다. 협업과 실증 중심 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데이터 확보가 승부처
피지컬 AI는 실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동해야 정밀해진다. 제조 라인, 물류창고, 자율주행 등에서 나오는 다양한 센서 데이터를 통해 AI가 훈련되고 성능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개별 기업이 이 모든 데이터를 직접 수집하고 처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 조준희 회장은 “처음부터 제조사와 데이터를 공유하는 구조로 과제를 짜야 한다”며 “국내 제조업이 가진 양질의 데이터를 활용하면 수출 가능한 기술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유태준 대표 역시 “로봇의 움직임, 자율주행 도중 발생하는 지연 상황 등은 방대한 데이터를 필요로 한다”며 “이런 데이터를 수집하고 활용하려면 여러 기업이 협력해야 하고,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업계는 이제 개별 기업의 협력을 넘어, 정부가 중심이 돼 생태계를 이끌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주고받고, 여러 기업과 연구기관이 함께 테스트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피지컬 AI 기술의 개념검증(PoC)을 위해 426억 원 규모의 예산을 확보했고, 산업통상자원부와 협력해 실증 과제도 함께 추진할 계획이다.
제조 강국 한국, 피지컬 AI로 도약할까
우리나라는 반도체, 전자, 자동차 등 세계적 수준의 제조 현장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이런 인프라는 피지컬 AI를 실제로 적용하고 시험해볼 수 있는 최적의 조건으로 평가된다. 여기에 국내 AI 기술이 더해지면,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류제명 과기정통부 제2차관은 “피지컬 AI는 제조업을 넘어 의료, 국방, 농업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될 수 있다”며 “AI와 제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또 그는 “부처 간 협의가 쉽지 않더라도 기술 전략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며 “정부가 중심을 잡고, 국내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
결국 지금 필요한 건 기술을 하나씩 개발하는 데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연결해 하나의 생태계로 만드는 일이다.